※ 성인 스터디에 제출한 글입니다. 티스토리는 검열한 버전을 올립니다.

검열이 없는 화끈한(?) 원본은 동네 갤러리에 올려두었습니다. 성인인증 후 보실 수 있습니다

동갤 주소 : http://gallery.dong-ne.kr/148813

 

 

 

개목걸이

written by Esoruen

 

 

 

 

커맨더는 가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남자였다.

완벽한 전술, 그림으로 그린 듯 수려한 얼굴, 거기다가 부하를 배려하는 성격까지. 누군가가 만든 완벽한 기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이상적이었지만, 디스트로이어의 눈에 그는 그저 불쌍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가 커맨더를 처음 만난 날은 주룩주룩 비가 오는 새벽이었다.

소년병 출신의 사령관. 제일 밑바닥부터 지휘관까지 기어 올라온, 죽기 싫어 살아남았고 살아남았기에 다시 전장으로 보내졌던 소년. 이제는 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였지만, 디스트로이어는 그의 눈동자에서 어린 소년을 보았다.

 

‘불쌍한 녀석’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사령관까지 올라간 그는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정말로 드문 일. 잡담조차도 지양했다면 믿겠는가. 부하들 중에선 커맨더를 지나치게 어려워하는 자들이 있을 정도로 커맨더는 철두철미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남자도 틈은 있는 법.

 

디스트로이어는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커맨더의 모자를 벗겨내었다.

약간 곱실거리는 은발은 제대로 손질 되어있지 않아 여기저기 엉켜있었지만, 특유의 윤기는 잃지 않고 있었다. 가볍게 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준 디스트로이어는, 군모를 책상 옆 옷걸이에 걸어두고 새하얀 목선을 더듬었다.

커맨더가 책상에서 잠든 모습은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잠은 거의 자지 않고, 잔다고 해도 제 방 침대에서 잠시 쪽잠만 자는 그가 이렇게 무방비하게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것을 구경하게 되다니. 자신은 엄청난 행운아일 거라고, 디스트로이어는 기뻐했다.

 

“으음”

 

목선을 따라 더듬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걸까.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던 커맨더는 어깨를 움츠리더니 눈을 떴다. 디스트로이어는 제 은밀한 손길에 그가 단잠을 깬 것을 눈치 채지 않게 급하게 손을 숨기고, 미소 지어 보였다.

 

“피곤했나봐?”

“아, 죄송합니다. 흠흠”

 

자는 모습을 들킨 것이 싫은지, 커맨더는 깜짝 놀라며 고개 숙인 채 머리를 더듬었다.

아. 그는 작은 탄식을 하고 옷걸이로 시선을 돌렸다. 제 군모는 옷걸이의 맨 위에 걸려있었다.

 

“디스트로이어가 벗긴 겁니까?”

“자는데 거슬릴 것 같아서”

“…그냥 깨우지 그랬습니까. 일이 아직 산더미인데”

 

소리 없이 한숨을 쉰 커맨더는 졸린 눈을 비빌 틈도 없이 펜을 잡았다. 누가 봐도 무리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한다고 해서 펜의 움직임이 멈출 것 같진 않았다. 어떻게든 커맨더가 일을 멈추길 바란 디스트로이어는 무슨 수를 쓸까 잠시 생각하다가, 커맨더의 어깨를 잡았다.

 

“…디스트로이어?”

“조금 쉬는 게 어때, 그렇게 졸면서 일하면 능률도 안 올라”

“오늘까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디스트로이어도 별일 없다면 이만 나가주시죠. 런처 부대는 훈련도 없습니까?”

 

커맨더의 대답은 얼핏 보면 짜증을 부리는 것 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디스트로이어는 그것이 짜증이라기 보단 잔소리 같다고 느꼈다. 상사가 부하에게 타이르는, 혹은 연장자가 어린애를 가르치는 것 같은. 그런 말투.

어쩌다 이런 꼬맹이가, 저런 말을 하게 만들어 버린 걸까.

디스트로이어는 그동안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황도군이 조금은 미워지고 말았다. 천계를, 정확하게는 황도와 황실을 지키기 위한 황도군은 그들의 궁극적 평화를 위해 이 소년을 국가의 개로 만들고 말았다. 말도 잘 듣고, 반항도 하지 않는, 훌륭한 번견(番犬)으로 말이다. 물론 황도군에는 그런 번견들이 잔뜩 있었다. 디스트로이어 자신도, 비록 충직하지는 않지만 나름 황실의 개였다.

어깨에서 목선까지, 천천히 손을 움직이던 디스트로이어는 옷깃 사이 숨어있던 인식표를 꺼냈다. 잘그락.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옷 속을 빠져나온 인식표는 조금 낡아있었다. 싸늘한 은색의 인식표에는 커맨더의 이름과 생일, 혈액형 등등이 적혀있었다.

인식표란 원래, 군인들이 죽었을 때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있는 것. 분명, 그런 물건이었는데. 디스트로이어는 이것이 그저 언제든 죽어도 되니 열심히 싸우라고 말하는 부추김의 형상화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혹은, 기르는 개들의 목에 걸어주는 개목걸이 라던가.

 

“커맨더”

 

인식표를 잡아당긴 디스트로이어는 제가 힘을 가하는 방향으로 간단히 끌려오는 커맨더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조금, 쉴까?”

 

그건 권유가 아니었다. 권유의 말이 저렇게나 살벌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단호하게 거절하려던 커맨더는 디스트로이어의 말투와 눈빛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침묵은 긍정, 진부하지만 유용한 사고. 도저히 떨어질 줄 모르는 두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던 디스트로이어가 마른 그의 몸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책상 위에 눕혔다.

쨍그랑. 잉크통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서류들도 몇 장 책상 밑으로 떨어졌지만, 그걸 신경 쓰는 것은 커맨더뿐이었다. 상체만 책상에 엎드리고, 하체는 든 부끄러운 자세로 눕혀진 그는 이다음 일어날 일이 뭔지 단번에 알아챘다.

 

“자, 잠깐만요, 무슨!”

“왜 그래, 그냥 잠시 쉬게 해주려는 거라니까”

“자, 장난 그만 하고 놔 주십시오! 서류가…”

“이런 걸로 장난 할 만큼 실없는 남잔 아닌데. 나, 커맨더에겐 그 정도 남자로 보였던 건가”

 

짓궂게 말하며 집요하게 커맨더의 머리를 누르는 디스트로이어는 그의 목에서 인식표를 빼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즐겨도 좋겠지. 그는 나름대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불쌍한 번견에게 개목걸이를 벗겨내 주었다.

커맨더는 허전해지는 목의 감각보다, 머리를 누르는 손과 허리를 더듬는 손이 무서워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저항해 볼 생각이라도 들었을 텐데, 상대는 제 몸무게만한 중화기도 번쩍 드는 디스트로이어. 힘의 차이가 이렇게 난다면, 저항해 봐야 위험할 뿐 좋을 것이 없었다.

‘이건 다 장난일 거야’ 그는 그저 그렇게 믿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디스트로이어는 가끔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해주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료로서의 인정이라 생각한 커맨더는 지금 제가 하는 우려가 그저 기우이길 바랬다.

 

“괜찮아, 그냥 좀 쉬자는 거니까… 힘 빼”

 

디스트로이어는 몸을 숙여 커맨더의 귓가에 속삭였다. 연인에게 속삭일 때 어울릴 것 같은 그 달콤한 목소리는, 잘 벼려놓은 나이프가 되어 커맨더의 헛된 희망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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