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빙/무라히무] Urban Sweet! 01
Urban Sweet!
01
written by Esoruen
시끄러운 드럼소리, 시원하게 무대를 가로지르는 일렉트릭 기타의 고음, 안정적인 베이스 저음, 그리고 매력적인 남자의 노래. 무대를 뒤흔드는 모든 음색들은, 무대 밑의 관객들이 열광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관객의 대부분은 젊은이, 성비는 거의 반반. 하지만 여성 팬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순전 무대 위를 휘젓는 그 남자 때문이었다.
“one more time!"
앵콜곡의 시작 전, 유쾌하게 마이크를 공중으로 치켜들며 외치는 흑발의 남자는 요란한 옷차림과 액세서리로 치장되어 있었다. 가수들, 특히 로커들 치고는 얌전한 편에 속하는 복장이었지만 이런 것이 낮선 무라사키바라는 저 모든 것들이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낯설고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웃기고도 믿기지 않는 것은, 자신이 곧 저 무대 위 가수의 매니저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무라사키바라 아츠시는, 정확히 어제 까지는 백수였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대학을 졸업하고 구인구직을 하던 무라사키바라는,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 당장 급하게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시급이 센 곳은 일이 힘들었고, 일이 쉬운 곳은 시급이 박했다. 시급도 좋고 일이 쉬운 곳은 존재하지 않았고, 누가 봐도 좋은 직장은 이미 사람이 다 차서 자리가 없었다. 자신의 이상적인 직장을 찾지 못해 자포자기 해버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해 온 것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무라사킷치, 지금 일자리 구한다고 했지여?’
안부 인사도 없이 돌직구를 던진 동창은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모델 일을 하고 있었다. 분명 중학교 때도 유명했지만, 지금은 더 유명해져서 해외 패션쇼를 제 집 드나들 듯 왔다 갔다 하는, 누가 보아도 성공한 모델의 인생을 살고 있었던 부러운 남자였다.
“그런데?”
“제가 일자리 하나 소개해 줄까 해서여!”
“헤에~ 무슨 일이기에 그래 키세칭”
기대도 안하고 물은 무라사키바라였지만, 동창이 내뱉은 말은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던 그에게 쇼크를 몰고 왔다.
“매니저 일임다. 모델은 아니고, 가수요”
“하아?”
“아, 매니저라고 해도, 너무 어려운 일은 아님다. 차근차근 배우는 셈 치고 해 보는 게 어떻슴까?”
무라사키바라는 문득 중학교 때 이 동창과 함께 다닌 매니저를 떠올렸다. 똑 부러지는 인상의 그 연상 여자 매니저는, 키세가 제법 말을 잘 듣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인상을 쓰고 히스테릭하게 굴었었다. 그때 생각은 단순히 매니저가 성격이 나쁜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일이 힘들었기에 그랬던 거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라사키바라는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 일은 딱 잘라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 참고로 시급은”
수화기 너머로 엄청난 액수가 들려오자, 마음이 바뀌었다.
“…이 정도 임다. 물론 잘 하면 더 올라가겠지만여”
“키세칭, 나 그 일 할래”
“앗 정말임까~? 그럼 나중에 문자 드리겠슴다!”
그 말만 남기고 전화를 툭 끊어버린 동창은, 5분 뒤 문자메시지 하나만을 덜렁 보냈다. ‘XX월 XX일 오후 5시까지 아래 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아까 전 말투와 달리 깔끔한 표준어로 적힌 문자의 끝에는, 도쿄에 위치한 공연장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정말 이걸로 되는 건가. 의심스러운 무라사키바라였지만 자신은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저 제가 아는 동창 ‘키세 료타’는 자신에게 사기를 칠 정도로 똑똑하지도 않았고, 속는 셈 치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기에 한번 가보자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약속된 장소로 간 무라사키바라를 반기는 것은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키세였다.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훨씬 어른스러워진 외모였지만, 특유의 잘생긴 외모는 여전했던 그는, 대형견 같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이야, 오랜만임다! 더 커진 것 같네요 무라사킷치!”
“키세칭은 키는 정말 그대로고~ 그래서, 나 뭐하면 되는 거?”
“일단 공연부터 보자고요! 아직은 아마추어지만 이 사람, 노래 엄청 잘함다!”
강제로 무라사키바라를 VIP석으로 끌고 간 키세는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이런 저런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늘 공연하는 가수의 나이라던가 노래 스타일, 인디밴드로서의 명성이나 유명세 등, 연예가에 빠삭한 사람이라면 솔깃할 정보들이 분명했지만, 무라사키바라에게는 지나가는 개의 짖는 소리만큼이나 관심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난 후, 무라사키바라의 시선은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 공연하는 가수인 단정한 흑발 남자의 첫인상은, 분명 무대를 잘못 올라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로커’라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아마 옷만 평범하게 입었다면, 무라사키바라는 그를 잘생긴 스텝정도로 생각 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음악이 시작되고, 조명이 바뀌자 남자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모두 소리 질러!!”
달콤한 미성의 샤우팅, 날카로운 눈빛,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노래하는 남자는 곱상한 외모와 달리 그가 입은 호피무늬 바지처럼 야성적인 매력이 넘쳐흘렀다. 정신을 빼앗긴 사람같이 멍한 표정으로 공연을 보고 있던 무라사키바라는, 옆에 있는 키세에게 슬쩍 물었다.
“저 사람이 나랑 일할 사람인거?”
드디어 관심을 보이는 무라사키바라가 기특한지, 공연에 집중하고 있던 키세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무로 타츠야, 예명 TATSUYA입니다"
곧 만나게 될 거니까 기대 하세여. 그렇게 덧붙인 키세는 도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2시간가량의 공연 끝, 대기실 앞에 선 무라사키바라는 나름 갖추어 입은 옷을 정돈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집 밖을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대충 만나서 이야기 하고 와야지’ 라고 생각한 그였는데, 공연을 보고 나자 정말 연예인을 만나는 기분이 들어 바짝 기합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들어가겠슴다~”
노크 후 유쾌한 목소리로 문을 연 키세는 열정적 공연에 지쳐 의자에 뻗어있는 가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히무로씨! 안녕하심까!”
“아아, 키세씨. 어서 오세요”
“오늘 공연 진짜 끝내줬슴다!”
의례적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은 이미 안면이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모르는 사이 간에 덥석 매니저를 물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무라사키바라는 그 사실이 신기했다. 자신과 장난치며 커온 중학교 동창이, 저렇게 멋진 공연을 하는 사람과 친근하게 대화하고 있다니.
“아, 인사하세여, 무라사키바라 아츠시임다! 히무로씨의 매니저가 되어 줄 검다!”
무라사키바라는 입은 열지 않고 고개만 끄덕여 히무로에게 첫 인사를 건넸다. 히무로는 커다란 무라사키바라의 덩치를 보고 잠깐 놀란 것 같았지만, 곧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히무로 타츠야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시야에 나타난 손은 희고 거칠었다.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큰 편인 손이었지만, 자신의 손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손을 마주잡아 흔든 무라사키바라는 억지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