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야/엽궁] Bitter candy 02
※ 이 소설은 If 설정 기반입니다. 거부감이 있으신분은 주의해주세요.
Bitter candy
02
written by Esoruen
무릎의 밴드를 떼어내자 새까맣게 변한 상처가 드러났다. 벌써 딱지가 앉다니, 인간의 회복력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은 하야마였다. 수업 중 문득 거슬려서 긁었을 뿐인데, 밴드는 너무나도 쉽게 귀퉁이가 떼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라고 생각하고 벗긴 것이었는데 나아있을 줄이야.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닐 테지만 상처의 깊이에 비하면 분명 빠른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상처를 누르면 은근한 고통이 느껴졌다. 분명 딱지 아래에는 아직 아물지 못한 피부가 새빨간 피를 머금고 있을 테지.
쉬는 시간에 밴드를 또 받으러 가야지.
그 생각 하나 만으로도 하야마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어제 처음 알게 된 학교 양호선생님의 존재. 그것은 하야마에게 일종의 쇼크였다. 같은 남자에게 두근거림을 느낀 적도 없었거니와 상대가 선생이라니! 미부치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었지만 자신은 전혀 상관없었다. 나이차도 성별도 그저 이름뿐인 장벽이라 생각했으니까.
딩동.
“좋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반장!”
“차렷, 경례!”
선생님은 종료종이 끝나기 무섭게 교과서를 덮더니 반장에게 인사를 시켰다. 어지간히도 수업이 싫은 선생님이구나. 선생 주제에 수업을 싫어하는 것이 재밌어 하야마는 소리 없이 웃었다. 반장의 아래 일사불란한 경례가 끝나고,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학생들이 말문을 열고 자리를 뜨자 하야마도 슬그머니 일어났다. 미부치는 최근 연습량이 는 것이 몸에 부담이 가는지 그대로 엎드려서 잠깐의 단잠을 취하고 있었다. 어차피 밴드만 받아온다는 명목의 선생님 보러가기니까 데려갈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결론지은 하야마는 잠든 미부치의 등을 토닥여주곤 교실을 빠져나왔다.
소란스런 복도, 자신이 넘어졌던 계단을 지나 양호실 앞에 도착한 하야마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어제와는 다른 긴장감. 문 너머에 있을 미야지에 대한 상상에 저절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어제처럼 또 자고 있을까. 부스스한 금발머리와 의사 가운 밑으로 뻗어 나온 희고 얇은 손목, 전형적인 미남상인 얼굴까지. 방금 수업에서 본 선생님 얼굴보다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미야지의 모습.
똑똑. 설렘을 안고 노크를 했지만 이번에도 처음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역시 자는구나. 똑똑. 하지만 이번에는 두 번째 노크에도 대답이 없었다.
“실례합니다!”
들어오라는 말도 없었지만 문을 열고 고개를 비집어 넣은 하야마가 본 것은 텅 빈 양호실이었다. 예상외의 전개에 당황한 하야마는 조용히 양호실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오늘 결근 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면 대타가 오거나 문이 잠겨있어야 정상이니까.
“미야지 선생님?”
혹시나 싶어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아무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 작게 투덜거린 하야마는 새하얀 커튼이 쳐져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직 아무도 눕지 않은 것인지, 침대는 싸늘하고 깨끗했다. 혹시 잠깐 나간 거라면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릴 생각에 그는 신발을 벗고 침대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양호실에 약품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을 가리기 위해 커튼까지 친 하야마는 잠시 침대에 등을 깔고 누웠다. 연습량이 는 것은 미부치만이 아니었다. 자신도 며칠 후 시합 때문에 주장이 부쩍 연습량을 늘려줬었기에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입이 째져라 하품을 한 하야마의 시야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잠들면 안 되는데. 그것이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어이”
어깨에 느껴지는 악력에 눈을 뜨자,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얼굴이 있었다.
“으아!?”
깜짝 놀란 하야마가 상체를 일으키고 미야지를 빤히 보았다. 역시 어디 갔다 오신건가. 제 추측에 확신을 내린 하야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런 하야마에게 날아온 것은 미야지의 손이었다. 아프지 않게 살짝 하야마의 머리를 검지로 툭 밀어낸 그는 자판기에서 막 뽑아 김이 올라오는 블랙커피를 마시며 핀잔을 늘어놓았다.
“양호실 이용 수칙 모르냐? 차트 작성은? 그나저나 넌 어제 다리 다쳐서 온 녀석이 왜 여기 누워서 자냐? 수업도 빼먹고?”
“네?”
수업? 불길한 예감에 양호실의 시계를 보자 지금은 이미 수업이 시작하고 10분이나 지나있었다. 망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절규를 하야마는 눈물을 머금고 삼켰다. 쉬는 시간동안 잠시 다녀가려고 한 계획이 어긋난 것도 문제였지만 수업을 빼먹다니. 잠들어 버린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그 때, 낯익은 종이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자, 적어. 어디 아파서 자러왔냐. 땡땡이냐?”
“아, 그, 그 머리가 좀 아파서요…”
“아아 그래?”
