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에서 루프트 하펜으로 돌아오는 해상열차는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다른 병사들은 모두 취침시간인 틈을 이용해 자리를 빠져나온 커맨더는, 어둑어둑한 정거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차한 열차를 혼자서 바라보았다.
멈춰선 열차에 묻은 소금기 있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정거장에는 바다의 냄새가 가득 찼다. 열차의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병사들은 모두 커맨더가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 퍼뜩 경례를 건넸다. 하지만 피곤한 얼굴들을 본 커맨더는 인사는 됐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고, 그제야 병사들은 감추어둔 피곤함을 역력히 드러내며 힘없이 그들의 막사로 흩어졌다.
거의 마지막에야 열차에 내린 디스트로이어는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커맨더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왔구나”
“마중 나오라고 했으니까요”
무미건조한 대화였지만 디스트로이어의 표정은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뛰는 것 같이 빠른 걸음으로 커맨더의 앞으로 다가간 그가 한 번에 제 앞의 남자를 끌어안자, 싸구려 가로등 불빛에 흔들리던 두 그림자가 순식간에 하나로 엉겨 붙었다.
“건강해 보이니까 다행이네”
사실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커맨더 쪽이었는데도, 디스트로이어는 제 쪽에서 먼저 커맨더의 안부를 걱정해 주었다. 전장에 나가 싸운 사람이 기다리던 사람을 걱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워 보이기도 하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물론 익숙하다는 것이 꼭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찹니다, 어서 돌아가서 쉬어야…”
“성급하게 굴지 마. 이제 겨우 만났잖아”
자신을 걱정해주는 커맨더의 말을 끊고 가볍게 입을 맞춘 그는 망토 아래에 가려진 가는 몸을 가볍게 훑었다. 커맨더는 전보다 더 야위어 있었다. 분명 일을 하느라 제대로 챙겨먹지도, 자지도 않은 탓일 것이다. 커맨더가 제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은 하루이틀일이 아니었지만, 디스트로이어는 이걸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몸 관리 좀 하라니까”
“잠은 제대로 자고 있습니다”
“역시, 넌 내가 없으면 안 돼”
그렇지? 디스트로이어의 물음에 커맨더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물어오는 물음에, 커맨더는 이렇게 긍정의 대답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자신은 혼자서도 괜찮지만, 그걸 알면 디스트로이어는 별로 기뻐하지 않을 테니까.
아주 어렸을 때, 커맨더가 사령관이 되기 훨씬 전, 군에 막 입대했을 때부터 디스트로이어는 커맨더를 이렇게 챙겨주었다. 사실 그 때는 디스트로이어도 어렸으면서, 그는 커맨더가 자신보다 더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나 커맨더를 챙겨주었다. 남들 눈에는 그게 동료에나, 형제에 비슷한 것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애정을 받는 입장인 커맨더는 알고 있었다. 이건 그런 복잡한 이유가 아닌, 단순한 애정이었다.
상대방의 몸을 원하고 마음을 원하는. 단순한 ‘연애감정’
“어디 다친 곳은 없지요?”
“난 멀쩡해, 보면 알잖아”
사실 커맨더는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있는 디스트로이어 때문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누리끼리한 싸구려 전구의 빛이 비추는 실루엣, 귀에 눌러앉은 익숙한 목소리, 자신보다 조금 낮은 체온.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 정도만 있으면, 커맨더는 디스트로이어의 기분이나 표정쯤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디스트로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제복모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커맨더의 하얀 얼굴에서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웃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애매한 입매뿐이었다. 조금 거리를 둬 떨어진다면 얼굴을 다 볼 수 있겠지만, 커맨더가 고개를 조금만 더 들면 그 눈동자를 볼 수 있겠지만, 디스트로이어는 그런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