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의 문자는 간결했지만, 그 안에 담긴 심각성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조는 문자 아래에 첨부된 주소와 지도를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늦게 일어나버리는 바람에 조금 더 쉬었다가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사건이 터지다니.
“주군, 레전드히어로가….”
“알고 있다. 가자, 사마의.”
“네? 아…, 소제 님인가요?”
사마의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조는 그렇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 주곤 겉옷을 챙겨입었다.
그의 오랜 지인이자 한때 같은 경찰서에서 일했던 소제는 조조가 태오라는 이름을 버리고 나서도 전적으로 그를 서포트 해주는 좋은 후배였다. 일반인을 말려들게 할 수는 없다는 강경한 조조의 의견도 잠시. ‘왕윤 선배님과 초선이도 엮인 일을 제가 어떻게 두고 봐요?’라는 그녀의 설득은 유효했고, 결국 그는 소제의 고집을 받아들여 직접적인 전투 외의 자잘한 도움을 주는 것을 허락했다.
“소제 아가씨, 본인 일도 있으실 텐데 늘 주군에게 연락을 주시다니. 정말 부지런하시군요.”
“형님, 이건 부지런하다기 보다는 다른 의미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주머니 속 영웅패들의 수다에도 조조는 입을 열지 않는다. 다른 의미라. 조조는 하후연이 무은 의미로 저런 말을 꺼냈는지 알았지만 그걸 직시하고 싶진 않았다.
제 후배는 흔히 말하는 인격자다. 약한 사람이 곤경에 처한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강한 사람이 힘을 악용하는 것도 두고 보지 못했다. 그것이 무술가 집안에서 자라 그런 것인지 그녀의 천성인지는 자신도 알 길이 없었지만, 확실한건 그런 성격을 가진 소제가 위험한 싸움을 하는 자신과 그 싸움에 이미 휘말려버린 초선을 그냥 방관할 리 없다는 것이었다.
‘초선이는 매일 제가 등하교 시킬게요. 왕윤 선배님이 하던 일을 제가 하는 것뿐이니 큰일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혹시 수상한 신고가 들어온다면 바로 선배에게 알려드릴게요. 그 중에서, 동탁 같은 인간이 있을지도 모르고.’
영웅패도 없는 일반인이 저렇게 까지 제게 깊게 도움을 줘도 될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미 드림배틀에 휘말려 영웅패의 존재를 알고 위험에도 처한 적이 있는 초선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신과 가까이 있는 것이 소제에겐 안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저런 단점과 장점을 비교하고, 지금까지 오게 된 조조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얼른 제가 드림배틀에서 우승해 ‘악의 말소’라는 꿈을 이루고 제 주변에 가해졌던 위험들도 되도록 빨리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더해졌을 뿐.
“선배! 여기에요!”
문자와 함께 온 주소에는 이미 소제가 도착해있었다. ‘아.’ 자신도 모르게 탄식한 그는 저 멀리서 날뛰고 있는 선계병패를 보고 다급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
“뭐 하고 있어? 문자로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일을 왜 네가 나와 있어?”
“네? 하, 하지만 시민이 휘말릴 수도 있는데, 경찰인 제가 없으면….”
“그런 건 다른 부서 놈들에게 맞기면 되잖아! 그리고 이제 내가 왔으니 얼른 가. 휘말리면 죽는다.”
이건 협박이 아니었다. 같은 레전드히어로간의 전투에도 심한 타격을 입게 되면 죽을 수 있는데, 무장도 하지 않은 일반인이 레전드히어로에게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비록 저기 있는 건 레전드히어로가 아닌 선계병패였지만, 영웅패도 없는 소제에겐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소제 아가씨, 여기서는 주군의 말씀을 듣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저는 싸울 수 없으니까….”
“이해가 빠르니 다행이군. 가자, 사마의. 하후돈, 군신일체다.”
‘네, 주군.’ 주머니에서 나온 하후돈은 조조의 손에 들어가면서 힐끔 소제를 보았다. 마치 주군은 반드시 제가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말아 달라 말하는 것 같은 눈짓이었다.
순식간에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 조조는 변신하여 자신은 상대할 수 없는 괴물들을 하나 둘씩 쓰러뜨린다. 그야말로 영웅 같은 모습이었지만, 소제는 오래 전부터 알고지낸 그가 최근처럼 위태롭게 느껴진 적이 없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무리 걱정하고, 아무리 제 힘을 다해 도와줘도, 자신은 영웅의 이름을 가지지 않고 영웅패도 없어 그와 함께 싸울 순 없다.
어차피 레전드히어로는 최후엔 모두가 적이 된다고 해도, 단 한 순간이라도 같이 싸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물러터진 소망을 마음속에 감춰준 소제는 닿지 못할 그의 등을 한참 바라보다가 경찰서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