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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래데페] ponderosa 02

Еsoruen 2014. 7. 4. 20:29

 

 

 

 

ponderosa

02 

written by Esoruen

 

 

 

바다를 가르고 전진하는 해상열차의 모습은, 열차 안에서 감상해도 충분히 입이 벌어질 정도로 굉장했다. 천계 최고의 기술들의 집합체, 그것이 이 해상열차였지만 이 열차의 종착역은 기술이 가잘 발전하지 못한 무법지대임을 떠올리면 꽤나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블래스터는 자신과 마주보고 앉아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데스페라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담배를 입에 물고 창밖만 바라보는 데스페라도는 아무리 나이를 많게 보아도 30대 초반 이상을 생각 할 수 없는 외모였다. 뭐, 그다지 나이 많지 않은 사람이 노인 말투를 쓰는 것이 이상하면 이상하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최대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한 블래스터였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을 젊은이라 부른 것은 이상하게 느껴져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저”

 

결국 침묵을 깬 것은 블래스터였다.

 

“베릭트씨의 친구라고 했지요?”

“그래, 베릭트랑은 젊을 때부터 알던 사이지. 그때에 비하면 참 성격 많이 죽었어, 그녀석도”

 

설마 그 ‘그 녀석’이 베릭트는 아니겠지. 그렇게 의심한 블래스터였지만 저 말의 정황을 보았을 때 제 의심은 틀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워낙 자유분방한 무법지대라지만, 족히 20살은 더 어려보이는 데스페라도가 베릭트를 ‘녀석’이라고 부르다니. 역시 무법지대는 황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하려는 순간

 

“이봐”

“네?”

“자네… 내가 몇 살로 보이나?”

 

갑작스러운 질문은 블래스터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대는 이렇게 쉽게 간파하고 거기에 대해 질문해 오다니.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있던 블래스터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는 거겠지요?”

“거짓말로 대답해도 상관은 없지만”

“저랑 또래로 보입니다만. 20대 중후반?”

 

예상했던 대답이라는 듯, 데스페라도는 웃었다.

 

“그래?”

“원래는, 몇 살입니까?”

 

정말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못한 걸 물으니, 그는 속이 시원해졌긴 했지만 돌아올 대답이 두려워졌다. ‘설마 30대 이상은 아니겠지’ 그렇게 상상한 자신이 무색하게, 데스페라도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를 말했다.

 

“64”

“네?”

“64살이라고”

 

이건 또 무슨 질 나쁜 농담인가. 블래스터는 이 진지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말하는 데스페라도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일단은 도움을 받을 입장인 자신이 화를 내는 것은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억지로라도 웃었다.

 

“농담도 잘 하시네요, 하하”

“내가 뭐 하러 농담을 해?”

“…아니, 상식적으로 그 얼굴로 60대가 말이 됩니까? 한 40대 까지만 되어도 믿어주는 척 하고 싶은데 이건 아니죠!”

 

블래스터가 결국 진지하게 한마디를 하자, 데스페라도는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품속에서 낡은 사진 하나를 꺼냈다. ‘이거 봐’ 그 한마디만 하고 다시 시선을 창가로 돌린 데스페라도는 창밖으로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받아든 사진은 원래 색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바래있었다. 사진에 찍힌 날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사진 속에는 엔조시포로 추정되는 남자와 베릭트를 쏙 닮은 남자, 그리고 눈앞의 이 사내가 서있었다.

 

“아”

 

사진은 조작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데스페라도의 말은 사실이란 말인가. 혼란스러워 하는 블래스터의 손에서 사진을 도로 빼앗아 간 데스페라도는 멍하니 있는 그에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난 이런 체질이라서 말이야. 언젠가부터 노화가 멈추었지. 아니, 시작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까?”

“혹시, 그, 인간이 아니라던가 하는 건 아니겠지요?”

“인간이야, 명백하게. 뭐 믿느냐 안 믿느냐는 자네 자유지만”

 

낮게 깔린 목소리로 웃은 데스페라도는 창밖으로 보이는 메마른 땅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 무법지대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열차 안에 울려 퍼졌다.

 

“내릴 준비 해라고. 블래스터군”

 

허리춤의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뽑아 총알을 장전한 데스페라도는 먼저 객실을 떠났다.

 

 

 

무법지대의 날씨는 군사들의 생각보다 훨씬 나빴다. 모래 섞인 바람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거셌고, 공기는 불타오르듯 뜨겁고 건조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사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한 블래스터였지만, 데스페라도는 고향에 온 편안함에 잠시 여유롭게 주변을 산책하기 까지 했다.

 

“데스페라도! 그, 길안내를…”

“어디로 간다고 했었지? 헤이즈?”

“네!”

“흐음”

 

블래스터의 말을 듣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유롭게 우두커니 서있던 데스페라도는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으려는 듯 페도라를 푹 눌러썼다. 시야조차 잘 확보되지 않는 이상, 이곳이 고향인 데스페라도라고 해도 길 찾기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한 블래스터는 지도와 나침반을 그에게 건네려고 했지만 그 노력은 소용없는 것이었다.

 

“저쪽”

“네?”

“저쪽으로 하루 종일 걸어가면 돼”

 

모래바람 너머를 가리키며 데스페라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직 감으로만 길을 제시하다니. 저걸 믿어도 좋을까 하는 반응들이 군 사이에서 나왔지만 블래스터는 지도와 나침반을 데스페라도가 가리킨 방향과 비교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장난 아닌데?”

 

데스페라도가 가리킨 방향은, 지도상으로 정확히 헤이즈로 가는 방향과 일치했다.

 

“이봐, 블래스터. 얼른 명령을 내리라고. 나는 안내자일 뿐, 군대를 움직이는 건 자네지 않나?”

“아, 예”

 

열차 안에서 가지만 해도 반신반의 했던 블래스터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그를 믿기로 한 건지 군말 없이 이동 명령을 내리고 앞서가는 데스페라도를 따라나섰다.

열기와 모래바람으로 흔들리는 시야, 우두커니 걸어가는 데스페라도의 뒷모습은 굳건하고 당당했다.

아. 블래스터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 뒷모습이, 마치 베릭트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헤이즈에는 도착도 하지 못했는데, 해는 지고 말았다. 이동 세 시간 째에 붉게 물들던 하늘은 금방 밤의 색으로 변하더니, 이윽고 눈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져 결국 황도군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하의 말에 블래스터는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데스페라도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째서? 젊은 것들이 끈기 없기는, 아직 조금 더 갈 수 있어”

“아직 무법지대에 적응도 못했으니, 저희는 이 이상 가는 게 힘듭니다”

“쯧, 이래서 황녀의 개들이란”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블래스터랑 병사를 본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근처 바위에 걸터앉았다. 자신들이 무시당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황녀를 들먹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지 병사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졌지만, 블래스터는 병사를 말리며 ‘가서 야영 준비를 시켜라’고 명령해 자리를 뜨게 했다.

 

“데스페라도는 따로 막사를 드릴 테니 거기서 쉬세… 어라?”

 

부하들에게 명령을 마치고 데스페라도에게 고개를 돌린 블래스터는 텅 빈 바위에 눈을 비볐다.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 데스페라도는, 어디에 간 것인지 흔적도 남지 않고 자리를 비운 후였다.

 

“멀리 가지는 않아야 할 텐데…”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무도 없는 바위만을 바라보던 블래스터는 병사들을 도와주기 위해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