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소마츠상 마츠노 쵸로마츠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48회 주제 : 서투른 첫키스
서투른 첫키스
written by Esoruen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올 때 쯤 영화관에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최근 개봉한 멜로영화, 혼자라면 절대 보러갈 일이 없고 형제들이랑은 더더욱 같이 올 일이 없는 이런 달달한 영화를 보고 오는 날이 제게도 오다니. 쵸로마츠는 제 옆에서 다 먹은 팝콘상자를 접고 있는 메구미를 슬쩍 보았다. 티는 잘 안 나지만, 눈가가 촉촉하다. 아마 그녀도 엔딩을 보고 울었던 거겠지.
“아~ 이 영화 생각보다 재미있네. 그치? 마츠노 씨”
“응? 어?”
“뭐야,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요? 영화 재미있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아아, 어… 감동적이던데? 재밌더라. 음”
사실 여자랑 단 둘이서 멜로영화를 본다는 것만으로 반쯤은 집중이 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멜로영화라는 것이 다 그렇지. 만났다가 헤어지고 울고 웃다가 마지막에는 해피엔딩. 실로 이상적인 이야기다. 끝은 결국 행복하게 끝나다니. 제 인생도 결말이 행복하다는 걸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그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여자 주인공이 흘린 손수건을 돌려줘야 한다며 버스를 2정거장이나 뛰어서 쫒아간 거!”
“그거 진짜 뛸 수 있을까… 난 못해”
“하긴, 마츠노 씨는 한 정거장도 못 뛰고 지칠 거 같으니까”
“아니 그 정도는 뛰거든?”
주변에 지나가는 다른 연인들 마냥 영화의 감상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근처의 카페로 들어간다. 쵸로마츠는 지금 제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메구미와 이곳저곳을 같이 다닌 적은 많지만, 그건 대부분 평소가 서로에 하던 걸 같이 했을 뿐이지 특별히 데이트 코스를 짜서 다닌 게 아니니까. 냐짱의 콘서트에 가고, 액세서리 가게에 가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음반점에 가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건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쵸로마츠는, 오늘의 데이트가 뭔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영화도 나쁘지 않았고, 그녀도 즐거워한다. 자신도 즐거우니 오늘은 충분히 좋은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말이야 마츠노 씨”
“응?”
“마츠노 씨는 키스해 본적 있어?”
“푸흡!!”
예상치도 못한 그녀의 질문에,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커피가 입 밖으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어, 어?”
“아니 키스 해 본적 있냐고… 했는데… 일단 옷부터 닦아”
“아, 어… 응…”
아까운 커피. 쵸로마츠는 제 옷에 튄 커피들을 휴지로 대충 훔치고 심호흡을 했다. 키스. 키스 말인가. 해봤을 리가 있나! 이 나이까지 여자랑 멜로영화 한편 본 적이 없는데 키스? 차라리 붕붕카를 타고 다니는 아이에게 고속도로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묻는 편이 더 현명할지도 모르지. 자학적이지만 쵸로마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없…는데”
“그럴 거 같았어”
“그거 무슨 의미?!”
“아니, 딱히 악담은 아닌데… 그냥 그럴 거 같았다는 뜻이니까”
메구미의 눈빛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악의라곤 없는 눈을 깜빡이며 제 몫의 라떼를 홀짝이는 그녀는 방금 전 본 영화 속의 여주인공 같이 보였다. 까칠한 것 같지만 사실은 어리숙하고, 표정은 솔직하지만 입은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서투르게 거짓말을 한다. 생긴 건… 배우랑 일반인을 비교하는 건 실례니까 그만두자. 그래도 이 카페에서는 단언코 그녀가 제일 예쁘다.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넌 있어?”
“나? 어떨 거 같아?”
“없을 거 같은데”
“응. 없어. 애초에 남자친구도 처음이니까?”
‘윽’ 쵸로마츠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괜히 민망해 고개를 숙였다. 이제까지 잘만 만나와 놓고 새삼스러울지 모르지만, 언어란 위대하니까. 직접 제가 어떤 존재인지 듣는 건 부끄럽고 좋은 일이었다. 남자친구. 남자친구라.
“카도와키 분명 여중여고였지?”
“응. 초등학교 땐 아는 남자애들도 몇 있었지만… 그땐 연애 같은 거 관심도 없었으니까?”
“그런가…”
확실히 남자친구를 사귈 여건은 안 되는구나. 게다가 메구미는 저렇게 보여도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타입이지, 자신과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도 분명 책상 앞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애꿎은 커피만 스트로로 휘휘 젓던 쵸로마츠는 마치 장난이라도 걸 듯 툭 물었다.
“그럼 할까?”
“어?”
“첫 키스. 나랑. 그, 우리 둘 다 처음이고”
“…어??”
제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메구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영화에서도 첫 키스는 카페에서 했었지. 하지만 그건 어슴푸레한 저녁시간 때. 이렇게 사람이 많은 낮의 카페에서, 지금 뭘 하자는 한 거지.
“아, 아니 그러니까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지금 하자는 게 아니니까 진정해, 카도와키”
“알아!”
버럭 소리 지른 그녀는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커피는 다 마시긴 했지만, 벌써 나가는 건 커피 속의 자릿세가 아깝지 않나. 일단은 같이 일어선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앞서나가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 갈 거야?”
“팬시점! 마츠노 씨도 같이 갈 거지?”
“데이트잖아. 뭘 당연한 걸 물어?”
“…으으으…”
아, 얼굴이 더 빨개졌다. 쵸로마츠는 괜히 자신까지 부끄러워지는 걸 억누르기 위해 헛기침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건, 기회일지도. 주변을 둘러본 쵸로마츠는 두 걸음 정도 빠르게 앞으로 가 그녀 옆에 섰다.
“카도와키”
“왜 불러!”
쪽. 새빨개진 얼굴이 자신 쪽으로 향했을 때를 놓치지 않은 쵸로마츠는 가볍게 그녀 입에 제 입술을 포개고 재빨리 떨어졌다. 키스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입맞춤. 하지만, 이런 것도 처음인 자신에겐 너무나도 부끄러운 첫 키스.
“……”
“…빠, 빨리 가자. 그, 빨리”
“빨리만 두 번 말했어. 마츠노 씨”
“알아…”
어색한 분위기 속, 서로를 보지 못하는 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