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Kurobas/빙우(히무로 右)

[자빙/무라히무] 먹구름은 솜사탕으로 만들어졌다

Еsoruen 2014. 1. 9. 23:18

 

 

 

먹구름은 솜사탕으로 만들어졌다

written by Esoruen

 

 

무라사키바라와 히무로는 같은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사람이 같이 작은 카페를 경영하고 있었다. 도쿄의 유명 여고 앞, 2년 전 개업한 카페는 언제나 흑자가 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 그것은 싼 가격과 맛있는 커피, 그리고 달콤한 디저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고 앞이라는 좋은 장소에, 두 사람의 외모까지 더해져 입소문을 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두 사람은 잘생긴 편이었다. 키도 컸고, 연예인을 해보지 않겠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에 목소리도 좋았다. 카페에 오는 여고생들은 바리스타인 히무로와 파티쉐인 무라사키바라를 보며 ‘애인이 있어요?’ 라던가 ‘이상형이 뭐에요?’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두 사람은 능청스럽게 그 질문을 넘기곤 했다.

그것도 그런 것이, 두 사람은 서로 사귀고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같은 농구부였다가 같은 대학으로 진학했다. 물론 학과는 요식업에 관련된 과였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붙어 다녔다. 그렇게 붙어 다닌 것이 몇 년이나 흘렀을까. 무라사키바라의 고백으로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카페는 문을 닫았다. 가게 셔터를 내린 무라사키바라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히무로에게 물었다.

 

“무로칭, 오늘 한잔하러 갈래?”

“응? 아츠시가 먼저 한잔하러 가자고 하다니. 별일이네. 술 쓰다고 싫어하잖아. 약하기도 하고”

“전에 마신 그건 맛있었고”

 

무라사키바라가 말한 그것은 전에 히무로가 데려간 바에서 사준 칵테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히무로는 ‘그래?’ 라고 대답하고 무라사키바라의 손을 잡았다. 자신보다 큰, 늘 케이크와 과자를 만드는 손은 갓 내린 커피처럼 따뜻했다. 꽤나 쌀쌀한 날씨였고, 바까지 가는 길은 멀었지만 두 사람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그것은 두툼한 외투나 장갑 때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다는 그 사실이, 서로에게 따스함을 주었다.

바에 들어온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전에 마신 칵테일을 주문했다. 한잔 두잔 기울이다 보니, 두 사람은 조금 취해서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때, 커다란 몸뚱이가 털썩 엎어졌다.

 

“아츠시?”

 

무라사키바라는 테이블에 엎어져 그대로 잠든 것 같았다. 그의 잠버릇은 취하면 잠드는 것이었기에, 히무로는 그다지 놀라지 않고 안주를 우물거리며 무라사키바라를 쓰다듬었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이 연인은, 굉장한 케이크를 만들어낸다. 다른 요리는 평범하게 먹을 만한 정도로만 맛있다면 케이크나 과자는 정말 맛있게 만들어내는 것이 무라사키바라의 특징이었다. 손에 마법이라도 걸린 것일까, 그가 만든 케이크는 달콤하고 부드러워 손님들이 늘 찾아오게 만들었다.

 

“신기하다니까”

 

두 손으로 무라사키바라의 손을 주물럭거리자 그는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것이 느껴지는지 가볍게 뒤척였다. 그런데 뒤척이면서 벗어 둔 코트가 떨어지는 바람에, 히무로는 허리를 숙여 코트를 주워줘야 했었다.

 

“응?”

 

후두둑. 코트를 줍는 과정에서 주머니의 물건이 쏟아져 나오자 그는 당황하여 물건을 주워 일단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가게의 열쇠, 핸드폰, 일할 때 머리를 묶는 용도로 쓰는 머리끈까지.

‘뭘 이렇게 많이 넣고 다니는 거야?’

나중에 깨어나면 잔소리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히무로는, 마지막으로 수상한 종잇조각을 주웠다. 설마 영수증까지 넣고 다니는 건가 싶어 종이를 펴 본 히무로는 경악했다. 그것은 편지가 적힌 쪽지였다.

‘계속 좋아했습니다. 사귀어주세요’

아마도 가게를 오가는 여고생이 준 쪽지 같았다. 히무로는 괜히 기분이 나빠져 잠든 무라사키바라를 바라보았다. 이런 것은 언제 받았으며,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인가. 게다가 이렇게 보관까지 하고 있었다니.

 

“아츠시”

 

따질 생각으로 불러도 무라사키바라는 묵묵부답. 아무래도 많이 취한 것 같았다. 히무로는 쪽지를 제 주머니에 넣고 코트를 무라사키바라에게 입혀 가게를 나왔다. 자신보다 큰 무라사키바라를 끌고 나오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히무로에겐 견딜 만한 일이었다. 끙끙거리며 택시를 잡고, 두 사람의 동거 방으로 온 히무로는 내팽개치듯 무라사키바라를 침대위에 눕히고 자신은 바닥에 누웠다. 평소라면 옆에 누워 함께 잤을 테지만, 오늘은 같이 자고 싶지 않았다. 술을 몇 잔 마신 덕분에 잠은 쉽게 왔지만 기분은 찜찜했다. 히무로는 싫은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숙취로 끙끙거리며 일어난 무라사키바라는 대뜸 화가 난 히무로와 말씨름을 해야 했다.

