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Kurobas/엽궁(하미야)

[하미야/엽궁] Bitter candy 01

Еsoruen 2013. 2. 23. 13:41





※ 이 소설은 If 설정 기반입니다. 거부감이 있으신분은 주의해주세요.







Bitter candy

01

written by Esoruen

 




우당탕. 요란스러운 소리가 점심시간 북적거리는 복도에 울려 퍼졌다. 긴장으로 경직된 공기 속, 시선은 계단에 엎어진 남학생에게로 집중되었다. 미부치는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제 친구를 향해 한숨을 푹 쉬곤 다급하게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기절하지는 않았는지, 앓는 소리를 하며 일어난 남학생은 자신을 걱정하며 다가온 미부치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어보였다.

 

"아야… 아, 난 괜찮아 레오누님!"

"코타로!! 정말이지, 너란 애는 유연성도 좋은 애가 왜 한눈을 팔다 넘어지니!"

"하하하… 어라"

 

일어서자마자 찾아온 것은 시큰거리는 고통, 이질적인 통증에 교복 바지를 걷어 올리자 검붉어진 무릎이 보였다. 아무래도 굴러 떨어지면서 잘못 부딪혀, 살갗이 까진 것 같았다. 제법 큰 상처인데다, 바지가 젖을 정도로 피가 나온 것 치곤 하야마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 옆에 서있던 미부치는 소스라치게 놀라 유난을 떨었다.

 

"세상에, 이게 뭐야!"

"까졌나봐!"

"누가 그걸 모르니?! 하여간… 양호실 가자!"

 

동급생 보단 마치 친누나처럼 그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미부치는 그를 양호실까지 질질 끌고 갔다. 그것도 뒷목을 야무지게 잡고. 아무리 성격이 여성스러운 미부치였지만, 그래도 하야마보단 키는 훨씬 컸다. 하야마는 결국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며 '난 괜찮아' 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야마의 말을 전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양호실 앞까지 온 그는 입이 비죽 나온 하야마를 놓고 충고했다.

 

"잘 들어! 넌 우리 농구부 레귤러야! 다쳤으면 어떤 상처라도 제때제때 치료해야 한다고! 난 먼저 교실에 가 있을 테니 치료하고 와!"

"에? 같이 안 있어 주는 거야?!"

"네가 애니?"

 

흥. 콧방귀를 끼고 먼저 자리를 뜬 미부치의 등을 멍하니 보던 코타로는 양호실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하얀 미닫이문, 그리고 거기 붙어있는 '노크필수' 라고 적힌 이면지. 하야마에겐 이 모든 것이 낯설었다. 벌써 2학년이나 되었지만 양호실에 와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한 번도 아프거나 다친 적이 없었고, 부활동 중 소소하게 삐거나 다친 건 매니저나 본인이 알아서 치료했다. 어떻게 보면 이 학교에서 자신과 가장 인연이 없는 장소였기에, 하야마는 괜히 긴장이 되어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뻗었다.

똑똑.

노크를 해 봤지만 안쪽에서 아무 대답이 없다. 이렇게 노크하는 것이 아닌가? 반응이 없자 당황한 하야마가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이번에는 즉각 반응이 왔다. 안심한 하야마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정면에 앉아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퉁명스러운 말투, 졸다가 일어났는지 조금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는 하야마를 보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펜과 종이를 꺼낸 남자는 대뜸 그것들을 책상 위에 두더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안 들어오고 뭐해. 빨리 이거 작성해. 양호실 처음 오냐?"

 

네, 라고 말대답을 하면 혼날 분위기였다. 너무나도 조용한 양호실 분위기 때문에 발소리도 죽이고 들어온 그는 책상 위의 종이를 보았다. 종이엔 표가 그려져 있었고, 이름과 학번 증상을 적는 칸이 있었다. 이름과 학번을 적는 것은 숨쉬기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지만, 증상? 뭐라고 적어야 하나 망설여졌다. 출혈. 이건 아닌 것 같고. 까짐. 이것도 아닌 것 같고. 한참을 펜만 만지작거리며 병명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타박상' 이라고 적고 종이를 건넸다. 종이를 받은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종이와 하야마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의 옆에 있는 작은 의자를 끌어온 그는 하야마보고 앉아라는 듯 손짓했다.

 

"어디 까졌냐?"

"여기요!"

 

잽싸게 앉자마자 바지를 걷어 올린 하야마는 상처의 깊이와 달리 밝은 톤으로 대답했다. 꽤 피가 나오는 무릎에, 혀를 찬 남자는 이것저것 서랍에서 꺼내 치료를 시작했다. 소독솜이 상처부위에 닿을 때 마다 하야마가 인상을 썼고, 그런 하야마가 신경도 안 쓰이는지 남자는 잔소리를 퍼부었다.

 

"상처 꼴을 보니 어지간히도 심한 장난을 치고 논 모양이군, 가만히 있어. 쯧, 하여간 점심시간에 잠시 쉬는 것도 못하겠네."

 

투덜거리며 상처를 치료하는 남자는 입이 째져라 하품을 했다. 이 사람이 양호선생인가? 양호실에 있으니 아마도 그렇겠지만 하야마의 눈으로는 봐도 믿을 수 없었다. 염색한 것처럼 샛노란 금발, 정성스럽지만 불평 가득한 진료, 그리고 찡그리고만 있는데도 곱상한 얼굴. 애초에 남자 양호선생님은 처음 본 그의 입장에선 모든 게 다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 됐다, 물 안 닿게 조심하고 연고 계속 발라"

"아,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한 하야마는 능숙하게 처치된 자신의 무릎을 신기하다는 듯 요리조리 보았다. 자신이나 농구부 매니저 아이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깔끔함. 과연 선생님은 다르구나, 라는 생각에 히죽 웃었다.

