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마츠] 두근거림
두근거림
written by Esoruen
‘레비군은 왜 그 녀석이랑 같이 다니는 거야?’
이것은 레비가 무인도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온 이후 가장 많이들은 말 중 하나였다. 물론 저기서 말하는 ‘그 녀석’이란, 마츠오 미카즈키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식전 조리학부에서 마츠오 미카즈키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의 입에선 긍정적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음침하다는 말은 애교수준으로, 허세만 가득 차있는 녀석이라는 둥, 꼬맹이라는 둥, 쓰고 다니는 후드를 보고 ‘쓰레기 봉지 같다’며 웃는 학생도 많았다. 그리고 사실, 레비도 얼마 전 까진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미카즈키와 친한 식전의 학생은 사토루와 레비정도였다. 사토루와 같이 다니는 다른 학생들도 미카즈키에게 말을 붙이거나 아는 척은 했지만 딱 그 정도로, 그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겨우 두 명 정도라는 뜻이었다. 비사교적인 미카즈키의 성격을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것은 없었지만, 레비는 이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미카즈키와 친해진 것은 무인도에서 우연히 이야기가 통했던 것이 계기였다. 그 전까지는 그저 존재감이 없고 음침하다고 생각했던 그를 레비가 다시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생각보다 좋은 점도 많고, 또 생각보다는 귀여운 미카즈키를 알아갈수록 레비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감정에는 ‘이 녀석이랑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는데’ 라는 의아함도 있었고, ‘사토루가 왜 미카즈키랑 친하게 지냈는지 알거 같다’는 깨달음도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욕심이었다.
앞서 말한 듯, 레비는 최근 미카즈키와 친하게 지내는 동안 수많은 물음을 받았다. 분명 그 물음에는 ‘왜 하필’ 미카즈키와 친하게 지내는지에 대한 뜻도 있을 테고, ‘어쩌다가’ 라는 의문도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비는 저 두 가지에 대한 답을 줄 의무도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늘 이렇게 대답했다.
‘어쩌다가’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 그게 대답의 전부였다.
사실 레비의 입장에선, 미카즈키에 대해 물어오는 그 사람들이야 말로 조금은 짜증나는 존재였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일이겠지만, 레비는 제 인생에서 자신이 아닌 자신의 배경을 보고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을 봐왔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것에 상처입기도 했고, 실망도 했지만 나이를 먹고 나서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역으로 그걸 즐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제 자신감은 자신,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돈으로 조금은 더 굳건해 지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미카즈키는 달랐다. 처음엔 오히려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재수 없어 하던 그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후 ‘알고 보니 좋은 녀석이었어!’라며 웃어보이던 그 때를, 레비는 잊지 못했다. 사토루도, 다른 친구들도 자신을 배경을 보고 다가오지 않은 것은 같았지만, 미카즈키의 경우는 이상하게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마츠오 미카즈키라는 인간의 사교성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것 때문이겠지. 레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레비! 마츠오 못 봤어?”
쉬는 시간에 짬을 내서 프랑스의 집에 통화를 하려고 나와 있던 레비에게 그렇게 물어온 것은 모리사키였다. 이제는 이렇게 미카즈키의 행방을 자신에게 물어오기까지 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 눈에도 자신과 미카즈키가 제일 친해 보이긴 하는구나 싶어 레비는 뿌듯해졌다.
“아니, 못 봤는데”
“그래? 아, 진짜. 어디 간 거지? 아까 선생님이 찾던데”
“무슨 사고라도 친거야?”
“그건 몰라. 어쨌든 너도 모른다니까 갑갑하네. 사토루도 모른다고 하고… 괜찮으면 같이 찾아줄 수 있냐?”
