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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하야나카] consciousness 上

Еsoruen 2013. 10. 16. 18:29

 

 

 

consciousness

 上

written by Esoruen

 

 

남자는 철이 없거나 노망이 들었거나 둘 중 하나라는 농담이 있었다.

싱겁기는. 나카무라의 반응은 그게 다였다. 농담을 해준 같은 반 여자아이는 그런 반응일 거라고 예상 한 것인지 그다지 무안해 하지 않았지만 나카무라는 그 농담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근거도 없는 농담이, 정말일 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였다.

 

 

 

“나카무라, 가자!”

 

방과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하야카와였다. 공부는 쥐약인 그에겐 부활동인 농구가 더 즐거웠으니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카무라는 이 성격 급한 동급생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단순한 동급생인 것은 아니었다. 한 팀에서 뛰는 동료이기도 했고,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어색한 연인관계이기도 했다.

좋아해. 하야카와의 심플한 고백과 함께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는 오늘로 일주일째를 맞이했다. 일주일이라면 서로 알기에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1학년 때부터 서로를 알던 관계여서 의외로 변한 것은 별로 없었다. 언제나처럼 같이 체육관으로 가고, 언제나처럼 같이 하교했다. 이런 것을 연애라고 할 수 있을지는 나카무라도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첫 연애니까. 비교할 대상은 영화나 드라마 속 비현실적인 연애들 뿐. 그런 것들과 자신을 비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나카무라”

 

체육관에 도착한 하야카와는 문을 열기 전 제 뒤를 따라오는 나카무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카무라는 대답대신,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똑바로 마주보아주었다. 가까워진 얼굴. 짧게 나카무라의 볼에 키스한 하야카와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진한 스킨십은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타이밍인 만큼, 나카무라는 놀라서 제 연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야카와는 이미 문을 열고 체육관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제멋대로라니까. 작게 한숨을 쉰 나카무라는 작게 미소를 짓고 열린 문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기본적으로 하야카와의 스킨십은 늘 저런 식이었다.

갑작스럽고, 가볍고, 그것뿐이다. 마치 어린 아이들의 애정표현같이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깊이는 없었다. 저것도 하야카와의 입장에서는 큰 애정표현이겠지. 나카무라는 하야카와라는 인간을 잘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의 몸뚱이를 가진, 어린아이.

그런 면을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나카무라는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나카무라는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알아봐야 좋을 것이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마음속 괴리감은 시간을 잡아먹고 성장했다. 사귄지 보름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의 지루한 문학시간. 나카무라는 문득 하야카와의 마음을 의심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의심이란 하야카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하야카와의 ‘좋아해’와 자신의 ‘좋아해’가 같은 것인지, 그것이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자신부터 결론 내리자면, 나카무라는 하야카와를 좋아하고 있었다. 문학교과서에 실린 문장처럼 심장이 끓어오르고 온 몸의 피가 꿈틀거릴 정도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맹한 얼굴이나 웃는 모습을 보며 사랑스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리바운드에 성공하고 칭찬 해 달라는 듯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고,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깨우기 보단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과연 하야카와는 어떻단 말인가.

 

분명 먼저 고백한 것은 하야카와였다. 머릿속이 농구밖에 없는 것 같은 하야카와의 고백인 만큼, 나카무라는 그 마음의 진실성에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의문이 가는 것은 그 깊이.

 

“나카무라군”

 

생각에 잠긴 자신을 부른 것은 문학 선생님. 다행이도 나카무라는 금방 자신의 세계에서 나와 부름에 대답했다.

 

“네?”

“거기, 보조 교제 73p부터 75p까지 읽어 보세요”

 

하필 자신을 시키다니. 다른 생각을 하던 것을 들킨 것 같은 민망함에, 나카무라는 헛기침을 하고 읽어야 할 문장을 찾고 곧 절망했다. 세 페이지나 읽어야 하는 것도 곤란한데 심지어 소설이라니. 하지만 선생님이 시킨 이상, 읽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카무라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문장을 읽었다.

 

“나는 몸을 비틀어, 애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간단하고도 진득한 문장.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는 건조한 애정의 문구에 나카무라는 한 문장 만에 괴로워졌다. 그 다음 문장을 좇아야할 나카무라의 눈이, 재빠르게 제 앞쪽에 앉아있는 하야카와를 향했다가 도로 종이위로 돌아왔지만 그것을 안 사람은 본인 외엔 아무도 없었다.

 

“「사랑해」. 애인은 나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고는「나도 사랑해」라고 말했다”

 

나카무라의 목소리는 언뜻 차분해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힘겹게 하나하나 목소리를 쥐어짜고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빠르게 줄줄 읽어나가기엔, 소설 속 문장들은 무겁고 달콤했다. 혀끝이 아릿해지는, 여류소설가의 문자들.

 

“똑바로, 성실하게…”

 

다음 문장을 읽으려던 나카무라의 입이 그대로 멈추었다.

읽는 소리가 이유 없이 멈추자 동급생들의 시선이 은근히 나카무라를 향했다. 얼른 읽으라고 재촉하는 것임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지만 나카무라는 도저히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나카무라는 나름대로 공부도 잘 하고, 책도 싫어하지는 않았다. 보통 그 또래의 남자들 보단 감성적인 편이라곤 할 수 있었지만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문장 하나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라니.

10초 정도의 정적 끝, 나카무라는 돌처럼 굳은 혀를 겨우 움직였다.

 

“나는 매일 조금씩 망가지고 있다”

 

 

 

 

“아까 왜 그런 거야?”

 

연습이 다 끝나고 노을이 질 때 쯤. 나란히 돌아가던 길 하야카와는 문학시간의 일을 물어왔다. 나카무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조금 목이 아파 그랬던 것뿐이라고 변명했다. 하야카와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나카무라의 옆을 지킬 뿐.

별 다른 대화 없이 교차점까지 다다른 두 사람 중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하야카와였다.

 

“내일 봐 나카무라! 안녕!”

 

힘찬 인사를 하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하야카와는 건너편으로 가지 못했다. 나카무라는 하야카와의 손을 다급하게 잡고는, 약하게 힘을 주었다.

 

“하야카와”

 

단지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도 나카무라는 갑갑함에 숨이 막혀왔다. 제 안에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 지금 자신이 왜 하야카와를 잡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단 어렴풋한 감각이 들었을 뿐.

결국 도저히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에 이끌린 나카무라는 천천히 손의 힘을 풀었다. 허무하게 놓아버린 손에 하야카와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왜 그래?”

“아냐, 내일보자. 잘 가”

“으음”

 

하야카와는 낮게 신음하더니 덥석 제 손을 나카무라의 머리위에 얹고, 슥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지만은 않은 손길에 고개를 들자 하야카와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나카무라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평소라면 마음이 따뜻해 질 미소가,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얼어붙는 듯 아파왔다.

 

 

 

+

 

교제에 나온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 입니다. 

당연하지만 실제 교제에 저 소설이 나오거나 하는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