 

"뭐가 좋다고 웃냐?"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은 양호선생은 책상에 엎어져선, 어서 가란 듯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예비종이 울렸고, 하야마는 인사를 할 기세도 없이 양호실을 뛰쳐나갔다.

교실까지 뛰어가며, 하야마는 욱신거리는 무릎도 다음 교시에 대한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제 무릎 위를 오가던 고운 손, 양호실 특유의 냄새, 졸음이 덜 깨 살짝 가라앉아있던 목소리, 왜 자신은 지난 일 년간 양호실 문턱에도 가지 않은 것인가! 후회를 넘어 자책만이 들었다. 분명 남자인데도 하야마는 그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교실에 와 책상에 엎어진 그는 괜찮냐고 물어오는 미부치의 말은 들리지 않는지 가만히 누워 양호실의 선생만을 떠올렸다.

 

 





미야지 키요시.

하야마는 결국 반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양호선생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예상대로 화려한 외모 덕분에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자주 화제가 되곤 하는 바람에 이름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어쩐지 슬픈 기분이 들어버렸다. 자신은 마치 사막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은 듯 한 기분에 젖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 외엔 모두가 알고 있는 존재였다니. 그렇다고 그 아름다움에 흠집이 가거나 감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자신의 무지함이 슬퍼진 것뿐이었다.

하야마의 머릿속은 간단했다. 농구 그리고 낙제하지 않을 정도로 성적을 내는 것. 그것이 학교생활의 전부였고 그 외의 무언가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반과 농구부엔 예쁜 여학생도 있었지만 연애엔 관심도 없었고, 외롭다거나 솔로인 것을 슬퍼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고작 오늘 하루만에, 양호실을 처음 가본 것을 후회하게 되다니.

스스로도 매우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우스움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제 학교의 양호선생님은 미남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이야기 해준 바에 의하면, 미야지 키요시는 33살에 솔로, 혼자 살며 출퇴근이 빠른데다가 주로 양호실에만 있어 만나고 싶다면 양호실로 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금 쌀쌀맞은 구석이 있어도, 아픈 학생에겐 뭐라 못 하시는 게 좋다니까"

 

자신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쳐준 여학생이,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귀띔했다. 확실히 그랬다. 조금 차가운 구석이 있어보였지만 치료 후 자신에게 보여준 미소는 양호선생으로서 자애와 사랑이 넘쳤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은 왜 물어봤어?"

"응? 그냥 고마운데 이름도 모르니까!"

"풉, 하야마군은 은근히 귀엽다니까? 그럼 난 간다~"

"잘 가"

 

여학생은 데이트라도 가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실을 나갔다. 방과 후 바로 하교하는 저 모습이, 하야마는 묘하게 부럽기도 했다. 농구부 레귤러인 그는 언제나 연습을 위해 방과 후엔 체육관으로 갔으니까. 물론 농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연습은 싫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냥 문득 빠지고 싶단 생각이 드는 날이 있었다.

다쳐서 그런 건가.

지금은 통증이 많이 준 무릎을 매만지자,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항의하듯 따끔거림이 신경을 통해 흘러왔다. 겨우 까진 것으로 연습을 빠질 수는 없었다. 자신도 그것은 싫었고, 농구부의 감독보다 더 무서운 1학년 주장도 그걸 납득할리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의욕이 없는 건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주번인 미부치를 두고 터벅터벅, 나 오늘 불만 있소, 라고 말하는 걸음걸이로 교실을 나오자 교내는 이미 조용했다. 짜증이 나 소리라도 지르려 했지만 그랬다간 근처 교무실서 역정이 들려올게 뻔했다. 그렇지만, 하야마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하교하고 싶다!!"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지만, 예상외로 교무실은 조용했다. 대신,

퍽.

 

"하교하던가"

 

퉁명스러운 대답과 함께, 그의 머리를 향해 꿀밤이 날아왔다. 무릎이 까졌을 때도 우는 소리 한번 안하던 그였는데, 제 머리를 친 주먹이 어지간히도 야무졌던 건지 하야마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고 말았었다.

 

"아얏!"

 

안 그래도 기분이 꿀꿀한데, 한대 맞기까지 하니 하야마는 심통이 나 화를 내기 위해 고개를 획 돌렸다. 제 머리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칠만한 사람은 선생님 아니면 같은 농구부 사람뿐이었으니까.

 

"왜 때려! …어라?"

"아? 너는…"

 

뒤돌아 본 그곳에는, 낮과는 다른 복장의 양호선생이 가방을 들고 서있었다. 머리의 통증도 잊어버릴 정도로 놀란 하야마는, 그대로 굳어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버렸다. 미야지는 멍청한 표정으로 선 하야마를 알아본 건지 작게 웃었다.

 

"뭐냐 점심시간에 그녀석이네"

"아, 그,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교는 안하고 왜 여기서 목청연습이냐?"

"아, 저는 그, 농구부에요! 이제 연습하러 갈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제 드리블보다도 빠른 속도로 대답을 쏟아낸 하야마는 허리를 폴더 폰처럼 굽혀 인사하곤 그 자리를 도망쳐왔다. 내가 왜 이러지? 어색한 자신의 행동, 두근거리는 심장, 그리고 언제 우울했냐는 듯 들뜬 기분도 아무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게 반했다는 건가.

체육관 앞에 멈춰 서서야 하야마는 제 감정을 눈치 챘다. 선생님에게 반하다니, 여고생 같은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냐, 착각이겠지. 제 혼자 내린 결론을 부정한 그는 숨을 고르고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


- 첫 장편이네요, 과연 전 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 If 소설만 연속으로 쓰다니, 제가 무슨 마수에 걸린 걸까요... 물론 쓰는 전 즐겁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