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야/엽궁] 수라(修羅) 06
※ 유곽 AU 설정입니다
修羅
06
written by Esoruen
날이 밝았을 때 미야지의 방에 남은 것은, 어린 유녀와 미야지 단 둘뿐이었다.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엄청난 밤을 보낸 미야지는, 침구 위에서 상체만 벌떡 일으켜 주변을 살피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 사이 다른 유녀들은 다 어디를 간 건지 보이지 않았고, 방 안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마 먼저 자리를 뜬 유녀들이 치우고 간 것 같았지만, 미야지는 어제 밤 그 난장판을 잊을 수 없었다.
“…어이”
옷을 추스르고 제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유녀를 깨운 미야지는 조금 화난 표정이었다. 제 멋대로 자신의 몸을 주무르고, 술을 먹이고, 밤을 지냈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야마의 짓궂은 장난일 뿐, 유녀들은 그가 시키는 말을 따랐을 뿐일 테니 미야지는 제 끓어오르는 화를 최대한 억눌러 유녀들을 상대해야 했다.
미야지의 목소리에 일어난 유녀는, 발그레한 얼굴을 가리며 겨우 대답했다.
“네, 네?”
“다른 유녀들은?”
“전부 새벽에 나가셨어요”
“넌 왜 아직 있고?”
퉁명스러운 말투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할 텐데, 유녀는 여전히 복숭아처럼 불그스름한 얼굴로 친절하게 그에게 대답했다.
“전… 도련님을 봐야 할 것 같아서…”
“난 손님이 아니니까 그럴 것 없었어”
“그래도…”
미야지의 말에 금방 풀이 죽은 유녀는 덮고 있는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나이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아직 이 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티가 팍팍 나는 그 유녀는 미야지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딱히 그녀를 상처주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마음 여린 유녀의 표정에 죄책감이 든 미야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달랬다.
“뭐, 고맙긴 한데, 앞으론 그럴 필요 없다 이거야”
“다음에도 또 오실 거에요?”
“어? 아니… 예를 든 거지”
여자를 싫어하는 것도 유녀를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미야지는 별로 유곽의 즐거움을 즐길 생각은 없었다. 그 북적북적한 분위기, 가식적인 여자들의 행동, 돈에 눈이 먼 손님들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야지를 불쾌하게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므로 미야지가 다시 손님의 입장으로 여기 올 가능성은, 제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유녀는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추슬렀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방을 나가기 전 고민하던 미야지는 유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고 눈을 맞추었다.
“열심히 해라”
몸을 열심히 팔라는 건 이상한 말이지만, 그게 유녀인 이상 미야지가 할 말은 저것뿐이었다. 맹숭맹숭한 작별인사를 한 그는 곧바로 방을 나와서, 얄미운 의뢰인을 찾아 가게 안을 돌아다녔다.
다행이 하야마는 정원에 있었다. 카무로들과 함께 실뜨기를 하고 있는 하야마는, 제게 이제부터 닥쳐올 후폭풍도 모른 채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미야지의 분노에 불길에 기름을 부어버리고 말았다.
“하야마 코타로!”
“오! 미야지~ 그래, 재밌게 잘 놀았어?”
아무것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하야마의 얼굴은 그야말로 얄미움의 극치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야마에게 가까이 다가간 미야지는 카무로들이 보고 있든 말든 단번에 그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버럭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야?! 내가 언제 여기 손님으로 왔던?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난리야?!”
“아! 이거 놔~! 그래도 나쁘지 않았지? 우리 가게에서 잘나가는 애들로만 모은 건데!”
“그게 문제냐! 아무리 예쁘고 인기 있어도, 내가 싫다면 싫은 거라고!”
미야지가 정색을 하고 화를 내자 그제야 이 일의 심각성을 실감한 하야마는, 제 멱살을 잡고 있는 두 손을 놓게 하며 미야지를 진정시켰다. 물론 이 상황까지도 영업용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은, 유흥업 업주 아들의 천성 같은 것에 가까웠다.
“미안해, 미안! 두 번 다시 안 그럴게. 응?”
“…조심해라, 엉? …또 비녀 필요하면 와라. 비싸게 받을 거니까”
“네, 네. 조심해서 가~”
화가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형식적 사과라도 받아낸 것에 만족한 걸까. 미야지는 그대로 하야마를 놓고 가게를 나가버렸다.
휴우. 긴 한숨을 내쉰 하야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솔직히 미야지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하야마의 얼굴을 갈길 듯 화난 표정이어서, 그는 한 대 정도는 맞을 각오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피를 보지 않고 끝나다니.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도련님, 또 뭔가 사고 쳤어요?”
카무로 중 한명이 웃음을 참으며 말하자, 다른 카무로들도 전부 킥킥거리며 하야마를 비웃었다. 다른 가게라면 ‘어디서 주인어른의 아들을 비웃느냐’며 혼날 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하야마 코타로는 사고뭉치였고, 유녀들과 카무로는 그에게 당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그 당한 것만큼, 이 철부지 도련님과는 애증관계이기도 했다.
“그런 거 아냐! 끙. 우리 부모님껜 비밀로 해야 한다?”
“네에”
입 모아 합창하는 유녀들의 머리를 한번 씩 쓰다듬어준 하야마는 다시 손의 붉은 실을 이리저리 얽었다. 모양을 다 잡고,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유녀와 실뜨기를 시작하려는 그때 하야마를 붙잡은 것은 미야지와 가장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유녀였다.
“저어, 도련님”
“응?”
설마 미야지가 유녀들에게 해코지를 한 걸까. 지은 죄가 있기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하야마는 조금 긴장한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 ‘츠키미’라는 이름의, 유녀가 된지 얼마 되지 않는 그 소녀는 더듬더듬 작은 목소리로 하야마에게 물었다.
“그, 어제 뫼신 분의 이름이 뭔가요?”
“미야지 말이야? 미야지 키요시라고 해, 이 근처 비녀집 아들이야”
“그렇군요… 미야지님, 이군요. 감사합니다!”
달랑 이름 하나만 물어본 츠키미는 밝은 표정으로 제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태도에 하야마는 내심 안심하고 다시 카무로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이상하게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룻밤을 보낸 손님의 이름을 묻는 것은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특히 그게 유녀로서 경력이 없고, 밤을 지낸 손님이 적은 저런 유녀라면 묻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야마는, 츠키미가 미야지의 이름을 묻고 간 것이 불편한지 도저히 표정을 펼 수가 없었다.
‘별 뜻 없겠지’
애써 그렇게 생각한 하야마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툭.
붉은 실은 그 힘에 못 이겨 그대로 손 안에서 끊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