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울 앞에 앉은 쉔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가면과 복면을 벗었다. 달빛밖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진한 피 냄새, 작고 초라한 쉔의 방에 죽음의 냄새가 퍼졌다.
오늘도 균형을 위해 사람을 죽인 그의 표정은 어느 때와 똑같이 무덤덤했다.
흐르는 피를 닦아낸 쉔은 더러워진 수건을 구석으로 밀어 놨다. 그리고 피에 절은 옷을 벗고, 몸을 닦고, 새로 생긴 상처를 치료했다. 자기 전, 깨끗한 상태로 돌아온 쉔은 피가 묻은 모든 것을 저 멀리 밀어두었다.
“꽤 화려하게 해치우고 왔나보지?”
창문 밖에 들리는 소리에 쉔은 동요하지 않았다. 거울 속 자신만을 바라보던 쉔은 바깥의 손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제드”
“기만된 것을 지키느라 늘 수고가 많군, 쉔”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쉔의 말은 단호했다.
“그런 것 치곤 걸작인 얼굴이군”
제드의 붉은 눈동자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쉔의 얼굴은 희고 밝았지만, 정작 그 얼굴에 자리 잡은 입술은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제드는 저 멀리 자리 잡은 쉔의 얼굴, 정확하게는 그것이 비친 거울에 손을 뻗었다. 균형 잡힌 이목구비를 가로지르는 흉터를 쓰다듬듯, 허공을 휘저은 제드의 손은 붉은 색이였다.
“내가 남긴 흉터는 잘 있는 것 같군”
“없어질 것이 아니니까”
“하! 베일 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렇지도 않은 놈이”
제드는 쉔의 아버지이자 제 사부인 그를 죽였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자신은 사부만을 죽인 것이 아니라 킨코우의 사원을 뺐고, 쉔의 얼굴엔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만들어 놨다. 하지만 쉔은 아칼리와 케넨을 데리고 도망을 칠 뿐, 분노를 보이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뭘 원해서 온 거지, 제드. 칼부림이라면 응해주지”
“그런 건 어찌되든 좋아”
제드는 팔을 거두고 창문에서 멀어졌다.
“난 네 절망을 원할 뿐이야”
제드의 중얼거림은 달빛과 같아 원치 않아도 쉔의 방으로 흘러들어왔다. 쉔은 여전히 거울만 보고 있을 뿐, 창밖을 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요지부동인 등을 바라보던 제드는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차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쉔은 기척이 사라지고 한참 뒤에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절망인가. 차갑게 식은 입술이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