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게 무슨 일이야.’ 크레글린은 비행선 가득한 냉장고 안이 따뜻하게 느껴 질 정도의 냉기에 소리없이 감탄했다. 욘두가 시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벨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걸 봐선 분명 범인은 퀼일 것이다. 그거 하나 만큼은, 정말로 확신할 수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오 왔어? 아니 그게….”
동료 중 한명은 상황을 설명하려다 말고 슬쩍 시선을 돌렸다. 후우. 짧은 한숨이 향하는 곳에 서있는 것은 이 함선의 홍일점. ‘역시 퀼 녀석 짓이냐!’ 크레글린은 제 예상이 딱 맞아 떨어진 걸 기뻐해야 할지 한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힐끔힐끔. 차갑게 굳은 벨의 얼굴을 계속 살피던 동료는 결국 귓가에 다가와 속닥였다.
“퀼 녀석, 말실수를 해서.”
“말실수?”
“그래. 뭐 벨이 화낼만했지.”
도대체 무슨 말이기에. 궁금하긴 하지만, 여기서 묻기엔 눈치가 너무 보인다. 크레글린은 일단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벨에게 다가갔다. 이왕 물을 거라면, 남에게 전해 들으며 불똥이 튈까 불안해 하는 것 보다 본인에게 묻는 게 낫지 않은가.
“벨, 표정이 왜 그래?”
“아, 왔어? 욘두는 자기 방에 있어.”
“어… 고마워, 하지만 난 욘두 이야기 때문에 온 게 아니라….”
“…또 쓸데없는 소릴 듣고 온거지?”
역시 벨 마르소. 하나를 말했을 뿐인데 열한 개를 알아챈다. 크레글린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퀼 그녀석이 뭐라고 했는데?”
“오, 네가 대신 패주는 거야? 고마워 역시 네가 최고야.”
“아니, 일단 진정하고.”
물론 욘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얄미운 ‘자칭’ 스타로드의 얼굴을 갈기는 것은 기쁘겠지만, 실제로 그랬다가는 욘두에게 한 소리를 듣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화가 풀린 후의 벨도 잔소리를 할 것이고. 그다지 눈치 있는 편은 아니어도 이 정도는 알 수 있는 크레글린은 슬그머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 녀석이 원래 좀…, 그렇잖아? 응?”
“…….”
“…아니 그것보다 무슨 소릴 한 거야? 말 못할 거라면 안 해줘도 되긴 하는데….”
“나보고 ‘그때 구해주지 말 걸 그랬네’ 라더라.”
“…….”
이거 한 대 쳐도 되겠는데. 크레글린은 굳은 표정으로 한탄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몰라도, 퀼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어지간히도 감정상한 싸움인 모양이었지만, 이건 퀼이 잘못했다. 돌아갈 길도 없는 우주에서, 제 손으로 구해 돌봐주고 연인까지 된 사람에게 ‘구해주지 말 걸’같은 소릴 하다니.
“욘두는 알아?”
“알면 지금 쯤 부엌에서 맛있는 스타로드 정식이 완성되었겠지?”
“…어, 음. 그래.”
“…됐어. 어차피 나중에 잘못했다고 사과하러 올 걸. 자기도 말해놓고 조금 뒤 엄청 당황했으니까.”
그래.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저 말을 들은 벨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뻔히 상상이 가는데, 그걸 보고도 ‘아차’하지 않는다면 그게 사람인가. 다만 퀼은 은근히 진지한 상황을 만들 줄 모르는 놈이라, 사과를 할 타이밍을 놓친 거겠지. 무엇보다, 망연자실했던 벨이 곧 정신을 차리고 죽일 듯 덤벼들어 도망가기 바빴을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