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아라] 델피니움
※ 하나하키병 소재
※ 델피니움의 꽃말 : 당신은 왜 나를 싫어합니까.
※ 소재를 준 챠로찌에게 이 소설을 헌정합니다 하트하트
델피니움
written by Esoruen
마나미가 부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3일째, 후쿠토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인이 오지 않는 자전거를 힐끔 쳐다보았다. 연습을 빠지는 일이 없던 마나미가 3일이나 아프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마나미는 우수했고, 팀의 중요한 전력이었다. 이대로 뒀다간 부의 기강과 인터하이에 문제가 생길게 분명했다.
“그 녀석 또 안 왔어?”
아라키타는 라커룸에서 나오며 혀를 찼다. ‘1학년이 벌써부터 기가 빠졌군, 잘한다고 우쭐거리는 거냐?’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는 그는 평소에도 마나미의 태도에 불만이 많은 부원 중 한명이었다. 언제나 연습에 멋대로 빠지질 않나, 그러면서 수업은 자전거를 타느라 빠지는 청개구리 같은 마나미를 아라키타는 진심으로 ‘얄밉다’라고 생각했다.
“진짜 아픈 거 아냐? 요즘 아예 자전거도 안타는 거 같던데”
“그럴 리가 있냐. 그냥 기가 빠진 거라니까?”
토도의 반박에도 아라키타의 반응은 냉정했다. 저렇게 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은 토도였지만, 원래 아라키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분명 저렇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걱정하겠지. 이미 다 안다는 듯 토도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럼 선배가 혼 좀 내줘야지, 안 그래?”
토도의 시선이 후쿠토미에게로 갔지만, 후쿠토미는 여전히 마나미의 자전거를 빤히 내려다 볼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저리도 하는 것일까. 부원들은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는 주장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라키타”
“아?”
“양호실에 가서 마나미를 데려와”
“하아?! 왜 내가?!”
“네가 가장 불만을 많이 말했으니까”
후쿠토미의 선정 방식에 부원들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후배들은 정말 주장이 불만만 말하는 아라키타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내렸다고 생각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3학년생들은 왜 후쿠토미가 아라키타에게 이 일을 맡겼는지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신경 쓰이면 참을 수 없는 아라키타의 성격을 알고 있었던 그는, 직접 아라키타에게 마나미를 데려올 기회를 준 것이었다.
“나, 참! 귀찮게!”
입으로는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도 아라키타는 부실을 나와 양호실로 향했다.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었다면 끝까지 따졌을 텐데. 역시 이번에도 후쿠토미의 판단은 옳았다. 물론 그걸 아는 것은, 아라키타를 제외한 3학년들뿐이었지만 말이다.
부실을 나와서는 입을 다문 아라키타는 양호실이 있는 복도에 들어서서야 정말로 마나미가 많이 아픈 것일까 걱정이 되었다. 그저 연습에 안 나온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가벼운 감기 정도로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양호실에 있을 정도라면 상당히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거였다.
‘아프면 병원에 갈 것이지, 뭐 하러 양호실에 신세를 져?’
괜히 의심한 게 미안해진 아라키타는 그렇게 불평하며 양호실 앞에 섰다. 아라키타는 기본적으로 튼튼해 양호실에는 왕래한 역사가 없는 관계로, 이대로 들어가도 되는지 아니면 노크를 해야 하는지 몰라 잠시 고민해야 했다. 한숨을 한번, 마른침을 한번 삼킨 그는 결국 노크 없이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손목을 돌렸다.
“마나미, 있냐!”
기껏 기세 좋게 들어왔건만, 양호실 안은 썰렁했다. 양호선생님은 자리를 잠시 비운 것인지 겉옷만 남긴 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조용한 양호실을 채운 것은 이름을 읽을 수 없는 수많은 약병들과 누워있는 학생들뿐이었다.