난감하게 됐다는 표정으로 다가온 모리사키는 두 손을 모으고 레비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저렇게 까지 하면 거절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도 지금 미카즈키가 어디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레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고마워! 하여간 그 쓰레기 봉지 같은 거 쓰고 다니니 아마 좀만 찾으면 잘 보일거야”
쓰레기 봉지라니, 레비는 그 비유에 태클을 걸려다가 그만두었다. 미카즈키는 키가 작은 것에서 온 콤플렉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사교성이 없는 그 음침한 성격 때문인지, 제 덩치보다 큰 파카를 뒤집어쓰고 다녔는데 사람들을 그걸 ‘쓰레기 봉지’라고 부르곤 했다. 확실히, 그 검은 색깔은 쓰레기 봉지를 닮았을지 몰라도 레비의 눈엔 그렇지 않았다. 앙증맞게 묶은 매듭부분, 그 기세 좋게 삐죽 솟아나온 매듭을 볼 때 마다 레비는 그가 ‘토끼 같다’고 느꼈다. 매듭은 귀이며, 조금만 겁먹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는 것은 토끼의 성격과 같았다. 남들의 눈에는 쓰레기 봉지 소년일지 몰라도, 적어도, 레비에게는 미카즈키는 새까만 애완 토끼 같은 남자였다.
그 귀여움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공감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그것이 레비가 모리사키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데 아무도 미카즈키 연락처 없는 거야?”
“엉? 응. 없는데. 넌 있어?”
“물론”
“허, 그럼 전화해봐!!”
자신은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모리사키는 레비의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의 핸드폰을 향해 날아오는 모리사키의 손길을 가볍게 피한 레비는 ‘잠깐만’ 이라고 뜸을 들이고 단축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들리는 것은 신호음 뿐, 상대방은 야속하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 받네”
“아, 왜!!”
“하하, 진짜 바쁜가 보지 뭐. 찾으러 다녀보자. 그런데 진짜 너 번호 없어?”
“있을 리가 있냐. 애초에 그 녀석 너랑 사토루 외엔 이야기도 안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가볍게 대답한 레비였지만 그의 표정만큼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어, 저기”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걸으며 미카즈키를 찾던 두 사람 중, 손짓을 하며 소리친 것은 모리사키였다. 레비는 그의 손끝을 따라 가다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두 매듭을 보고 미소 지었다. 미카즈키는 연못 옆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미카즈키!”
레비가 힘껏 그 이름을 불렀지만, 무슨 일인지 미카즈키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상한걸. 속으로 중얼거린 그는 모리사키를 두고 앞질러 가 가볍게 웅크려 앉은 그 등을 두드렸다.
“미카즈키?”
“으아아아악?!”
얼마나 열중 하고 있었으면 레비가 다가온 것도 몰랐을까. 미카즈키는 갑자기 나타난 인기척에 놀라 일어서려다가 그만 무게중심을 읽고 말았다. 휘청거린 작은 몸체가, 완전히 연못으로 넘어지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풍덩.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생물의 냄새가 깃든 물이 레비의 얼굴로 튀었다.
“마츠오?!”
“미카즈키!!”
레비와 모리사키는 깜짝 놀라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분명 연못의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선다면 숨을 쉴 수 있는 깊이였으니까. 하지만 맥주병인 미카즈키가, 그런 차분함을 물속에서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빠진 경우라면 말이다.
“으아악! 사, 사람 살려!”
“미카즈키! 발, 발 닿으니까 다리를 뻗어!”
“레비! 살려줘!! 으아아!!”
역시나 듣지 않는군, 한숨을 쉰 레비는 재킷을 벗어 멀뚱멀뚱하게 서있는 모리사키에게 떠넘겨줬다. 연못가에 낙하한 미카즈키는 발버둥 치던 탓에 점점 육지와는 멀어져갔고, 이제는 손에 닿는 거리를 벗어나 연못 중앙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연못을 크게 만든 거란 말인가. 표적 없는 투정을 하며 레비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뭐, 뭐야 너 들어가게?”
“당연하지!”
구해달라고 외치는 사람을, 그것도 제 친구를, 아니, 그냥 친구도 아닌 제 절친한 친구를 두고 갈 정도로 레비는 신사적이지 못한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구하지 말라고 미카즈키가 말렸어도 들어갔을 것이다. 미카즈키의 머리가 완전히 물속으로 숨어들자, 셔츠까지 벗으려던 레비는 결국 옷이 젖는 것을 감수하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가슴까지 오는 물 안에서 무엇을 그리 버둥거리는지, 미카즈키는 이제 허우적거리는 것도 멈추고 축 늘어져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레비는 당황하여 미카즈키에게 달려가듯 걸어가 힘없는 팔을 잡아끌었다. 물속에서 걷는 것은 꽤 고역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런 것 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미카즈키! 정신 차려 미카즈키!”
