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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래데페] 불빛 下

Еsoruen 2014. 4. 13. 06:08

 

 

 

 

불빛

 

written by Esoruen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불평을 하면서도 얌전히 블래스터를 따라가던 데스페라도는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대로 라면 곧 노을이 질 것이었다. 노을 뒤에 기다리는 것은 애수도 낭만도 아닌, 어둡고 위험한 밤 뿐. 거처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데스페라도로선 이 흘러가는 시간이 달가울 리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이럴 거였다면 만날 장소를 지금 가는 곳으로 정해두고 만났으면 됐을 것을”

“그게 불가능 하니까 데리러 간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블래스터는 웃었다.

‘같이 가 주었으면 해’ 블래스터는 길고 긴 인사 끝, 그렇게 말했었다. 일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같이 가달라고 이 남자는 요구하는 것인지 데스페라도는 의심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블래스터의 눈에 악의는 없었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 아니라면,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나을 거란 생각에, 데스페라도는 결국 블래스터의 부탁을 들어 줬었다.

 

“아, 다 왔다”

 

블래스터는 멈춰 서더니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데스페라도의 팔을 잡아 제 옆에 세웠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은, 부대의 진지(陣地)로 보였다.

‘설마’

속으로 중얼거린 데스페라도는 블래스터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확신했다. 저곳은 황도군의 진지라는 것을.

 

“결국 나보고 황도군에 들어오라는 거냐?”

“응? 풉! 아아, 그런 거 아니야. 오해 하지 마”

 

질색이라는 데스페라도의 표정에 블래스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대답했다.

 

“그냥 떠나기 전에 보여주고 싶었어”

“어?”

“우리 철수해. 네 덕분에 카르텔 소탕이 빨라져서, 카르텔 사령부로 이동하게 되었거든.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온 거야”

“쓸데없는 짓을”

 

주머니 속에 처박혀있는 담배를 꺼내 물며 그는 잘 켜지지 않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처음부터 자신과 블래스터는 계약관계였다. 아니, 정확하겐 자신과 황도군과의 관계였지, 블래스터는 황도군의 전달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특별할 것은 없는 관계라고, 그저 그와 자신을 ‘아는 사이’ 정도로 정의 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 데스페라도에겐 정말로 블래스터의 행동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끝까지 매정하네, 너는”

“애초에 인정이라곤 없는 사람이거든”

“하하하! 그랬지!”

 

끝까지 성격 좋게 데스페라도의 말을 웃어넘기는 듯 보이던 블래스터는 갑자기 웃음기를 싹 거두고 데스페라도의 눈을 응시했다.

 

“있잖아”

 

마주보고 있는 눈에는, 평소와 같은 장난기가 없었다.

 

“나 정말로 너 좋아 했어”

“…뭐라고?”

“좋아한 건 진짜였다고. 황도군에 넣으려고 한 말 아니야”

“아니, 너 나 좋아했냐?!”

 

블래스터의 말에 데스페라도는 정말로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블래스터도 그런 데스페라도의 반응에 놀라 두 사람은 서로를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티를 많이 냈는데 모를 수도 있어? 눈치도 빠르잖아 너!”

“그냥 네 성격이 그런 줄로만 알았지!”

“내가 너 마음에 든다고 했을 때는?!”

“당연히 따까리로 좋겠단 의미인줄 알았지!”

 

맙소사. 한탄하듯 한숨을 내쉰 블래스터는 머리를 헝클였다. 이 남자는 이런 식으로 티를 줘도 모를 남자였구나. 그걸 이제야 알아버렸지만, 이미 모든 것은 늦어버렸다. 시간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고, 자신은 이미 직구로 시원하게 고백해 버렸다.

차라리 진작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걸. 블래스터는 괜히 이 상황이 우스워졌다.

 

“뭐, 이제 와서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이야기겠지”

 

블래스터의 말은 미련도, 단념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한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정말 이걸로 된 것이었다. 물론 데스페라도는 그런 그의 마음 같은 것은 읽을 수 없었지만.

 

“혹시 황도에 오게 되면 연락 해”

“안됐군.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

“그럼 내가 무법지대에 올 일이 생기면 찾아와도 돼?”

 

아니. 그렇게 대답하려던 데스페라도의 입이 망설였다. 평소라면 반사적으로 라도 부정의 말을 내뱉었을 텐데. 지금은 어쩐지 제 입술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그건 방금 전의 황당한 고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반쯤 타들어 간 담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신기루처럼 아득히 보이는 저 황도군의 막사와 불타는 것 같은 노을 때문일까.

데스페라도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블래스터는 쓴웃음을 짓고 야무지게 다물린 그 입술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그리고 빠르고 능숙하게, 그의 입에 키스했다.

 

“다음에 보자, 죽지 말고 살아있어야 해”

 

갑작스러운 행동에 얼이 빠진 데스페라도의 표정을 즐기듯, 절대 등을 돌리지 않고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인 블래스터는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버리고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데스페라도에게 던졌다.

 

“다 쓴 건 버려”

 

블래스터가 던져 준 것은 라이터였다. 데스페라도는 얼떨결에 받아버린 라이터와 블래스터를 바라보다가, 화를 내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밋밋한 반응에 실망했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인 블래스터는 그제야 완전히 등을 돌리고, 황도군의 진지로 달려갔다.

 

“뭐야, 이게”

 

라이터를 이리 저리 살펴보던 데스페라도는 선물을 준 당사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블래스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노을로 물든 하늘이 거의 검푸른 빛으로 변하고 나서야 그는 다시 잠들 곳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 꺼내 문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이별선물인 라이터를 켜 본 데스페라도는 힘차게 일렁이는 라이터 불을 보며 블래스터의 등을 떠올렸다.

짧은 인연이었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그는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타오르는 담배 끝의 불빛도, 블래스터도, 어두워진 무법지대도 마치 신기루 같이 흔들렸다.

 

+

 

오랜만에 블래데페쓰니 꿀잼이다.

요즘 유입 검색에서 블래데페의 리버스 커플링으로 검색해서 오시는 분이 많던데

굳이 리버스 글을 클릭해 보고가시는 상냥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왕 보신거 영업이나 당하고 가셨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