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은 제 연구실로 들어서자마자 숨이 멈출 뻔 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나사들, 금속의 조각, 그리고 역한 기름 냄새와 화학물질이 타는 냄새. 모든 것이 프라임에게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 왔어? 프라임”
디스트로이어는 기름이 묻은 손을 털고 연구실의 주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 방이 이렇게 넓었던가? 휑해진 방과 디스트로이어를 보며 프라임은 그런 의문이 들었다. 평소에는 기계와 공구로 가득 차 있어서 언제나 ‘더럽게 좁다’고 불평하곤 했는데, 지금 그의 연구실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넓어보였다.
“너, 너, 무슨, 짓을”
평소에 언제나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프라임도, 지금 만큼은 온 몸이 떨려 말을 더듬고 말았다. 디스트로이어는 질색을 하는 프라임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무엇이 즐거운지 환하게 웃었다.
“우와, 생각 한 것 보다 훨씬 대단한 얼굴이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묻고 있잖아”
아마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은 프라임의 마지막 선처일 것이었다. 다른 사람, 아니 자신이라도 조금만 더 어렸으면 당장이라도 자동권총을 뽑거나 맨주먹으로라도 멱살을 잡으러 덤볐을 것이었다. 기계를 만지며 사는 장인에게 연구실을 부순 다는 것은 영혼의 살해나 다음 없었다.
“요즘 이것들 때문에 바쁘다고 만나러 와 주질 않으니까”
반 토막이나 바닥에 나동그라진 HS-1가, 디스트로이어의 발에 채여 연구실 구석으로 날아갔다.
“그래서 그냥 부숴버렸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네가 화 낼 거라고 생각하고 한 거지만, 조금 의외네”
“뭐?”
프라임이 화내는 말을 잘라먹은 디스트로이어는 중화기를 들쳐 매고 프라임에게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자신보다는 훨씬 덩치가 큰 탓에 프라임은 평소 그에게 위압감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오늘 만큼은 디스트로이어에게 위압감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공포, 혐오, 분노, 그리고 아주 약간의 ‘절망’
코앞까지 다가온 디스트로이어의 얼굴이 프라임을 향했다. 불과 몇 센티 차이, 정확하게 서로를 마주보는 올리브 색 눈동자는 각각 다른 감정을 담고 있었다.
“나는 네가 울어주길 바랬는데”
기름 냄새. 디스트로이어의 몸에서 풍기는 것은 메카에 사용되는 기름이 썩는 냄새였다.
‘그래서 역겨운 건가’ 프라임은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납득하려 했다. 지금 자신이 토할 것 같이 기분 나쁜 것도, 눈이 뜨거워지는 것도, 금방이라도 괴로운 신음이 나오려는 것도 다 기름의 냄새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뭐, 울리는 건 나중에 내 손으로 직접 하면 되니까”
일단 샤워를 할까. 제 몸에 묻은 기름을 닦아낸 디스트로이어가 더러운 손으로 프라임의 뺨을 훑었다. 밖에 잘 나가지 않아 창백한 피부 위 그어진 새까만 기름의 선은 마치 눈물이 지나갈 아스팔트길처럼 보였다.
“이번 일은 용서해 줄 거지? 프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