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Kurobas/빙우(히무로 右)

[자빙/무라히무] 액체의 마법

Еsoruen 2013. 12. 11. 06:35

 

※ If 설정 (무라사키바라 파티쉐, 바리스타 히무로) 입니다

 

 

액체의 마법

written by Esoruen

 

 

무라사키바라는 단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언제부터냐고 묻는다면,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의 가장 끝까지 되돌아가야 했었다. 유치원 복을 입고, 란도셀을 메고, 교복을 입고, 대학입학식에 가던 순간까지. 과거의 그 모든 자신의 손에는 과자가 들려 있었다. 달콤한 초콜릿, 다양한 맛의 사탕, 바삭하고 고소한 과자는 그의 가장 절친한 소꿉친구였다.

그런 그가 파티쉐가 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그쪽 학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너라면 잘할 거야’ 라던가 ‘역시나’ 같은 반응이었다. 무라사키바라는 망설이지 않고 제과제빵 학과에 들어갔고, 수석으로 졸업해 호텔의 디저트 카페에 취직했다.

그가 다니는 가게가 속한 호텔은 일본에서도 꽤 알아주는 고급 호텔로, 유명인사도 많이 머물렀다 가는 커다란 호텔이었다. 그 호텔의 2층에 위치한 디저트 카페는, 호텔 안 가게답게 비싼 가격과 최상의 맛을 자랑하는, 미식가들의 칭찬이 자자한 가게였다. 물론 그 칭찬은 디저트가 맛있다는 것과 커피가 맛있다는 것이니, 곧 무라사키바라를 향한 칭찬이기도 했다.

무라사키바라는 이 직장이 좋았다. 월급도 두둑하고, 근무 환경도 좋았다. 휴가도 제대로 주고, 원한다면 호텔을 이용할 때 이익도 있는 최고의 직장이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불만이라고 하기엔 작고 그저 스쳐지나가기엔 거슬리는 특이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같이 일하는 동료에 관한 것이었다.

 

 

무라사키바라의 쉬는 날은 금요일과 토요일이었다. 일주일 중 가장 놀기 좋은 두 날에만 쉬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굉장히 부러운 조건이었지만 그는 별로 휴일이 저 이틀인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계속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날 휴일이라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일하지 않는 일이 없었으니까.

신경 쓰이는 사람이란, 자신과 같은 파티쉐가 아니었다. 그는 바리스타였고, 단정한 얼굴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무라사키바라가 평하길 ‘전형적인 미남’이었다. 전형적인 미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무라사키바라는 분명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말 그대로 잘생겼다는 말이고’ 라고 하겠지만, 정말 그는 전형적인 미남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흰 피부, 달콤한 목소리, 큰 키. 순정만화 만화책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온 것 같은. 이상적인 남자.

잘생기고 다정하고 일까지 잘하는 그 남자가 신경 쓰이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였다.

 

“아츠시”

 

그는 무라사키바라를 부르며, 이리 오라는 듯 손짓했다. 케이크 반죽을 오븐에 넣던 무라사키바라는, 또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재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까 내보낸 케이크, 세팅이 약간 비뚤어졌더라고 서빙 하는 애가 말해주더라”

“그런 건 멀리서 그냥 말하면 되고”

“실수한건 큰 소리로 말해주면, 부끄럽지 않아?”

 

어차피 실수라도 자신의 실수가 아닌 타인의 실수, 저렇게 까지 신경 써 줄 필요가 있을까. 괜한 친절에도 무라사키바라는 기분이 뚱해졌다.

 

“알겠어, 조심하면 되는 거 아냐?”

 

무라사키바라의 대답에 남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이만 돌아가도 좋다는 눈짓을 보냈다. 제 자리로 돌아가면서, 점점 무라사키바라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무라사키바라가 그, 즉 히무로 타츠야라는 바리스타를 신경 쓰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신을 ‘아츠시’라고,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신경 쓰이는 일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무라사키바라에겐 너무나도 신경 쓰여 일에 지장이 올 정도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무라사키바라를 아츠시라고 부르는 사람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 중 한명. 그게 전부였다. 나머지 친한 친구들은 성으로 그를 부르거나 ‘뭇군’ ‘무라사킷치’ 등등 별명으로 그를 불렀다. 애초에, 겨우 같은 직장인 것뿐인 사람이 자신을 이름으로 부른다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무라사키바라는 그 친근함이, 마치 친한 척 하려 드는 그 상냥함이 싫었다.