 

“아츠시, 이거 뭐야?”

 

바닥에 앉아 쪽지를 보여주며 묻는 히무로는 무슨 대답을 해도 무라사키바라에게 화를 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라사키바라는 쪽지를 보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가, 냅다 쪽지를 빼앗아 내용을 보았다.

 

“무로칭, 이건”

 

무라사키바라는 당황해서 변명을 하려는 듯 재빨리 말을 내뱉었지만, 히무로는 듣기 싫다는 것처럼 그 말을 잘랐다.

 

“됐어, 난 변명이나 듣자고 물어본 게 아니니까”

“아니, 지금 내 말은 하나도 안 들어 보고 그러는 거잖아. 무로칭이 오해하는 거 같으니 난 오해를 풀어주려고 하는 것뿐이고”

“오해? 고백을 받아주려고 한 게 아니었다고 말할 셈이야? 아츠시, 내가 화가 난건 네가 바람을 피울까봐 화내는 게 아냐. 나에게 아무것도 말 안 해준 게 화가 날 뿐이지”

 

따발총을 쏘듯 말을 와르르 쏟아낸 히무로는 길게 한숨을 쉬고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무라사키바라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히무로에게 해명도 변명도 못 하는 채, 안절부절 그의 표정을 살필 뿐 이었다.

 

“무로칭”

 

가늘게 떨리고 있는 히무로의 어깨에 무라사키바라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히무로는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큰 손을 뿌리쳤다.

 

“만지지 마”

 

경고하듯 말한 히무로는 옷을 챙겨 입더니 가게 열쇠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히무로는 우산도 없이 가게까지 전력질주 했다. 가게는 집 근처에 있었지만, 가게에 도착했을 때 히무로는 이미 온 몸이 젖어버렸다. 숨을 고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 히무로는 그대로 가게 입구에 주저앉아 울었다. 속상하고 답답하여, 그저 울었다. 별로 싸운 일이 없는 두 사람이었기에 이런 사소한 일로도 히무로는 눈물이 났다.

 

‘똑똑’

 

그때,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가게 영업은 점심시간부터인데, 손님이라면 돌려보낼 생각으로 슬쩍 가게 문의 창문을 보자, 밖에는 비에 젖은 무라사키바라가 서있었다.

 

“무로칭, 문 열어줘. 가게 준비해야 나중에 오픈하지”

“……”

 

히무로는 창문에서 눈을 돌리지도, 문을 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과 같이 비에 젖은 무라사키바라를 빤히 보며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무로칭, 그 쪽지 말이야”

“듣기 싫어”

“그거, 누가 무로칭에게 주라고 전해준 쪽지야”

“뭐?”

 

눈이 빨개질 때 까지 눈을 비비던 히무로는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지금 무라사키바라가 한 말이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그는 눈물을 뚝 그치고 되물었다.

 

“무, 무슨”

“그거 내가 받았지만, ‘히무로씨에게 전해주세요~’ 라면서 받은 거고. 고백 받은 건 내가 아니라 무로칭. 질투해야 하는 건 나인데, 나 솔직히 황당하고”

 

무라사키바라는 입을 삐죽이더니 비에 젖어 축 늘어진 머리를 뒤로 넘겼다. 히무로는 이제야 알게 된 진실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끄러움과 미안함,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창피함에 비로 차가워진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로칭 이제 문 열어 줄 거야? 사과도 안하고, 너무하고. 나 젖어서 감기 걸릴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안 들여보내 줄 거야?”

 

화를 낼만한 상황인데도 무라사키바라는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서 용기를 얻은 히무로는, 멈칫하던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히무로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무라사키바라는 그를 꽉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미안해 무로칭, 울려버렸네”

“아냐, 아니야 오해해서 멋대로 화내서 미안해 아츠시…”

“자아, 들어가자 무로칭”

 

두 사람은 가게에 들어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침이라고 해봐야 커피와 토스트가 전부였지만, 두 사람은 웃으며 밥을 먹었다.

 

“비가 계속 오네”

 

히무로는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비가 오는 날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이 많아 장사가 더 잘 되니까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그는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습기 있는 공기와 우산을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 그런 자잘한 것이 히무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있잖아 무로칭”

“응?”

“나 어렸을 때는 구름이 솜사탕으로 만들어 졌을 거라고 생각 했어”

 

빗방울로 얼룩진 창문을 쓰다듬으며 무라사키바라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비오는 날은 설탕물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좋았어”

 

솜사탕에서 떨어지는 물이니 설탕물이라는 것일까. 무라사키바라다운 생각에 히무로는 저절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응, 그래서 난 지금도 비오는 날이 좋아”

 

그렇게 말한 무라사키바라는 다 먹은 식기를 치우고 히무로를 뒤에서 껴안았다. 방금 구운 빵처럼 따뜻한 체온, 히무로는 제 머리 위에 턱을 올리는 그를 쓰다듬으며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비오는 날이 좋아질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