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앵/이마사쿠] 괜찮아
괜찮아
written by Esoruen
to. 찻뮈님
어렸을 때부터 나는 ‘괜찮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주 먼 기억의 저편, 샛노란 유치원복을 입던 시절부터 나는 언제든 괜찮다는 말을 해야 했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 살면 안 된단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듣고 자란 말이었겠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말하셨다.
“뭐든 양보하고 살아야 된단다”
어쩌면 폐를 끼치지 않는 다는 것과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비슷한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키의 반 정도도 안 되던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뭐든 내가 먼저 사과하고, 뭐든 내가 참아야 한다.
그래서 생긴 내 말버릇이 ‘괜찮습니다’와 ‘죄송합니다’ 이 두 가지였다.
“사쿠라이! 괜찮냐?!”
와카마츠 선배의 목소리는 체육관 전체를 울릴 정도로 컸다. 꼴사납게 넘어진 나를 향해 달려온 부원들 중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와카마츠 선배는 날 일으키고 아오미네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넌 사과 한마디 없냐!?”
“료가 받을 줄 알았지”
아오미네씨는 귀를 후벼 파며 이쪽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나는 괜찮다고 언제나처럼 말하며 얼얼한 왼쪽 이마를 문질렀다. 내 이마를 가격한 농구공은 이미 저 멀리 굴러가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연습을 하러 온 아오미네씨는 갑자기 ‘나 혼자 연습 좀 하다 갈거다’ 라며 골대 앞에서 혼자 슛 연습을 했다. 여기까지는 모두 좋았다. 혼자 하는 연습이지만 연습을 와준 것 자체가 감사한 아오미네씨였고, 모모이씨도 주장도 감독도 아무도 그를 터치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오미네씨가 오랜만에 나타난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도 분명 있었다. 부원 중 누군가는, 혼자서 연습하는 아오미네씨를 골릴 작정이었는지 그의 뒤통수를 향해 농구공을 던졌고, 악의에 차 날아오는 공을 눈치 챈 아오미네씨는 그 공을 받지 않고 쳐냈다.
그리고 그 공은 패스연습을 하던 내게 날아오고 말았다.
“마 사과하고 끝내는 게 좋지 않겠나, 아오미네”
아오미네씨와 와카마츠의 신경전을 멈춘 것은 주장이었다. 차마 주장의 말엔 아오미네씨도 어쩔 수 없는지 날 슬쩍 본 아오미네씨는 살짝 인상을 쓰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료”
“아니요, 괜찮아요…”
“사과했어, 그럼 난 간다?”
아오미네씨는 마치 도망치듯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솔직하지 못한 놈’ ‘성격 하고는’ ‘건방져’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모두가 아오미네에게 쓴 소리를 하는 와중, 나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은 모모이씨와 주장이었다.
“괜찮아 사쿠라이군?! 치료해야 되겠는데…”
“아, 아니에요! 전 정말 괜찮으니 연습해요 우리”
“니 참말로 연습 계속 할 수 있겠나?”
“그럼요, 그, 죄송합니다! 공 따위에 맞아서 죄송합니다!”
이마는 조금 부어올랐지만 이 정도로 연습을 멈추는 것은 못 할 짓이었다. 나 때문에 연습의 흐름이 끊긴다면, 그건 엄청난 민폐일 테니까. 모모이씨는 정말 괜찮으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먼저 공을 집어든 나는 같이 연습하던 부원들에게 먼저 연습을 계속하자고 했다.
결국 연습은 5분 만에 재개되었고, 늘 끝나는 시간에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라커룸으로 간 나는 거울을 보고 흠칫했다. 왜 그렇게 모모이씨가 집요하게 괜찮으냐고 물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울 속 나는 커다란 혹을 단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연습을 했단 말인가. 아픈 것 보단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빨개졌다. 거리에 나가면 분명 모두 쳐다볼 텐데, 그건 또 어쩌지.
“사쿠라이”
“네, 네?”
날 부른 것은 이마요시 선배였다. 선배는 얼음물이 든 페트병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걸로 혹 문질러라”
“아, 그,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마 얼른 문지르기나 해라”
어깨를 가볍게 쳐 주며 날 위로해 주신 주장은 옷을 갈아입으러 가버리셨다. 나도 얼른 갈아입어야 하지만 우선은 이 혹이 문제였다. 열심히 혹에 차가운 페트병을 문지르는 동안 부원들의 대부분은 옷을 갈아입고 하교해 버려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라커룸에 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도 돌아가야지. 미지근해진 페트병을 의자 위에 놓아두고 옷을 갈아입은 나는 조금 가라앉은 혹을 가리고 체육관을 나왔다.
“늦게 나오네, 니”
“으아아아!!”
이미 가 버린 줄 알았던 이마요시 선배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있자 나는 깜짝 놀라 이상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선배는 내 표정을 보더니 억지로 웃음을 참고 물었다.
“혹은 좀 괜찮나?”
“아, 네. 가 감사합니다, 선배”
내가 다친 것 때문에 기다려 주신 걸까.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할까 했지만 그랬다간 또 ‘사과 그만해라’는 소리나 들을게 뻔하겠지.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나는 땅바닥만 보며 선배와 나란히 걸어갔다.
“사쿠라이, 니 말이다”
조용히 걸어가다가 먼저 말을 건 것은 선배였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네?”
“아프면 아프다고 하는 거 정도는, 아무도 뭐라 안한다. 괘안타고 할 필요도 없다”
선배의 손이 내 혹에 닿자 난 놀라서 고개를 빼고 말았다. 잠깐이었지만 선명한 아픔, 표정이 일그러지려는 걸 참느라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해야 했다.
“봐라, 이래 아프면서 뭐가 괘안노?”
“하, 하지만”
“아오미네 가를 너무 원망하진 말그라. 원래 그런 아 아이가. 집에서 약 바르고”
그렇게 말한 선배는 학교 조금 앞 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일 텐데도, 선배의 말은 쉽게 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말 난 ‘괜찮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횡단보도 앞까지 걸어갔던 나는 도로 교문 앞으로 뛰어갔다. 선배는 이미 기숙사로 들어간 것인지, 운동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혹을 어루만지며, 나는 마음속에 선배의 뒷모습에 말을 걸었다. 아까 공에 얻어맞았을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이상하게도 지금 흘러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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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찻뮈님 생일 선물 금앵입니다! 엽궁을 쓸까 금앵을 쓸까 고민하다 금앵으로..^//^
찻뮈님 생일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