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을 갔다 온 워록은, 제 피곤한 몸을 쉬게 할 틈도 없이 제 앞에 내밀어진 커다란 케이크의 ‘이유’를 생각해야 했다. 누가 오늘 생일이었던가,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었던가, 추측 할 수 있는 이유는 다 생각해봤지만 워록은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이거, 뭐냐?”
“케이크”
케이크를 내밀고 있는 프로즌하트는 여전히 뭘 생각하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그걸로 지금 상황을 추측할 수 있을 텐데. 워록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난 단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케이크!?”
“…오늘은…”
이런. 프로즌하트의 첫 마디에 워록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역시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이었단 말인가. 마치 여자친구의 생일을 잊어버린 것 같은 남자친구가 된 듯, 온 몸에서 식은땀이 나는 워록의 시선이 케이크에서 바닥으로 향했다.
“…네가 처음으로 여기에 온지 1년째 되는 날이야”
“하?”
예상도 하지 못한 기념일에 워록은 고개를 들었다. 황당하다는 그의 표정과 달리, 프로즌하트는 뭐가 문제냐는 듯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계에서 여기로 온지, 한 달 째 되는 날이라고”
“…그걸 기억하는 너도 대단하지만 말이야… 그런 사소한일까지 기념일로 만들지 마!!”
부끄러움의 표현일까, 아니면 정말로 이런 사소한 것 까지 챙기지 마라는 뜻일까, 얼굴이 빨개진 워록은 케이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며 소리쳤다.
케이크는 새하얀 생크림이 가득 덮인 과일케이크였다. 삐뚤빼뚤 각각 다른 모양으로 잘라진 과일은 시럽에 푹 담가둔 것인지 달콤한 광채가 났고, 그 위에 체크무늬로 뿌려진 초코시럽은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지저분한 느낌도 들었다.
“설마, 이거 네가 만든 거냐?”
“응.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긴 했지만…”
“뭐 하러 그랬어, 사면되는 거지”
물론 이 직접 만든 케이크가 기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누가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 줬는데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워록은 프로즌하트가 그다지 요리하는 것에는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걱정이 되어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온 몸이 차가운 아이. 심장이 얼어붙은 자. 그것이 프로즌하트를 부르는 말들이었다.
손끝부터 심장까지 차가운 프로즌하트는, 끝없이 재료를 손질해야 하고 불 앞에 있어야 하는 요리와는 맞질 않았다.
“하지만 이벤트 준비는 되도록 스스로 다 하는 게 좋다고 그래서…”
“누가?”
“대암흑천씨가…”
“언제부터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분명 대암흑천은 자신과 프로즌하트를 생각해서 해 준 말이었을 테지만, 워록은 괜히 질투가 났다.
“…별로야?”
“응?”
“케이크”
하지만 그 질투가 프로즌하트에게는 불만으로 보인 걸까.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묻는 프로즌 하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워록의 목 끝까지 차오른 질투가, 순식간에 미안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머,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포크라던가 없어?”
“잠깐만”
워록을 세워둔 채 부엌에 간 프로즌 하트는 쇠로 만든 포크를 내밀었다. 포크를 받아든 워록은, 프로즌하트가 쥐었던 부분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냉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케이크에 포크를 꽂아 넣었다.
한입에 다 넣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크게 케이크를 자른 워록은 초콜릿 시럽이 뚝뚝 흐르는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있네, 고마워”
“맛있다니까 다행이네”
“뭐, 먹을 만 하다는 의미니까”
꼭꼭 씹어 케이크를 삼킨 워록은 다시 케이크를 작게 잘라 프로즌하트의 입 앞으로 내밀었다.
“자, 너도”
“…응?”
“너도 먹으라고”
갑작스러운 상냥함에 얼어있던 프로즌하트는 미소를 띤 얼굴로 내밀어진 케이크를 덥석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