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거미줄은 가로줄만이 점성을 가지고, 세로줄은 점성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아는 거미가 거미줄에 있어도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세로줄만을 타고 이동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로줄에 걸린 거미는 어떻게 되느냐.
간단하다. 자신의 집이라면 다리가 하나 사라지는 정도에서 끝나고 남의 거미집이라면 집주인의 식사가 된다. 잔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데스페라도는 마치 거미줄의 구조를 잘 아는 침입자 같았다. 모든 인간을 꿰어 잡아먹게 만드는 내 거미줄 위를 능숙하게 피해 도망치는 그의 모습은 분하게도 매력적이었다. 따뜻한 말투, 친절한 내 모습에 속아 다리를 벌려주는 계집애나 사내자식들과 달리 내 거짓을 한눈에 꿰뚫는 그는 내게 새로운 감정들을 일깨워줬다.
절망, 기쁨, 정복욕, 뭘 가져다 붙여도 어울릴 것이고 무엇에 비유해도 지나치지 않을 그건, 결국 애욕(愛慾)이라고 정의해야 할지도 몰랐다.
“넌 내가 싫어?”
세상에 저런 촌스러운 멘트를 날리는 난봉꾼은 없겠지만 나는 난봉꾼이 아니니 그리 물었다. 내 질문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피에 젖은 장갑을 벗으며 담배에 불을 붙인 데스페라도는 내가 우습다는 듯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럴 리가”
뻔뻔하게 나를 바라보며 거짓말을 하는 상판대기는 오만함으로 가득했다. 베어버릴 듯 날카로운 눈동자, 바싹 마른 거친 입술과 상처투성이의 피부, 길게 뻗은 모가지에 붙은 저 자그마한 대가리 안에 들어있는 생각이 알고 싶어 나는 초조해졌다.
데스페라도는 이 궁금증을 미끼로, 내 초조함과 욕정으로 나를 길들이려고 드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는 한심한 놈에게 학을 떼고 싶을 정도의 굴욕감을 안겨주고 싶은 걸까. 어느 쪽이던 좋았다. 나는 내가 물어뜯고 싶은 것을 위해, 기꺼이 이 한 몸을 던져 내 거미줄로 먹이를 유혹할 줄 아는 신사였으니까.
나를 길들이려는 이 건방진 나비를 내 가로줄에 앉힐 테다. 그리고 거미줄에 걸린 후에는, 그 날개를 다 뜯어내고 쓸모없는 다리를 뜯어먹고 길들여 줄 테다.
그런 희망이 있는 이상 나는 뭐든 견딜 수 있었다.
너만을 위한 조롱거리가 되어 주는 일은 쉬웠다. 너만을 위한 저격수가 되어주는 것도 쉬웠다. 사실 뒤에서 지원사격하는 일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데스페라도는 내 백업을 고마워 하진 않았지만 필요한 순간이 오면 반드시 써먹는 알뜰함을 보였다.
그래, 그래줘야 내가 사냥하는 보람이 있지. 나는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중학생 마냥 데스페라도를 쫒아 다녔다. 그는 그걸 쪽팔려하기도 했고 비웃기도 했고, 조금은 귀엽게 보기도 했다.
“네 녀석은 나쁘지 않아”
데스페라도의 가장 후한 평가는 저것이었다. 나는 저 이상의 칭찬을 그에게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건 다른 녀석들에게도 마찬가지인 일이었기에 상관없었다. 고독하고 사나운 내 사냥감은 언제나 사람을 멀리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잡아먹으러 올 것을 아는 초식동물처럼 그는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 물론 그가 초식동물이란 뜻은 아니었다. 그는 초식동물의 오감을 가진 사냥꾼이었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쫒아오는 날 더러운 고기조각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그는 강했다.
“데스페라도, 무법지대로 돌아가는 날 나를 죽여주지 않겠어? 아니면 날 데려가 줬으면 하는데”
계집애들에게 했다면 까무러쳤을 법 한 고백은 그다지 효과 좋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할까, 그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지도 비웃지도 않았다. 로봇처럼 무표정한 데스페라도는, 너무나도 작위적인 내 감정에 반응할 가치를 못 느꼈다는 눈빛을 보냈다.
“어느 쪽이든 재밌을 것 같군. 특히 전자가”
“데스페라도는 날 죽이고 싶어?”
“아니, 하지만 한번쯤은 나쁘지 않겠군”
“그거 기쁘네”
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데스페라도 내게 죽여 볼 가치를 느낌이 기뻤다. 물론 내가 기쁘다고 한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