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성데페] 밤, 파편
글모임 봇(@Writers_Home) 주제로 쓴 단문연성
사용한 주제는 '푸른 나비, 가장 소중한 것은 여기에 있어' 입니다!
밤, 파편
written by Esoruen
유난히도 별이 밝은 날이었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추운 밤이었지만 하늘은 눈부셨고, 내 옆에는 동행이 있었다. 무법지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랫세계에선 당연한 일. 마치 다른 세계에 자신이 둘이 있는 것처럼, 내가 있는 곳에 따라 이 삶은 언제나 심하게 굴곡졌다.
새빨간 눈동자는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짐승의 눈을 가진 동행의 한쪽 팔은, 대리석 마냥 흰색으로 비틀려 있었다. 그 흉함은 객관적으로 전혀 아름답지 않았지만, 나는 이 녀석의 이 팔이 좋았다. 제 인생마냥, 혹은 내 인생마냥 말라비틀어진, 생기 없는 그 팔이.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은 그였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된 싸움으로 지친 얼굴로 씩 웃는 그 녀석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이쪽으로 돌렸다.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수고까지야”
“그래도 나 혼자서는 무리인 일이었으니까”
겸손한 척 하긴. 검성은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점이 짜증났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은 내가 없어도 괜찮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나도 이 녀석 없이 괜찮았다. 우리는 충분히 개인으로 있을 수 있었지만, 그냥 서로를 찾게 되었다.
“곧 겨울이네”
마른 입술이 움직이면서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새까만 밤하늘에 흩어지는 숨은, 별빛을 받아 산산이 부서졌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담배연기와는 다른, 온 감정이 다 녹아있는 그 한 번의 호흡. 순간 눈앞이 흐릿해진 나는, 느리게 눈을 꾹 감았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비슷한 풍경이 보인다.
제 몸 만큼 커다란 검을 휘두르는 검성은 언제나 푸른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건 영혼의 빛이라 할 수 있었다. 눈동자의 색과, 머리털의 색과는 전혀 다른, 가죽과 근육 그리고 뼈 그 안쪽에 숨어있는, 영혼의 색.
어째서 그는 새빨간 짐승의 눈을 하고, 그런 색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걸까.
“춥군”
눈을 뜨자, 새하얀 별빛 사이로 매캐한 냄새가 파고들었다. 물고 있는 담배는, 더 이상 타 들어갈 정도가 없을 만큼 짧아져있었다. 소모품이란 이래서 귀찮다. 다 쓰고 없어지면 새로 사야하고, 예전 것은 그냥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물론 소모적인 건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빛나는 별도, 내 옆의 이 녀석도, 그리고 그 녀석을 볼 때마다 답답해져오고 지끈거리는 내 마음도. 언젠간, 아무 곳에도 남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런 게 뭐가 좋냐”
물고 있는 담배를 뱉어내려던 나는, 내 입가로 다가온 새하얀 손에 동작을 멈추었다. 다 타버린 담배를 휙 뺐어간 그는 두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꾹 눌렀다.
쇠와 피의 맛이 나는 손가락은 뜨거웠다.
다가온 입술에서 내뱉어지는 입김은, 푸른색으로 흩어졌다.
새까만 어둠 속, 팔락팔락 흩어지는 푸른빛은 나비의 인분과도 비슷했다.
가볍고, 따가웠고, 덧없는. 나비의, 인분 말이다.
“담배냄새 봐라, 쯧. 좀 줄여”
다가온 얼굴을 치운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꽁초를 버렸다. 저건 내가 할 일이었는데, 이런 친절은 필요 없었다.
“나한테 상관 하지 마”
“어떻게 상관 안 해? 애인이 일찍 죽길 바라진 않는데”
“…뭐라는 거야”
누가 애인이라는 건지, 너의 농담은 지독하고 아팠다. 내가 어떻게 너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 영원한 것 같은 건 없는데. 이 아픔도 애절함도, 결국은 찰나일 뿐인데. 이 녀석은 어떻게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너는, 그런,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