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후리아카] 동거인
동거인
written by Esoruen
오후가 되어 눈을 뜨면, 늘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집에서만 지내는 내게 있어서는 이 시간에 눈이 떠지는 것은 동거인이 집에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거하게 된 것은 벌써 1년 전 일이었다. 어느 비가 많이 오는 여름, 역사적인 첫 동거생활을 하게 된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좋은 말로는 착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조금 멍청한 내 동거인은 그날 비를 많이 맞고 들어온 나에게 우선 목욕부터 할 것을 권했고, 씻고 나오니 따뜻한 마실 것과 이불을 덮어주는 등, 바보 같을 정도로 상냥하게 대해줬다. 순진한 사람이네. 그게 내 첫인상이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그의 인상이었다.
그는 이 근처의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출근 시간은 이른 아침인 대신, 오후 5시쯤 되면 이렇게 칼같이 퇴근했다. 한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인 난 바깥일은 할 수 없기에 보통 생활비는 그가 벌어왔다. 그는 내가 입도 짧고 많이 먹지도 않으니 특별히 생활비에 부담이 가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내 입장으로선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그가 올 때마다 일어나 맞이해 주는 것은, 내 나름으로서의 고마움의 표시라 할 수 있었다.
달칵.
“나 왔어, 아카시”
“어서와 코우키”
후리하타 코우키. 동거인의 이름이었다. 아카시 세이쥬로. 그건 내 이름이었다.
코우키는 조금 닳아버린 구두를 벗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손을 씻고 내게로 왔다. 내 얼굴을 잡고 걱정스러운 듯 나를 보던 그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마 내 눈을 걱정하는 것이겠지. 오지랖도 넓은 사람이었다.
내 눈은 이미 너와 동거하기 전부터 이랬는데,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으음, 아, 저녁 먹자! 아카시!”
내 눈에 대해 한 마디 하려던 그는 겨우 그걸 억누르는 듯 말을 더듬더니 어색한 미소와 함께 부엌으로 사라졌다. 따라가서 조금이라도 도와줄까 하다가, 역시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두잔 생각에 얌전히 앉아 그를 기다렸다. 코우키는 내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예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유난떠는 것이 싫었지만 내가 한번 화를 내면 왜인지 그는 내가 더 미안해 할 정도로 사과를 해서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
조금 기다리자, 그는 작은 상에 나와 자신의 식사를 가지고 왔다. 나는 메뉴를 보고는 절로 혀를 찼다. 내 밥은 제대로 차려놓은 주제에 본인은 컵라면이라니.
“코우키”
“응? 아, 설마 마음에 안 들어?
“밥이 그게 뭐야, 제대로 먹어야지. 네가 그런 걸 먹는데 내가 멀쩡히 밥을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밥상을 뒤로하고 돌아서자 코우키는 놀라서 나를 붙잡았다. 곤란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지만 곤란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거인의 식사가 저런데 나 혼자 배불리 배를 채우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왜 그래 또, 응? 밥 먹자 아카시”
“싫다고 했어. 놔”
그 손을 뿌리친 나는 도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온기가 가시지도 않은 이불속에 잠들 때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자, 발소리가 이쪽에서 멈췄다.
“내가 잘못했어, 응? 밥 먹자. 걱정 시키지 마. 응?”
뭘 잘 못했다고 동거인은 비는 걸까. 화가 났다. 그럴 땐 잘못했다고 하는 게 아닌데. 상황을 무마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날 화나게 한 것 자체에 미안하다고 하는 걸까. 이대로 잠들어버릴까 하다가 그러면 코우키에게 미안하니까 결국 난 이불속에서 나왔다. 사과하는 그를 지나쳐, 얌전히 밥상머리로 돌아와 식사를 하자 그도 안심이 된 건지 제자리로 돌아와 다 익은 컵라면의 뚜껑을 열었다. 오늘 저녁도 이렇게 지나갔다. 사실은, 이런 날은 꽤 자주 있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희생하고, 내게 정성을 쏟는다. 날 사랑하니까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그의 면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후리하타 코우키의 모습 중 하나였다.