무라사키바라는 왜 히무로가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가를, 처음 그가 이름으로 자신을 부른 날, 그러니까 같이 일하게 된 날부터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약 3개월 전, 미국에서 바리스타 공부를 하고 온 에이스라면서 매니저가 데려온 히무로는 다른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때 무라사키바라에게만 이름인 ‘아츠시’라고 부르며 악수를 청했다. 그때는 ‘외국에서 살다 와서 잘 모르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일단 악수를 받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직원들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정상이지 않겠는가.

 

“무라사키바라군”

 

오븐의 케이크가 다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케이크에 쓸 초코생크림을 휘젓다가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고개를 돌렸다. 같이 파티쉐로 일하는 동료 중 한명이 자신을 부른 것이었다.

 

“왜 그래?”

“그,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곤란하다는 듯 웃은 동료는 귀를 빌려달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무슨 사고라도 친 건 아닌가 싶어 영 찜찜했지만, 무라사키바라는 순순히 큰 덩치를 숙여 제 귀를 내주었고 동료는 고개를 쭉 빼 그의 귀에만 들리게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번 주 금요일 여자 친구 생일이라 그런데 하루만 나랑 휴일 바꿔줘”

“헤에”

 

사고 친 건 아니니 다행인가, 무라사키바라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제 기억으로 분명 이 동료의 휴일은 수요일과 목요일. 오늘은 화요일이었다.

 

“언제가 좋아?”

 

무라사키바라가 묻자 동료는 신이 나서 아무 때가 네가 쉬고 싶을 때 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라사키바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목요일로 날을 정했다. 동료는 신이 나서 매니저에게 말하고 오겠다며 그대로 가버렸고, 무라사키바라는 도로 허리를 펴고 크림을 휘저었다.

사실 목요일이든 수요일이든 상관은 없었다. 그저, 이번 휴일로 금요일 출근 때, 히무로를 보지 않을 것을 생각한 것이 기뻤을 뿐. 무라사키바라는 크림의 맛을 보며 슬쩍, 히무로의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문받은 카페라떼에 라테아트를 하고 있었다. 집중을 하고 있어서인지, 이쪽이 보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맛있네. 크림은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 무라사키바라는 입안에 감도는 단맛을 음미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틀 후 목요일 아침, 평소라면 출근을 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무라사키바라는 느긋하게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과자를 먹고 있었다. 막상 하루 휴일을 바꾼 것은 좋았지만 별로 할 것이 없는 것은 서글펐다. 사람이라도 만날까, 무라사키바라는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핸드폰을 열고 연락처를 뒤졌다. 그와 가장 친한 친구들은 모두 중학교 때 동창들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모두 제법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장 친했던, 자신을 ‘아츠시’ 라고 불렀던 동창은 프로쇼기기사로 아마 평일엔 경기와 연습으로 바쁠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친했던 동창은 유치원 보육교사로, 당연하지만 평일엔 근무 중. 제일 서먹했던 동창은 의사로 이쪽은 휴일에도 만나기 쉽지 않았으니 당연히 패스. 여자 동창도 있었지만, 이쪽은 연락이 잘 안되었다. 남은 친구는 둘. 직업은 각각 경찰과 파일럿. 다들 바빠 보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파일럿인 동창에게 문자를 넣었다.

‘키세칭, 뭐해? 해외?’

답장은 기대하지 않고 보낸 문자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3분도 되지 않아, 동창생에게서 답신이 날아왔다.

‘아뇨, 어제 막 미국에서 돌아와서 오늘은 쉬는 날임다!’

예상외의 수확에 무라사키바라는 살짝 기분이 들떴다. 그는 오늘 괜찮으면 만나지 않겠냐고 답장을 보냈다. 돌아온 대답은 OK. 이로서 무료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 무라사키바라는 외출 준비를 위해 핸드폰을 잠시 넣어뒀다.

