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엄숙한 작전 회의 중. 속삭이는 듯 작은 목소리로 닐스가 꺼낸 질문은 그의 바로 옆에 앉은 루엔을 향한 것이었다.
“…응? 아. 아아. 티났나?”
“어. 음. 바로 옆에서 보면 조금 정신 사나울 정도니까 괜찮을 것 같지만. 네.”
다들 회의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으니 아마 자신 외에는 눈치 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젤딘의 설명을 듣고있는 동료들을 훑어보았다. 카르텔 잔당을 처리하기 위한 이번 작전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겪어온 위험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안전한 작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소꿉친구인 엘레나는 억지로 회의에 끌려가는 제게 그렇게 말했지만, 집중력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닐스는 예상대로 그다지 회의에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 유일하게 루엔의 ‘산만한 짓’을 눈치채고 말았다.
“별거 아냐. 신호를 보내는 거지.”
“신호요? 누구에게?”
“저기.”
루엔이 가리킨 곳은 막사의 창문이었다. ‘아하.’ 닐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순식간에 상황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했더니. 데스페라도였나. ‘글세, 자기는 회의가 지루하니 나 혼자 다녀오라는 거 있지?’ 닐스의 귓가에 속삭인 루엔은 소리죽여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무슨 이야기 중인데요?”
“작전회의 내용이랑 끝나면 뭐 할지, 정도?”
“…그걸 수신호 만으로 다 전할 수 있다고요?”
“뭐 손짓 반 눈짓 반이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오래 같이 있어온 사이면 꽤 잘 통하니까. 닐스 군도 엘레나랑 해봐. 꽤 잘 통할걸?”
과연 그럴까. 닐스는 허탈하게 웃었다. 엘레나와 자신은 소꿉친구였고, 어쩌면 친구 이상의 관계라고 해도 좋은 사이였지만 아마 저렇게 손짓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 무리일 것이다. 아마 조금이라도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엘레나 쪽이 버럭 소리를 치거나 제가 포기하고 다가가서 말을 붙일게 뻔했으니까. 무엇보다 늘 붙어 다니는 데스페라도와 루엔과 달리 자신들은 최근까지는 잠깐 떨어져서 지냈었으니, 통하지 않는 것이 제법 있을지도 모르지.
“…음.”
“왜 그래요? 데스페라도 씨가 뭐래요?”
“저녁으로 뭐 먹을까 물었더니 아무거나, 래. 정말 아무거나 먹여버릴까 보다.”
“…….”
아아. 역시 아무리 무법지대 최악 최흉의 커플이니 뭐니 해도 저녁 메뉴 앞에서는 남들과 다를 게 없는 건가. 두 사람을 반쯤은 전투기계 쯤으로 보고 있던 닐스는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는 회의 따윈 어떻게 되어도 좋다. 어차피 중요한 내용은 서문으로 날아올 것이고, 출격 전 한 번 더 알려줄 테니 자신은 이 기막힌 수신호 대화나 구경하자. 어차피 정식으로 황도군도 아닌 그는 한껏 헤이해진 마음으로 루엔과 데스페라도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데스페라도 씨가 뭐래요?”
“정 그러면 네가 먹고 싶은 걸로, 라고 하네.”
“…음, 역시 누님 한정으로는 엄청 다정하네요. 데스페라도 씨.”
“그냥 자기가 고르기 귀찮아하는 거야. 뭐, 군말 없이 같이 먹어주는 점은 귀엽지만.”
말은 아닌 척 해도 제 연인의 칭찬이 기분 좋을 걸까. 루엔은 두 어깨를 으쓱이고 또 뭐라 손짓했다. 아까 전 데스페라도의 손과 비슷한 움직임. 아. 혹시 ‘너는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묻는 걸까.
닐스는 그 나름대로 신호를 해석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데스페라도의 대답은 해석하지 못했다.
“…?”
분명 루엔의 손짓을 봤을 터인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이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뭐지. 설마 ‘네 옆에 저거 치워라’같은 손짓은 아니면 좋겠는데. 닐스는 문득 무서워졌다. 아무 생각 없이 훔쳐보고 있긴 했지만, 생각 해 보니 연인이랑 몰래 대화 중인 걸 타인이 보는 걸 반길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긴장한 닐스는 무어라 해명이라도 해달라고 말하기 위해 루엔을 봤다가, 그 신호의 의미를 이해하고 말았다.
“…저 화상을 그냥….”
새빨개진 얼굴. 멈춘 두 손과 한숨만 푹 내쉬는 입.
너무나도 직설적인 손짓에 덩달아 민망해진 닐스는 모른 척 다시 젤딘을 향해 시선을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