공포에 기절한 것일까, 아니면 놀라서 물을 많이 먹어 그런 것일까. 미카즈키는 무겁고, 대답이 없었다. 이런 것으로 죽을 리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레비는 문득 무서워졌다.
만약 미카즈키가 죽으면, 자신은 어떻게 할까.
“아, 안 돼! 죽지 마 미카즈키!!”
“그런 걸로 안 죽으니 연못에서 나오기나 해!!”
“시끄러워!! 모리사키 넌 정말 둔감하다니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두 사람이 원래 친했던 것을 생각하면 레비의 말대로 정말 자신이 둔감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모리사키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차가운 땅바닥 위에 살며시 미카즈키를 내려다 놓은 레비는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친우의 얼굴을 매만지더니 불안한 표정으로 새하얗게 질린 뺨을 가볍게 쳤다.
“미카즈키? 미카즈키?”
깨어나지 않는 미카즈키를 본 레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더라. 20년도 살지 않은 인생에서 본 모든 ‘물에 빠졌을 때 대처법’이 떠오르는 중, 그는 한 가지 공통적인 대처법을 생각해 냈다.
인공호흡은 필수다.
그것이 떠오르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레비는 황급히 모리사키에게 외쳤다.
“다, 당장 선생님 불러와! 누구든!”
“에? 아, 그래! 잠시만 기다려!”
모리사키는 레비가 선생님을 불러오라는 뜻을 그저 ‘위급 상황에 대한 대처’로 알아들었지만, 사실 레비의 목적은 달랐다. 둘만 남는 것. 레비가 바란 것은 그것이었다. 달콤한 키스가 아닌 인공호흡을 하려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모리사키가 보는 것이 죽어도 싫었다. 어떤 의미든, 입술을 마주하는 행위 아닌가. 숨을 고르고, 기절한 미카즈키의 얼굴을 잡은 그는 마치 성스러운 의식 전 준비단계를 가지는 신자처럼 깊게 호흡하고 마음을 가다듬더니 미카즈키의 입과 제 입을 겹쳤다.
그런데,
“푸핫!”
정신이 든 미카즈키가 눈을 뜨고, 목에 막혀있던 물을 뱉는 바람에 두 사람의 첫 키스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비린내가 나는 기분 나쁜 키스가 되고 말았다.
“미, 미카즈키!! 정신이 든 거야!?”
“아, 으응. 어. 괜찮아…”
완전히 정신이 든 것일까, 미카즈키는 입안에 남은 연못물을 토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축축하게 젖은 탓에, 꼴은 상당히 우스웠지만 둘 중 아무도 웃는 사람은 없었다. 어색한 공기, 말을 머뭇거리는 두 청소년 사이에 봄바람이 살랑 불었다.
“그, 어, 춥지?”
“응, 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들어가서 뭐라도 먹을까? 따뜻한 스프라던가…”
“우동”
“어?”
“우동 먹자. 내가 해 줄 테니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미카즈키는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아아, 역시 우동인가. 레비는 환한 미소로 그 제안에 승낙했다.
“레비”
“응?”
나란히 붙어 돌아가는 길, 미카즈키는 젖은 제 파카에 물을 짜내며 말을 걸었다.
“…구해줘서 고마워”
방금 전 민망한 상황은 확실히 부끄러웠지만 분명 이것은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민망한 상황도, 자신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말한 미카즈키는 젖은 머리를 털었다.
미카즈키의 입장에서는 큰맘을 먹고 한 인사였지만, 레비에겐 아니었다. 당연한 사실을 수줍어하며 말하는 그가 너무나도 귀여워 보여 레비는 그만 여성을 대하듯 허리를 끌어안을 뻔 했지만, 이내 손을 슬그머니 거두며 머리를 긁적였다.
“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야”
“그래?”
“물론”
“그런 일을 당연하다고 말해줄 줄은 몰랐는데”
“어?”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란 말인가. 깜짝 놀란 레비가 쳐다봤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머리 전체가 빨개진 미카즈키는 도망치듯 레비를 앞질러 가버렸으니까.
소녀처럼 도망가는 뒷모습, 멀어져 가는 간격 속 얼이 빠진 표정으로 레비는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지금 분명, 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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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님 커미션으로 쓴 글인데 이제야 업뎃
여러분 저랑 헬즈키친 봐요
레비마츠라고 초코우동이라고 아주 기여운 커플이 있습니다 (끌려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