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녹/타카미도] Animals
※ 좀 정신나간 타카오 주의
※ 15금 정도의 수위라고 주장하는데 괜찮겠지
※ 챠로가 고녹으로 애니멀즈 보고싶다길래 삘받고 휘갈겼다 내 뮤즈 챠로찌 하트하트
※ 적녹(아카미도) 기반. 잠깐 그러고보니 이미 고녹적 아닌가 이거?
Animals
written by Esoruen
내가 일하는 정육점의 7시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온다.
지적인 생김새에 큰 키를 가진 그 손님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랜덤하게 이 정육점에 나타났다. 오는 요일은 언제나 달랐지만 7시에 오는 것은 같았기에 나는 그의 이름을 알기 전까진 그를 ‘7시’라고 지칭했다.
7시는 언제나 혼자 장을 보러 왔다. 사가는 것은 대부분 쇠고기. 부위는 안심이나 등심. 가끔 다른 부위도 사갔지만,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는 그다지 고기요리를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가 매주 여기서 고기를 사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 달 쯤 지났을까.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리 직원인 나는 그를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당연하게도 그와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의 친분은 생겼고, 그제야 그가 열심히 고기를 사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7시는 친구와 동거중이라고 했다. 자신과 친구는 고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동거인인 친구는 언제든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었기에 영양가 있는 식단을 위해 꼭 고기를 구입한다고 했다. 조리방법도 다양했다. 어떨 때는 구웠고 어떨 때는 삶았고 어떨 때는 조렸고 어떨 때는,
“그런데, 왜 늘 이 시간에 와요?”
이정도 질문은 괜찮겠지. 자세한 것은 물어볼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나는 이것만큼은 물어보고 싶었다. 7시가 7시에 오는 이유. 누구든 궁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시하게도 그가 7시에 오는 이유는 단순했다.
“일하는 회사가 이 시간에 끝나니까”
7시는 의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7시가 아니라 미도리마 신타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미도리마와 신타로와 동거하는 남자는 빨간 머리를 가진 쇼기 기사였다. 나는 바둑이나 쇼기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그 남자의 얼굴은 어딘가에서 얼핏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신문의 1면이나 텔레비전 속, 혹은 같은 동내의 스쳐지나가는 행인 정도로 익숙해진 친근감이 만든 커다란 덩어리 같은 것이겠지. 갓 도축해 가죽을 벗긴 소의 몸뚱이 마냥 붉은 덩어리의 그는, 미도리마와 신타로의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다.
일반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연인이라 불렀다.
같은 집에 살고 매일 아침 밤마다 키스를 하며, 침대 위에선 벌거벗고 뒹구는 그런 관계는 확실히 연인이 맞았다. 그런 관계의 친구가 있다면, 사전 속의 ‘친구’가 일어나 도축용 칼로 그 사람을 찔러버릴게 분명하다. 어디 단순한 친구끼리, 다리를 벌려주며 음란한 일을 한단 말인가. 그건 애인이고 연인이고 부부나 하는 짓이었다. 미도리마 신타로와 그의 붉은 애인은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 모두의 안에는 나도 들어있었다.
나는 내게 거짓말을 지껄이는 7시에게 흥미가 갔다. 도덕적인 얼굴로 침대 위에선 자신보다 작은 남자에게 꼼짝도 못하는 그 얼굴이 좋았다. 각진 안경이 좋았다. 나를 무심하게 보고 길 위에선 아는 척도 하지 않은 싸늘함이 사랑스러웠다.
카메라는 생각보다 비쌌다. 중고로 샀는데도 내 한 달 월급의 반에 반이 날아가다니.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니 일부러 고성능의 기기로 샀다지만,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그와 더 친해졌으면 멀리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 푸념이 새어나왔지만 나는 그와 친해질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와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유능한 의사와 정육점의 직원이라니. 수준이 안 맞아도 정도가 있지.
비유하자면 나는 땅 깊은 곳에서 솟아나와 썩은 고기를 찢어먹은 하이에나라면, 그는 바위산 위에 앉아 누군가가 잡아오는 신선한 짐승의 고기를 뜯는 수사자였다.
어느 쪽이든 고기를 뜯어먹는다는 건 같았지만, 그걸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우린 천적이었고, 사냥꾼과 청소부였으며 공존할 수 없는 자석의 양극과 같았다.
