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빙/무라히무] 발목
발목
written by Esoruen
막 깨어나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새하얀 발목이 보였다.
햇볕을 거의 받지 못한 듯 하얗게 빛나는 발목이 꼭 빙수의 얼음 같다고 무라사키바라는 생각했다. 누구의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이런 이른 아침에 제 방에 자신 말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룸메이트인 히무로뿐이었으니까.
오늘은 분명 휴일인데도 히무로는 일찍 일어나 편한 옷을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히무로는 자신이 묻는 것은 늘 잘 대답해 주었지만,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불평하거나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서운하지 않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었다.
무라사키바라는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는 히무로를 보다가, 문득 자신이 이렇게 그를 자세히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를 볼 때는 위에서 아래로, 자신보다 작은 그를 내려다보기만 했고, 그 마저도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히무로보다 아래에서, 히무로를 자세히 보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유독 발목에 눈이 갔다. 조금은 헐렁한 청바지의 바짓단은 발목의 반 정도만을 가리는 길이였다.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에서부터 발목, 그리고 바지로 가려진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느릿하게 훑어 올리고 나자 문득 히무로의 다리가 예쁘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의 중학교 동창이자 테이코 주전으로 같이 뛰었던 키세도, 분명 다리가 선수치고는 상당히 예뻤었다. 모델을 하고 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히무로는 모델도 아니면서 저런 다리를 가지고 있는 걸까. 별 의미 없는 궁금증이었지만 히무로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 무라사키바라로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탐구주제였다.
그런데, 히무로가 준비를 다 끝낸 것인지 옷매무세를 가다듬고는 방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 짧은 한숨을 내쉰 무라사키바라의 손이 겁 없이 쭉 뻗어져나갔다.
“응?”
제 손목을 잡은 커다란 손에 히무로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무라사키바라를 보았다. 입가에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 발목처럼 새하얀 얼굴에 무라사키바라는 눈을 찌푸렸다. 눈부셨다. 분명 아직은 어두운 방이었는데도 히무로만 설탕과자같이 달콤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아츠시 일어나 있었어?”
“응”
“좋은 아침”
“으응, 무로칭도 좋은 아침. 어디가?”
이런 상황에서 마저도 아침인사라니. 역시 히무로 타츠야라는 남자는 그에게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포커페이스라고 하던가. 저런 사람을. 아카시도 분명 포커페이스 같은 부류지만 아카시와 히무로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무라사키바라는 그것이 좋았다. 그 무언가 모르는 그 차이로, 아카시에겐 느낄 수 없는 감정을 히무로에게 느끼고 있었다.
‘어디가’라는 질문에, 히무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느긋하게, 미소 지으며 무라사키바라를 바라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려고. 아침 산책이라고 해둘까?”
“여기 있어, 아직 해도 안 떠서 꽤 춥고”
“그래도 벌써 5월이니까 괜찮아”
“있어”
강요조의 말이었지만, 그것은 협박이나 명령이라기 보단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꽉 붙잡은 손목을 잡아당겨, 제 앞에 히무로를 앉힌 무라사키바라는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히무로의 허리를 끌어안아 눕히고 눈을 감았다. 아직 졸음이 쏟아지는 그였지만, 팔 힘은 완전히 깨어있을 때와 같아서 히무로는 어찌하지도 못하고 얌전히 안겨있기만 했다.
“아츠시는 어린애네”
“무로칭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고”
“어째서?”
“한살 차이밖에 안 나잖아”
그건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닌데. 히무로가 말했지만 이미 무라사키바라는 듣고 있지 않았다. 비몽사몽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불 속 마주 닿는 피부의 온도. 자신보다 한참 작은 히무로였지만 몸을 웅크리고 있는 탓에, 히무로의 발과 자신의 발은 겨우 마주 닿아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새하얀 발, 새하얀 발목은 그 색처럼 차가워서 무라사키바라는 잠이 달아날 뻔 했지만 제 얼굴을 간질이는 히무로의 숨결은 그 무엇보다도 따뜻했기에 다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아츠시?”
정말 잠든 것인가 싶어 이름을 불러보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정말로 아츠시는 못 말리네. 그가 깨지 않게 속으로만 중얼거린 히무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휴일이니까, 조금 더 자도 아무도 타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여기서 몰래 빠져나간다면, 무라사키바라가 삐져선 과자만 먹겠다는 억지를 부리거나 제 침대에 과자 부스러기 테러를 해 놓을 수도 있었다.
“잘 자, 아츠시”
방금 했었던 아침인사를 잊은 듯, 히무로는 태연하게 굿나잇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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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로 쓴 글이지만, 아까워서 홈에도 올려봅니다 :D
자빙 귀여워요 자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