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드림 합작에 제출한 글입니다. 합작 홈 주소 → http://gnyangdream.creatorlink.net/
※ 레전드ㅎi어로 삼국전 조조, 손책 양날개 드림. 오리주 주의.
간절함
written by Esoruen
자신은 언제부터 산타를 믿지 않았던가. 태오, 아니 조조는 그런 걸 기억하고 있을 만큼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내진 못했었다. 정이 없는 가정, 납치사건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기억들. 희미한 과거에 남은 것이라고는 제 인생의 갈 길을 정해준 왕윤의 모습과 자신의 정의를 응원해주고 함께 하기로 한 후배의 미소.
비록 지금 왕윤은 제 곁에 없어도, 자신은 계속해서 악의 완전소멸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제 등 뒤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선과 여전히 제 힘이 되어주는 후배, 소제가 존재한다.
그러니 자신은 계속 싸워야 하고, 살아남아야 했으며, 때로는 지키는 것을 위해 믿지도 않는 산타 역할을 해야 할 순간이 오기도 했다.
“아, 선배. 이거 맞죠? 초선이가 가지고 싶어 한 거.”
“그래. 그거다. 남아있어서 다행이군.”
그리고 오늘은 그 ‘산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소제와 함께 백화점에 온 참이었다. 모처럼의 휴일, 쇼핑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아까울지 몰라도 오늘은 예외였다. 초선이 가지고 싶어 한 장난감은 이미 알고 있으니 선물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고, 평소엔 잠깐 얼굴을 보거나 통화를 하는 게 전부인 소제와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이득에 가까운 시간이었지.
“으음, 편지는 따로 안 써도 되겠죠?”
“쓰면 글씨체로 눈치 챌지도 모르니까, 관두는 게 좋을 걸.”
“하긴, 초선이는 똑똑하니까 말이에요. 아, 맞아. 얼마 전에 말이죠….”
사이좋게 1층으로 내려가는 두 사람은 얼핏 보면 연인같이 보인다. 물론 실제로는 오래 된 선후배 관계일 뿐이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 보이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 서로의 존재는 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았고, 어쩌면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보다도 훨씬 심적으로 가깝기도 했으니까.
“선배, 저녁은 초선이랑 같이 먹을 거죠? 사실 장은 어제 봐왔어요.”
“시간도 남으니 그러도록 할까.”
“다행이다. 초선이도 좋아할 거예요.”
“그래.”
소제의 말에 기계적인 대답을 하는 조조는 문득 이 평화가 사치스럽게 느껴져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렇게 한가하게 저녁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잠깐 뿐. 내일이 되면 소제는 다시 경찰서로 출근해야 하고, 자신은 드림배틀을 위해 여기저기로 뛰어다녀야 한다.
역시 오늘과 같은 평화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드림배틀에 우승해 모든 악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다짐한 조조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든 순간,
“어, 조조! 소제 누나!”
“……?”
저 맞은편에서 익숙하지만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을 한 사람이, 제게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말았다.
“아, 손책 군!”
“…네가 왜 여기에….”
“아, 상향이랑 권이 선물 좀 사려고! 곧 크리스마스잖아? 그러는 두 사람은….”
“저희도 선물을 사러 왔어요. 초선이에게 줄 선물이요.”
방금 전까진 둘이서 사이좋게 이야기 하며 귀가 중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적과 마주치게 되고 훈훈한 분위기도 박살이 나게 된 걸까. 아, 물론 분위기가 박살이 났다고 하기 보단 훈훈한 분위기의 흐름이 바뀌어 제 기분이 박살났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까. 조조는 반가움에 대화를 이어가는 제 후배와 손책을 못마땅한 눈으로 번갈아 보았다.
“권이는 잘 있나요? 상향이는 가끔 보는데, 권이는 못 본지 좀 된 것 같네요.”
“잘 있지! 가끔은 강동관에 놀러와 줘. 다들 누나를 좋아하니까~”
“후후, 알았어요. 요즘은 바빠서 자주 못가긴 했죠.”
그래. 다름 아닌 자신의 싸움을 도와준다고 바빴지. 조조는 속으로 대꾸하며 소제의 팔을 잡았다. 그녀가 매일 경찰서에 들어오는 신고들 중 레전드히어로와 관련된 신고를 자신에게 몰래 말해주는 덕분에, 자신은 언제나 효율적인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소제는 제 편이라는 뜻인데, 왜 이렇게 저 둘은 ‘이미 알고 있던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경계심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걸까.
제 등 뒤에 있는 사람 외엔 대부분의 타인을 적으로 생각하는 조조로서는, 후배의 이런 사교성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초선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지. 실없는 대화는 다음에 해도 되니까.”
“네? 아, 잠깐만요, 선배…!”
가볍게 잡은 팔을 당기자, 소제는 조금 놀라긴 해도 군말 없이 그를 따라간다. 아마 손책과 나누고 싶은 말이 남았어도 조조의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입을 다문 거겠지. 소제는 그런 사람이었다. 타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욕구는 참을 수 있는, 침착하고 정 많은 사람.
“뭐야 조조, 벌써 가? 딱히 오늘은 싸울 생각도 없는데.”
“그래? 참 태평하군.”
“태평한 게 아니라 여유로운 거라고 해주지 그래? 나는 너처럼 삭막하진 않거든!”
“넌 그저 간절하지 않은 거겠지.”
손책의 소원 같은 건 모르지만, 그 누구도 제 우승해야 하는 이유보단 간절하지 않을 것이다. 유비도, 손책도, 다른 레전드히어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간절하지 않으니 함께 싸우자는 소리를 하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을 하는 거겠지.
왕윤과 함께 했던 정의를 위해서, 남겨진 초선과 언제나 곁에 있는 소제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이겨야 한다. 꿈을 이루어, 악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제 꿈의 무거움을 이해할 자가 누가 있을까. 아니, 그는 누구도 제 목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 제 옆에 서있는, 이 후배는 더더욱.
“선배, 괜찮아요? 뭔가 제가 말실수라도….”
“저녁은 뭐지?”
“네?”
“저녁 메뉴 말이야. 어제 장 봐왔다고 했지?”
아무리 남에게 마음 쓰는 것이 익숙한 소제지만, 갑자기 말을 돌리는 조조의 심정은 알 수 없다. 잠깐 침묵을 지킨 그녀는 제 손에 들린 초선의 선물을 힐끔 보곤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불고기에요.”
“고기인가….”
“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냐.”
‘얼른 돌아가지.’ 소제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뒤늦게 받아든 조조는 혼잣말 하듯 작게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