양호실 안에 있는 침대는 셋. 그 중 비어있는 침대는 가장 안쪽의 하나 뿐. 가운데와 창가 쪽 두 침대는 학생이 누워있는 것인지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저 둘 중에 한곳엔 아마도 제 얄미운 후배가 누워있겠지, 그렇게 철썩 같이 믿은 아라키타는 제 감으로 어느 쪽 침대가 정답일지를 고민했다.
“음?”
아라키타는 이상한 인기척을 느끼고 창가 쪽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칸막이로 가려져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창가 쪽 침대 밑에는 무언가가 가득 쌓여있었다. 어딘가 수상하다고 느낀 그는 소리를 죽이고 창가 쪽 침대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칸막이 너머에는, 가늘고 불안정한 숨소리가 들렸다.
마치 레이스를 마치고 막 들어온 선수같이, 가쁘고 불안정한 숨소리. 듣고만 있어도 타인까지 힘들어지는 숨소리에 아라키타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안에 있는 것은 마나미든 아니든, 굉장히 아픈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가쁜 숨을 쉴 리가 없었다.
툭. 아라키타의 발밑에 무언가가 부딪히자 그는 고개를 아래로 숙여 제게 굴러온 것이 무언인지 확인했다. 아라키타의 곁으로 굴러온 것은 다름 아닌 꽃이었다.
‘양호실에 왜 꽃이 있어?’
이상하긴 했지만 눈앞에 있는 것을 거짓이라 할 수는 없는 법, 그는 꽃을 주워들고 향을 맞아보았다. 옅은 꽃향기, 그것은 조화에서는 날 리가 없는 냄새였다. 물감을 덧입힌 것 마냥 새파란 그 꽃을 생화라고 판단한 아라키타는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바로 그 꽃이 창가 쪽 침대의 칸막이 너머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화 같은 상황에 아라키타의 사고는 정지되었다. 꽃이 넘쳐흐르는 침대라니. 혹시 자신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제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은 차가웠다. 열린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따뜻했고, 칸막이 너머에서 들리는 숨소리도 생생했다. 이런 생생한 광경이 꿈일 리가 없었다. 그럼, 현실이라면, 이 상황은 도대체…
‘병문안으로 두고 온 꽃이, 바람에 흩날려 바닥에 쏟아진 거겠지’
아라키타의 머리로 생각 할 수 있는 상황은 그 정도뿐이었다. 물론 저 가정이 진짜일거란 보장은, 이 양호실 안의 누구도 해 줄 수 없었지만.
“선…배…”
칸막이 너머의 가쁜 숨소리가, 처음으로 단어를 내뱉었다.
“아, 라키타 선배…”
그리고 단어는 문장이 되었고, 아라키타의 숨통을 조여 왔다.
“쿨럭! 쿨럭!”
후두둑. 또 꽃이 떨어졌다. 칸막이 밑 부분에 수북하게 쌓이는 꽃은 그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오싹함을 가져오기 충분했다. 아라키타는 이 칸막이 너머에 있는 것이 마나미임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칸막이를 열어 젖힐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을 마나미의 모습을, 그는 차마 상상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배… 선배…! 아라키타! 아라키타 선배!”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진 아라키타는 결국 칸막이를 열어젖혔다.
새하얀 침대 위, 웅크려서 누워있는 마나미는 꽃을 토해내고 있었다.
푸른색의 작은 그 꽃들은 침대 위를 가득 채우고 넘쳐 바닥에 가득 깔렸고, 바닥에 깔려 넘쳐흐르는 그 꽃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점점 침대 바깥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분명, 마나미가 꽃을 토하는 장면만 보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아름다운 광경이었을 텐데.
알 수 없는 상황의 공포에 얼어붙은 아라키타를 발견한 마나미는, 힘겹게 웃어보였다.
“우와”
그 감탄사에는, 순수한 기쁨이 묻어져 나와 있었다.
“선배를 부르니, 선배가 왔네요”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꽃은 마나미의 혀끝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실은 원망하며 부른 거지만,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