약속장소는 시내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점심시간쯤 만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것 치고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사실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두 사람이 중학교 때 유별나게 친했던 것은 아니었고, 단지 동창 쪽이 상당히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라 이런 분위기로 흘러간 것이었다.

키세 료타라는 이름의 동창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 모델 일을 했을 정도로 잘생기고 유쾌한 미남이었다. 약간 가벼워 보이는 언행과 눈부신 금발머리를 빼면, 히무로와 비슷한 ‘전형적 미남’ 부류라고 무라사키바라는 생각했다. 자신을 ‘무라사킷치’ 라는 해괴한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이, 바로 이 친구였다.

 

“그런데 별일이네요, 무라사킷치가 날 보자고 하고!”

“그냥 키세칭이 제일 시간이 넉넉할 것 같아서”

“엑, 그거 뭠까?!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님다~ 이틀 뒤 또 출국 한다구요? 이번엔 파리로 감다!”

 

투덜거리며 말한 키세는 먹으면서도 계속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비행기에서의 일이나, 중학교 때의 추억 같은 사소한 것. 무라사키바라는 가만히 듣기만 했지만, 중간에 맞장구를 치거나 태클을 거는 정도의 호응을 해주며 먹는 것에 집중했다. 어영부영 식사가 다 끝나자, 키세가 먼저 다음 코스를 정했다.

 

“여기서 계속 있기는 그러니, 어디 카페라도 가야… 아, 무라사킷치가 일하는 카페, 이 근처 아님까?”

“에? 어떻게 알아?”

“전에 아카싯치에게 들었슴다”

 

아카싯치란 아카시, 즉 무라사키바라를 아츠시라 부르는 그 동창의 이야기였다. 전에 아카시는 무라사키바라가 일하는 곳을 구경하고 싶다고 한번 온 적이 있었다. 키세는 뭔가 재밌는 일을 발견한 사람처럼 신이나, 무라사키바라에게 졸랐다.

 

“저도 보고 싶슴다! 무라사킷치의 직장!”

“에, 으음”

 

난감했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히무로와 마주치지 않아서 좋은 휴일에, 도로 일터로 가 그를 보게 된다면 이 특별한 휴일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잠시 고민하던 무라사키바라는 자신이 고민하던 것을 키세에게 털어놓았다. 히무로에 관한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키세는 아까보다 더 흥미롭단 표정을 짓더니 턱을 괴고 웃었다.

 

“혹시 무라사킷치, 그 사람 좋아함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무라사킷치 성격이라면 이름으로 부르는 것 정도로 신경 쓸 것 같지 않아서 말임다. 그렇게 거슬려 한다는 건, 관심이 있단 거 아니냐는 뭐 그런 의미임다”

“전혀 아니고”

 

약간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은 무라사키바라는 아무 말 없이 물만 들이켰다. 제가 히무로를 좋아한다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는, 능청스럽게 제 이름을 부르는 그 남자를? 농담이라도 싫은 이야기였다. 흐음. 키세는 강한 부정을 하는 무라사키바라를 뚫어져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면 그 히무로라는 사람이 무라사킷치를 좋아하는 걸지도”

“하아?”

“제가 직접 봐야 알겠슴다! 자, 절 안내하세여!”

 

키세의 끈질긴 요구에 무라사키바라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에 도착한 두 사람은 볕이 잘 드는 창가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받는 직원은 바로 무라사키바라를 알아보고 오늘 휴일 아니냐며 아는 척을 해왔고, 그는 친구가 와 보고 싶다고 해서 온 것뿐이라고 대답해 주고 메뉴판을 받았다. 키세는 무라사키바라의 손에 들린 메뉴판을 같이 기웃거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야, 가게 좋네요. 무라사킷치 출세했슴다~”

“뭐 먹을지나 골라, 난 늘 먹던 거 먹으니 고를 필요 없고”

“그것보다, 그 히무로라는 사람은 어디 있슴까?”

 

키세의 관심은 이미 히무로에게 전부 가버린 것 같았다. 무라사키바라는 싫다는 얼굴로 가게 안에서 히무로를 찾았다. 히무로는 우유를 데우며 거품을 만들고 있었다.

