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마치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던 제드는 언제 자신이 자고 있었냐는 듯 눈을 번쩍 뜨더니, 안간힘을 써야 겨우 손이 닿을 듯 먼 거리에 있는 아벨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
“어디 가 아벨?”
졸음이 가시지 않은 제드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벨은 위태롭게 자신을 잡고 있는 제드를 보고는 놀라서 앞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어디 가? 나 두고 어디 가?”
“아, 그, 레온이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별로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아벨은 변명하는 사람처럼 말을 더듬고 말았다. 제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아벨을 잡아끌 기세로 옷을 잡아당기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갈 거야? 나 이렇게 일어나 있는데, 두고 갈 거야?”
“금방 갔다 올게, 응?”
“나 배고파 아벨, 그럼 밥 해주고 가면 안 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또 그 수법인가. 아벨은 다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그 제안에 응했다. 아벨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제드는 환하게 웃더니 얌전히 옷깃을 놓고 제 잠자리로 돌아갔다.
아벨은 알고 있었다. 제드의 ‘배고파’ 라는 말의 대부분은, 자신이 나가려는 것을 막으려는 변명이라는 것을. 요리를 하는 동안은 나갈 수 없으니까, 제드는 아벨이 집에 있기를 원한다면 언제나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안 그래도 식성도 좋으니, 그 말이 언제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아벨로선, 언제나 제드에게 속아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뿌리치고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벨은 제드를 차마 두고 갈 수 없었다.
자신이 없으면 덜덜 떨며, 울고, 자해까지 하는 제드를 두고 어떻게 밖으로 나간단 말인가. 아벨은 자신이 제드를 사랑하는 만큼 이런 불편은 모두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사랑이 아냐’ 언젠가 레온이 충고해 주었었지만 아벨에겐 남의 말 같은 것은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는 제드가 무사하길 바랐고, 자신은 제드를 사랑했다.
그걸로, 족했다.
“이번엔 몇 번째야? 제드”
인과를 막 넘어서 온 제드를 번쩍 들어 올린 아벨은 다정하게 웃으며, 떨고 있는 연인에게 물었다. 입가가 전부 피범벅이 될 정도로 입술을 물어뜯은 제드의 피부는 눈처럼 창백했다.
“알고 있잖아, 미래를 바꿔도 결말은 같다는 것을”
아 그래. 알고 있어. 제드는 그렇게 대답하려다가 제 다리에 다가온 날카로운 쇠의 감촉에 이를 꽉 물었다. 또 잘린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였는데도 제드는 밀려올 고통을 떠올리니 그저 눈물만 쏟아졌다.
제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시작은 언젠가의 말다툼 후, 제드가 집을 나갔다 돌아온 날이었다. 아벨은 도망갔던 제드를 향해 분노와 서러움을 쏟아냈고, 제드는 최대한 정성어린 사과를 했다. 거기서 끝났다면 정말로 좋았을 텐데, 아벨은 자신의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했다.
‘다리가 없다면 도망가진 못하겠지’
그렇게 말하고, 아벨은 제드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놀란 제드는 아픔과 공포 속에서 인과의 핵을 수정했고, 다시 돌아온 세계에서 제드는 또 다른 아픔과 마주해야 했다.
‘팔을 자르면 반항하지 못하겠지’ ‘손가락을 자르면’ ‘발목을 베면’ ‘손목을 꺾으면’ 아벨의 린치는 끝나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