저녁밥을 먹고 같이 TV를 보고,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그렇게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그와 난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낮잠을 자서 잠이 안 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우키는 누워버리자 마자 나를 두고 잠들었다. 피곤했을 테니까 어쩔 수 없겠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잠든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나도 눈을 감았다. 억지로라도 같이 자줘야지. 의무감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코우키는 평소보다 더 늦게 들어왔다. 피곤을 한 번에 표현하는 것 같은 얼굴로 허겁지겁 들어온 그는 늦은 이유를 설명하며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미안해 아카시 기다렸지? 오늘 부장님이 회식하자고 하는 바람에, 으아아, 굶었을 텐데 미안해!”
회식에서 중간에 빠져나오느라 애를 먹었다는 말까지 덧붙인 그는 내 식사를 가져왔다. 그래도 회식이라면 아마 코우키는 배불리 먹었겠지. 어제의 컵라면을 생각하면 내 식사가 늦어져도 이쪽이 더 내겐 마음편한 일이었다. 오늘은 군말 없이 밥을 먹자, 그는 힘든 표정을 걷어내고 생긋 웃어보였다. 그 표정이 너무 해맑아서, 나도 모르게 나까지 미소 짓고 말았다.
“아카시”
보통 성인남자의 손보다는 조금 작은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스한 손길, 밥을 먹는데 분명 방해는 되었지만 싫지 않았기에 그냥 내버려뒀다. 천천히 날 쓰다듬던 그는,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난 아카시가 이렇게 잘 먹는 것만 봐도 좋아. 아카시를 보고 있는 것 만 으로도 난 행복한 걸. 그러니까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쭉 나와 있어줘”
사랑이 가득 담긴 말에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어 고개를 끄덕여줬다. 쭉 같이 있어줄게, 코우키. 비록 낮 동안 날 외롭게 하고, 제 자신도 잘 안 챙기는 착한 바보지만. 너는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사랑하니까. 평생, 같이 있어줄게. 넘쳐나는 대답을 뱉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삼킨 나는 도로 식사를 계속 했다.
“후리, 잘 들어갔어?”
“아, 으응! 고마워 카가미. 일부러 나까지 빼주고”
후리하타는 집안을 치우다 말고 직장동료에게 걸러온 전화에 손을 멈추었다.
“뭘, 우리 부장님 한 성깔 하잖아. 그래 밥은 챙겨줬고?”
“어어, 오늘은 잘 먹더라고”
“다행이네! 어젠 겨우 먹였다더니”
“하하, 정말이지 일 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도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뭐, 보통 그렇잖아… 고양이는”
으응.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 후리하타는 제 옆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힐끗 보았다. 고양이는 TV에 시선을 빼앗겨, 이쪽은 보고 있지도 않았다. 마치 사람 같은 행동에, 후리는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너도 대단하다니까. 주워온 고양이를 일 년이나 그렇게 자기 몸 돌보는 것처럼 돌보고. 나 같으면 못해. 어차피 난 개도 고양이도 별로지만”
“하하, 하긴 카가미 너 개는 질색이었지. 그래도 말이야, 삶의 위안이 된다고 고양이는. 물론 처음 주워 온건 박스 속에서 비 맞고 있는 게 불쌍해서였지만”
“그래, 그래. 아 그 고양이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름 쓰인 목걸이 달고 있었다고 했잖아.”
“아, 우리 고양이? 아카시야”
살며시 손을 뻗어 오드아이의 고양이를 쓰다듬은 후리하타가 그 목에 걸린 목줄을 만지작거렸다. 주워올 때부터 하고 있었던 목줄에는, 한자로 반듯하게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라고 해”
+
요약하자면, 아카시는 본인이 고양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거죠, 자신이 후리하타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일종의 망상?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고양이 아카시와 주인 후리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