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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프라] FOUL 中

Еsoruen 2014. 10. 11. 17:35

 

※ 연성 키워드 결과물로 써보는 오셀로 증후군 디트프라

※ 상편 링크 http://mmdreamer.tistory.com/366

 

 

 

 

FOUL

written by Esoruen

 

 

프라임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인간적이지 못한 사람이었다. 사교성도 별로였고, 언제나 제 연구실에 박혀 기계를 만들거나 설계도를 그릴 뿐. 다른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은둔형 외톨이’ 혹은 ‘사회 부적응자’ 보통 프라임 같은 사람을 그렇게 부를 수도 있었지만, 황도군의 누구도 그를 그렇게 부르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프라임이 누구나 인정하는 노력가이자 천재이기 때문이었고, 그의 손에서 탄생한 수많은 메카들은 황도군에 아주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해서였다.

디스트로이어는 처음엔 그런 프라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천재성만 믿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 혹은 인간관계도 제대로 맺지 못하는 겁쟁이. 그게 디스트로이어가 프라임을 만나기 전 생각한 프라임의 인상이었다. 물론 그 인상들이 소문과 그에 대한 평가로만 만들어졌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였을까. 디스트로이어는 처음으로 프라임과 얼굴을 대면한 날 놀라고 말았다.

 

“이거, 커맨더에게 전해줘”

 

디스트로이어를 힐끔 보고 서류를 내미는 프라임의 얼굴은 많이 지쳐있었다. 몇 날이나 밤을 샌 것인지 눈 밑은 거뭇거뭇, 입술은 갈라져 피가 나기도 했고 목소리도 거칠었다. 꽤나 잘난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소문난 천재도 결국은 사람이란 생각에 디스트로이어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나 모르겠네”

“네가 상관 쓸 일은 아니니 그만 가지 그래. 난 집중이 안 되면 아무것도 못하거든”

“천재치곤 집중력이 약한가봐?”

 

대놓고 비꼬았지만 프라임은 반응이 없었다. 대꾸할 가치도 못 느낀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비꼼조차도 낮선 것이었는지는 몰랐지만, 그는 그저 아무것도 안 들리는 사람처럼 디스트로이어에게 등을 돌리고 책상으로 휘적휘적 걸어갈 뿐이었다.

농담도 비꼼도 안 먹히는 사람은 질색이었다. 여유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디스트로이어는 어깨를 으쓱이고 방을 나가려했지만

 

“야, 잠깐”

 

프라임의 부르는 소리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너, 잠시 이리 와봐”

“…난 ‘너’가 아니라 디스트로이어라고 하는데?”

“알아, 아니까 이리 와봐! 등에 맨 그 무식하게 무거운 거 들고!”

 

등에 맨? 아아. 이것 말인가, 디스트로이어는 얼마 전 부대에 새로 보급 받은 중화기와 프라임을 번갈아 보고 웃었다.

 

“이건 왜”

“왜? 왜긴 왜야, 그거 딱 봐도 맛 갔는데. 난 저런 걸 보면 못 참아. 이리 가져와”

 

프라임은 잔뜩 인상을 쓰고 책상에서 기계들 틈의 의자로 이동했다. ‘맛이 가?’ 뭔가 의아한 표현에 디스트로이어는 반신반의하여 프라임에게 다가갔고, 그의 앞에 제 중화기를 내려놓았다. 확실히 최근 중화기의 손잡이가 흔들리거나 조준이 묘하게 안 맞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보기만 해도 안단 말인가.

 

“이런 게 보급품으로 나오다니. 재정이 말이 아닌 건가, 아니면 다루는 녀석들이 험하게 굴리는 건가…”

 

혀를 쯧쯧 차며 중화기를 분해하던 프라임은 공구 상자에서 이런저런 부품을 꺼내더니 중화기의 내용물과 교환했다.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교체. 두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중화기를 새로 태어나게 해 주었다.

 

“들어봐, 전보다 조금 가벼울 거야”

 

그러면 큰일 아닌가. 그렇게 말하려던 그는 프라임의 진지한 표정에 군말 없이 제 중화기를 집었다. 프라임의 말대로 중화기는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특별히 이상한 게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문제생기면 다시 찾아와. 뭐 그럴 리는 없지만”

“뭘 한 거야? 여기에”

“성능 향상? 자세한건 어차피 알려줘도 모르니 들고 가. 보고서 똑바로 전하고”

 

마치 부하를 대하는 것 같은 말투. 거기서 디스트로이어는 한 번 더 기분이 상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인간관계가 서툴러 저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거겠지. 자신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줄 수밖에. 선심 쓰듯 그렇게 생각했던 디스트로이어는, 그날 훈련에서 제 태도를 후회하고 말았다.

 

“…뭐야 이거”

 

중화기는 가벼워 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높아진 정확도, 빨라진 충전 속도, 그리고 적어진 반동까지. 이런 게 이론적으로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중화기는 성능이 좋아져있었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있구나’

 

누군가에겐 그저 사소한 행운이었을지 몰라도, 디스트로이어에겐 그건 하나의 문화충격과도 같았다. 존경스러움에 가까운 호감, 그리고 싸늘했던 그 태도에서 배어나온 친절. 그는 프라임이 좋아졌다. 저 고독한 천재를 더 알고 싶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이후였을까. 그는 프라임을 찾아오는 횟수가 잦아졌다. 좋아하니 보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프라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그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했다. 물론 일에 관련된 일에서는 표정을 바꾸고 디스트로이어와 말을 섞었지만, 그것은 공적인 관계일 뿐. 솔직히 말하자면, 프라임이 자신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디스트로이어는 굳게 믿고 있었다.

사실 프라임은 인간관계를 겪어본 적이 없는 서투른 사람이라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사실 프라임은 자신을 좋아한다고.

저 천재에게 어울리는 것은 자신뿐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한 고백이었고.

그래서 한 감금이었다.

디스트로이어에겐, 그게 전부였다.

 

방문 너머로 아무 반응이 없는 걸 몇 번이나 확인한 그는 손잡이에 붙인 칩을 떼어내었다. 언젠가 멜빈이 개발해 상부에 넘긴 그 칩은, 기계장치에 혼란을 일으켜 모든 동작을 불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분명 이 칩을 개발한 의도는 카르텔의 기계들을 못 쓰게 하려는 용도였지만, 디스트로이어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용도로 개발되었든,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인다면 그만 아니겠는가.

 

“깨기 전에 다녀와야겠네?”

 

어차피 나오려고 하거나 나온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지만. 그 말은 마음속에만 담아두기로 한 디스트로이어는 프라임이 개조해준 중화기를 들고 방문 앞을 떠났다.

프라임이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 것은, 솔직히 그로선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프라임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만약 프라임이, 저 외로운 천재가 자신을 밀어냈다면 그건 자신보다 조금 더 친밀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네가 사랑하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니까’

 

긍정적인 그는 감히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 프라임을 벌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의심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과 프라임 사이에서 제거할 거라고 다짐할 뿐.

 

“좋아, 처음은”

 

누구부터, 치워버릴까.

디스트로이어의 혼잣말은 빨라지는 발걸음 속에 파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