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닌타마 란타로 츠루마치 후시키조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271회 주제 : 존경
(도대체 왜 약 5년만에 닌타마에 다시 치인거지?)
존경
written by Esoruen
“후시키조, 여기 약초 말려놓은 거 못 봤어?”
“응? 아니….”
“이상하네. 어디 갔지?”
선배들이 없는 보건위원회는 한가했다. 맑은 하늘, 지저귀는 새. 평화로움이 가득한 오후의 보건위원회실은 1학년들만이 모여 각각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지만, 가만히 앉아서 붕대만 정리하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것도 꼭 해야 하는 일이니까.’ 후시키조는 몰려오는 졸음을 눈을 비비는 것으로 쫒아내고 말아놓은 붕대들을 용구함에 넣었다.
‘어디 갔지?’ ‘여기 뒀는데.’ 말리던 약초를 찾는 란타로의 목소리는 그의 졸음을 더더욱 가중시켰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여어, 병아리들.”
“으악!!”
갑작스럽게 끼어든 목소리와 비명을 지르는 친구. 그림같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한방에 바꾸는 미성(美聲).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후시키조는 손님이 나타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이사쿠 군 있어?”
“미우시 선배!”
늠름한 자태. 어른스러운 손짓. 자신들 보다 한두 살 많은 개구쟁이 쿠노타마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한 그녀는, 쿠노이치 반의 상급생 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타치바나 선배가 질색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사람.’ ‘사실 좋은 집안 딸인데 사정이 있어 닌자가 되려고 한다.’ 미우시 토요노가 유명한 이유는 대부분 저런 소문 때문이었지만, 1학년 닌타마들이 기억하는 그녀는 소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젠포우지 선배는 지금 안 계셔요!”
“그래? 오, 그것보다 란타로. 과자 먹을래? 전병 있어.”
“네! 주세요! 주세요!”
“그래, 그래. 이 선배는 잘 먹는 후배가 좋단다. 기특하기도 하지.”
만나기만 하면 과자를 나눠준다. 과자가 없을 땐 잔뜩 귀여워 해주거나, 숙제를 도와주기도 한다. 무슨 이유인지 후배들, 특히 3학년 이하를 굉장히 예뻐하는 미우시는 상급생들에겐 도깨비일지 몰라도 하급생들에겐 존경할만한 선배가 아닐 수 없었다.
“맞다. 후시키조도 먹을래? 바쁘니?”
“네? 아…, 먹을래요. 바쁘지 않아요.”
란타로를 쓰다듬던 미우시와 눈이 마주친 후시키조는 손에 들고 있는 붕대를 놓칠 뻔 했다. 방금 전 까진 선배들이 없어 심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기 없는 선배들에게 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소리도 내지 않고 하던 일을 정리한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미우시 앞으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자, 여기.’ 어디 멀리 다녀온 걸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미우시가 내민 전병은 ‘나는 선물용 특산물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포장이 되어있었다. 예의바르게 두 손으로 전병 상자를 받은 후시기조는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젠포우지 선배는 왜 찾으세요…?”
“응? 아. 필요한 게 있어서 부탁하러 왔는데, 없다면 됐어.”
“괘, 괜찮으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순 없는 일인가요?”
1학년이 6학년을 잡고 이런 말을 하다니.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 왔다면, 젠포우지 선배를 찾는 거라면, 분명 보건위원회랑 관련된 일일 테니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후시키조의 말에는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어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미우시는 그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아아, 기특해라…. 괜찮아. 후시키조. 난 이사쿠 군에게 볼일이 있는 거니까. 그리 급한 일도 아니니 그렇게 안절부절하지 않아도 돼.”
“그런가요….”
“그래. 흐음. 하지만 기쁘네. 쿠노타마도 아니고, 닌타마 중에서 나를 이렇게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니. 나 생각보다 꽤 평판 좋은 선배인가?”
자신에 대한 소문은 악담밖에 모르는 걸까. 아니면 어린것들의 존경이란 모두 봄철의 꽃처럼 한철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미우시는 후시키조의 호의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서도 굳이 저런 소리를 내뱉었다.
“전 미우시 선배가 좋아요!”
“고마워, 란타로 군. 아 그리고 말린 약초는 방 바깥에 있더라. 그만 허둥거리고 일하렴. 선배는 간다?”
“헉, 거기 있었구나!”
전병을 먹고있던 란타로는 얼른 일을 완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말 귀엽다니까.’ 흐뭇한 얼굴로 중얼거린 그녀는 쿠노이치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여전히 전병 상자를 안고만 있는 후시기조를 보곤 멈춰 섰다.
“후시키조.”
“…응? 앗, 네?”
무슨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지 후시키조는 한 박자 늦게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안 그래도 우중충한 얼굴이 더 우울해 보이는 걸 보아, 좋지 않은 생각을 하던 게 분명하다. 미우시는 허탈하게 웃으며 몸을 숙여 그와 눈을 맞추었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두 얼굴이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그 전병. 내가 아주 좋아하는 거란다. 맛있게 먹으렴?”
“…네….”
“응. 선배들에겐 주지 마. 특히 이사쿠 군에겐 말이야.”
하하하. 제 농담에 큰 소리로 웃은 그녀는 후시키조의 볼을 쿡 찌르곤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눈 깜빡할 새에 사라지다니, 상급생다운 퇴장이지만 후시키조는 못내 그것이 아쉬워 전병 상자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휴우, 찾아서 다행이다. 아아~. 미우시 선배. 정말 멋있어. 그렇지?”
“응. 그렇지….”
약초를 들고 돌아온 란타로의 말에 성의 없이 답한 후시키조는 소중한 장물이라도 다루듯 전병이 들어있는 상자를 쓰다듬었다.
멋있는 선배. 존경하는 선배. 하지만 자신은 그저 수많은 후배들 중 하나일 뿐인 관계.
‘…이런 서스펜스는 싫어….’
하아. 덧없는 한숨에 전병 상자 끝에 붙어있는 리본이 팔랑팔랑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