처음 찍은 사진은 그의 나신이었다, 신타로, 그러니까 7시의 그 남자 신타로와 붉은 애인이 쓰는 침대는 창문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 난 커튼이 드리우지 않은 날이라면 언제든 둘을 볼 수 있었고, 둘이 열심히 비역질을 해대는 꼴을 찍을 수 있었다. 사실 맨 처음이라는 기념비적 사진이 이런 것임은 심히 유감이었지만, 나는 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뒤엉킨 두 고기와 붉은 색은 내 일터를 떠올리게 했다. 정육점, 도축된 소가 배달되는 이 도시의 단백질의 보고. 피 냄새가 풍기는 원시적인 곳.
내가 현상한 사진들은 대부분 집에 보관되었다. 신쨩을 쫒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은 하나하나 고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처럼 빛이 났다. 나는 그 빛남이 영혼에 들어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어쩐지 그를 해부하면 훌륭한 고기들이 쏟아질 것 같은 망상도 들었다.
고기. 내 친구이자 나. 그리고 미도리마 신타로와 그의 애인과 이 도시의 사람들과 인류와 그 외의 기타 등등 동물들. 사이코패스 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단백질로 구성된 생명체는 다 살아있는 고기와 죽은 고기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죽은 고기를 절단하는 사람이었고, 미도리마, 그러니까 신타로, 혹은 신쨩은 그런 고기를 사 제 붉은 덩어리 애인에게 먹이는 사람이었다.
7시가 신쨩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을 얼마나 될까. 그것은 인류의 진화보다 길었지만 꽃이 피는 시간보단 짧았다. 모순적이게 뒤틀리는 시간감각은 내 안에 피어오르는 것이 사랑임을 알려줬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6개월을 쫒아 다니며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지만 여전히 나는 집 근처 정육점의 성실한 직원이었고 미도리마 신타로는 7시에 고기를 사가는 손님이었다.
그는 아마 내가 자기 이름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모르긴 왜 몰라. 미도리마 신타로, S병원 내과의, 애칭 신쨩, 가족은 부모님과 여동생. 모르긴 왜 몰라. 모를 리가. 모를 리가!
미도리마 신타로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매일 피비린내가 나는 나와 달리, 잘 빨아놓은 침대 위에 엎어져서 자는 그의 몸에는 좋은 냄새가 났다. 그건 잘 마른 이불의 냄새일까, 아니면 입욕제의 냄새일까, 그것도 아니면 살 특유의 냄새일까. 창문을 넘어오느라 삐어버린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나는 입맛을 다셨다. 청소부의 사냥은 지저분하고 거칠지만, 먹이만 받아먹는 포식자 보다는 능숙하리라. 잠든 그를 먹어치우는 일은 즐거웠다. 사진기 같은 걸로 노는 것보다, 훨씬.
그는 내가 자신을 먹어치운 것을 모른다.
몇 번이나 내가 그를 물어뜯고 쑤시고 긁어놨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내가 그를 제압할 때는, 어둡고 조용하고 억압적이었으니까.
아마 이 불쌍한 의사선생님은 제 애인이 그저 말없이 자신을 따먹는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그리 당연하게 애인의 이름을 부르고, 부끄러운 줄 모를 소리들을 했겠지. 얌전하게 생겨서는! 나는 혀를 쯧쯧 차며 집에 보관해 놓은 고기들의 사진을 찢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신쨩 사진뿐이었으니, 고기‘들’은 필요 없었다. 붉은 짐승과 신쨩이 얽혀있는 사진은 냉동고의 매달린 고기 같았다. 품질보장 도장이 찍힌, 딱딱하고 붉은 재료들.
나는 소를 조각내면서 신쨩의 애인을 떠올렸다. 붉고 딱딱한 냉동소는 인간과 닮아있는 부분이 많았다. 크기라던가, 붉은 살코기라던가, 딱딱한 점 같은 것이 아주 닮아있어 처음 이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치 살인마가 된 것 같은 우울함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렇지 않았으면, 붉은 머리의 그는, 아카시 세이쥬로는
어느 날부터 7시의 미도리마 신타로는 정육점에 오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신쨩만이, 7시보다 늦은 시간에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
나는 비싼 카메라를 처분했다.
고기를 자르는 일은, 아직 그만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