 

“저 사람이고”

“헤에, 뭠까. 엄청 미남인데요?”

 

얼굴까지 확인하고 나자 호기심이 증폭한 키세는 대강 메뉴판을 훑더니 치즈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무라사키바라는 직원을 불러 키세가 고른 메뉴와 파르페를 주문하고 메뉴판을 넘겨줬다.

평일엔 손님이 적은 편이라 음식은 금방 나왔다. 키세는 치즈케이크를 덥석 덥석 먹으며 맛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고 무라사키바라는 괜히 우쭐해져 어깨를 으쓱였다. 보기만 해도 입 안이 녹아내릴 듯 단 파르페를 퍼먹으며, 무라사키바라는 슬쩍 주방 쪽을 보았다. 히무로는 그곳에 없었다. 없을 리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도로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 그의 시야에 히무로가 나타났다. 그것도 코앞에서.

 

“오늘 쉬는 날인데 왔네, 아츠시”

“…친구가 구경 오고 싶다고 해서 온 것뿐이고”

“안녕하세여~”

 

누가 소개시켜 주지도 않았는데 키세는 천연덕스럽게 히무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붙임성 좋은 인사에 히무로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는 입에 맞으신가요?”

“네! 맛있슴다!”

“다행이네요”

 

그럼, 난 일하러 가볼게 아츠시. 그렇게 말하고 히무로는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생긴 것만큼 성격도 좋은 사람이네요”

 

키세는 히무로를 계속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라사키바라는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무라사키바라는 그런 점이 싫다고, 그렇게 말하지도 못했다.

 

 

다음날 출근하자 히무로는 보이지 않았다. 히무로가 온 후 처음으로 히무로가 없는 날 하는 근무에 무라사키바라는 약간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적어도 오늘은 그를 신경 쓰며 일하지 않아도 됐다. 그것만으로도 무라사키바라는 충분했다.

일에 열중하자 시간을 평소보다 빨리 흘러갔다. 케이크를 굽고, 주문받은 케이크를 세팅해 내고, 반죽을 만들고, 생크림을 젓고. 평소와 똑같은 일을 했는데도 시간이 빨리 가는 탓은 아마 히무로가 없어서일 것이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무라사키바라는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떠있던 하늘은 별과 달로 가득 차있었고, 자신 외의 다른 직원들은 슬슬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끝이구나. 어쩐지 허무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그는 라커룸으로 가 작업복을 벗고 코트를 입었다. 보아하니 가게 안은 매니저와 두 명의 직원을 빼면 다 퇴근한 후 같았다.

그는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최대한 빨리 집에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푹 자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분명 영업이 끝난 시간인 지금, 가게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지금 영업은 끝인데…”

“알아 아츠시”

 

놀랍게도 가게에 온 것은 히무로였다. 무라사키바라는 놀라서 히무로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휴일에, 이미 영업도 끝난 시간에, 왜 그는 카페에 온 것인가. 자신을 경계하는 무라사키바라의 눈빛을 읽은 히무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어제 장갑을 두고 가서 가지러 온 거야”

“영업 다 끝나고 나서야?”

“오전에 어디 다녀왔거든”

 

히무로는 불이 꺼진 라커룸에 들어가더니 금방 장갑을 꺼내왔다. 장갑은 가죽장갑으로, 분명 어딘가의 메이커 제품인지 척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급품이었다. 저런 물건이라면 무리해서라도 찾으러 오려 할 수도 있겠지. 무라사키바라는 의심을 풀고 도로 퇴근하려 했다.

 

“아츠시”

 

가게 문 밖을 나서기 전, 히무로는 그를 부르고 손짓했다. 또 손짓. 무라사키바라는 불평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왜 불러”

“밖은 추워, 내가 커피 만들어 줄게. 마시고 갈래?”

“가게서 함부로 뭐 만들어 마시면 매니저가 잔소리하고”

“알아, 하지만”

 

비밀로 하면 되는 일이잖아?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덧붙인 히무로가 앞서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무라사키바라는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히무로의 뒤를 따라갔다.