당황 하는 하야마를 보고 피식 웃은 미야지가 이번엔 펜을 건네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마치 자신의 거짓말을 들킨 기분에 얼굴이 빨개진 하야마는 차트를 작성해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두통이라고 적힌 병명을 본 미야지는 안절부절 못하는 제 눈앞의 학생을 보았다.
“하야마군?”
“아, 네!”
갑자기 이름을 불리자 얼굴을 더 빨개졌다. 이름을 불러주다니, 조금이라도 가까워진 기분에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저 차트에 적힌 제 이름을 읽은 것뿐이라는 것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입술에서, 저 목소리로, 하야마라고 불러주다니. 이왕이면 코타로가 좋은데, 작은 욕심까지 들어버렸다.
“농땡이를 봐 주는 건 이번뿐이다. 가서 누워 자. 적당히 쉬다 올라가라”
“아, 네에…”
역시 거짓말은 들킨 모양이었다. 머쓱해져 도로 자리로 돌아가 누운 그는 이번엔 커튼을 치지 않고 등만 보이는 미야지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커피를 홀짝이며 무언가를 열심히 정리하는걸 보고만 있어도 하야마는 행복했다. 그래도 사람이란 만족할 줄을 모르는 생물이 아닌가. 하야마는 새하얀 등을 향해 말을 걸었다.
“원래 농땡이 같은 거 잘 봐 주나요?”
“아니”
“에? 아니에요?”
“너 농구부라며? 운동부 애들은 가끔. 피곤한 거 아니까”
두근. 심장이 부서질 기세의 두근거림에 하야마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어제 복도에서 흘리듯 이야기 한 것이었는데 그것까지 기억하다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것은 아닐까, 단순히 인상에 깊어 기억한 것이라도 좋았다. 하루 만에 미야지가 자신에 대해 이것저것 기억해 준 것이 사랑받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뭘, 잠이나 자. 안 잘 거면 도로 가”
“자, 잘게요!”
여학생들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까칠한 반응에 살짝 시무룩해진 하야마는 똑바로 누워 눈을 감았다. 아까까지는 자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도 잠들어버린 주제에 지금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미야지가 있다는 것이 신경 쓰여서, 그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음미하고 있어서였다. 곁눈질로 바라보는 미야지는 여전히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일에 집중하는 남자는 섹시하다던데, 문득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정답이었다. 서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미야지는 알 수 없는 매력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슬그머니 다시 옆으로 돌아누운 하야마는 닿을 수 없는 양호선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이 아프다고 느낄 때 쯤, 다시 시야가 어두워졌고 이번에는 다른 생각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결에 들린 종소리에 눈을 뜨자 양호실 밖이 시끄러웠다. 아마 다시 쉬는 시간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다음 수업까지 빠졌다가는 미부치에게 오늘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기에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인사라도 하고 갈 생각에 미야지에게로 다가갔다.
“선생님, 저…”
하야마의 말을 거기까지였다. 미야지가 턱을 괴고 자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 졸고 있다니. 일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라면 인사를 하고 가면 깨우는 꼴이 될 것 같아 미안했다. 조용히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려고 했지만, 하야마는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자고 있는 미야지의 얼굴이, 햇살에 비쳐 눈부셨다.
마른침을 삼키고 하야마는 고개를 숙여 선생의 잠든 얼굴을 더 자세히 보았다. 여자처럼 긴 속눈썹이 조형물처럼 가만히 있다가 고개가 꾸벅일 때 마다 흔들리는 것이 신기했다. 잠들어 있으니 정말 조형물 같았다.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긴 있구나. 한탄이 나왔다.
물론 단순히 미남이라고 하면 제 주변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카리스마 있는 농구부 주장도 인형과 비교될 정도로 곱상한 외모였고 동급생 미부치도 여학생들에겐 인기가 엄청날 정도로 잘생긴 외모였다. 특히 미부치는 얼굴만 보면 가끔 여자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무심결에 하야마는 제 손으로 미야지의 뺨을 쓸었다. 약간은 거친 피부, 따스한 감촉에 금방 손을 떼었다. 자신이 무슨 배짱으로 손을 뻗은 것인지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제 얼굴은 선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약품냄새만 나는 양호실이었는데, 미야지에게선 옅은 커피 향과 담배냄새가 났다. 양호 선생이 담배라니. 뭔가 웃겼지만 차마 소리 내어 웃을 수가 없었다. 둘 뿐인 양호실, 가까이 있는 얼굴. 야릇한 기분이 든 하야마는 그대로 가만히 미야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똑똑.
“!”
노크소리에 놀란 하야마는 재빨리 고개를 빼내었다. 이러다가 깨면 무슨 민망한 상황이란 말인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린 하야마는 재빨리 양호실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여학생이 기침을 하며 서있었다. 정말로 아파서 온 학생 같았다. 제가 저지른 일을 감추려는 듯 하야마는 여학생에게 웃어보였다.
“안에 선생님 있어, 들어가”
“아, 감사합니다…”
여학생을 뒤로 한 채 하야마는 그대로 교실로 뛰어갔다. 머릿속은 아직도, 미야지의 자는 얼굴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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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데이트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게 다 게임이 나빴습니다
- 농담이고 제가 게으른 탓이죠, 반성하고있습니다.. ;(
- 개강 후에도 이렇게 4~5일 정도 텀으로 올라오지 않을까 싶지만, 원고까지 곂치면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