주방에 들어온 히무로는 이것저것을 꺼내더니 잔을 하나만 꺼내 놓았다. 설마 자신의 몫은 안만들 셈인가, 무라사키바라는 미심쩍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서 히무로가 하는 일을 바라 볼 뿐이었다.

 

“아 맞아 아츠시, 생크림 좀 가져다줄래?”

“에”

“생크림 만드는 건 아츠시 일이니까”

 

시키는 것은 얄밉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츠시는 투덜거리면서도 보관하고 있던 생크림을 꺼내줬다. 생크림을 받은 히무로는 그 생크림에 깔루아를 부어넣더니 설탕시럽을 넣어 거품기로 저었다. 그리고 미리 꺼내 놓은 잔에, 또 깔루아를 넣더니 뜨거운 물과 에스프레소를 넣고, 미리 섞어둔 생크림을 부어 커피를 완성했다.

 

“방금 넣은 거 술 아냐?”

“그런데?”

 

히무로는 뭐가 잘못이냐는 듯 물었다. 무라사키바라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어른이었지만 술보다 주스가 좋았다. 그걸 알 리 없는 히무로는 그저 성인이니까 괜찮겠지 하고, 깔루아를 넣은 것이었다.

 

“…아냐, 그건 그렇고 왜 잔이 하나뿐?”

“이건 양이 많아서 둘이서 나눠먹어도 되거든”

 

확실히 커피는 혼자 마시기엔 많은 양처럼 보였다. 나누어 마시는 것이 그다지 내키진 않았지만, 그냥 받아먹는 입장서 뭐라 불평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그는 잠자코 히무로가 만든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홀짝. 소리 내어 마신 커피는 의외로 맛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향긋했다. 기대 이상의 맛에 무라사키바라는 얼굴이 환해졌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그로선, 맛있는 걸 먹는 것만큼 기분 좋아지는 일은 없었다. 한 모금씩 조금조금, 커피를 반이나 마신 그는 그제야 히무로에게 물었다.

 

“이거, 커피 이름은?”

“깔루아 커피야. 가게 메뉴에 있는 거야”

“헤에, 이거 꽤 맛있고”

“아츠시가 평소에 만드는 근사한 케이크들에 비하면 아니지만”

 

또 감언이설. 무라사키바라는 듣기 좋은 말에 의외로 불편해 하지 않고 커피를 내려놓았다.

 

“있잖아, 히무로”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무라사키바라는 용기 내어 제가 늘 신경 쓰던 것에 대해 입을 열었다.

 

“왜 나만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히무로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것 같은 표정 같기도 했고, 왜 그걸 이제 묻느냐는 표정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당황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짓던 그 미소를 지으며, 히무로는 제가 만든 커피로 손을 뻗었다.

 

“그거야, 아츠시와 친해지고 싶으니까”

 

그게 다야. 자신이 대답할 것은 그것뿐인지 히무로는 남은 커피를 천천히 한 번에 다 마시고 빈 잔을 싱크대에 놓았다. ‘설거지는 내일 누군가 하겠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그렇게 대답한 히무로는 먼저 부엌을 나가면서, 슬쩍 무라사키바라에게 말했다.

 

“아츠시도 날 이름으로 불러도 돼. 별명이라도 좋고”

 

 

월요일, 무라사키바라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새하얀 유니폼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후, 부엌으로 가려고 라커의 문을 닫았을 때, 라커룸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안녕, 아츠시”

 

히무로는 토요일 날 일을 떠올리는지, 평소보다 더 즐거운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했다. 무라사키바라는 그 인사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제 할 일을 하러 갔을 텐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소리 내서, 인사를 하고 싶었다. 안녕. 이 한마디만 하기엔 어색하다. 그렇다면 이름을 부를까 했던 아츠시는, 뭔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지 빙긋 웃었다.

이름이 아니면 별명이라도 좋다고 했었지. 히무로의 말을 떠올리며 무라사키바라는 인사에 회답했다.

 

“…안녕, 무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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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트리플지로 나올 원고였습니다만, 트리플지가 공중분해 되어 이렇게 올립니다

IF는 역시 색다른 맛이 있는거 같아요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