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앵/와카사쿠] 호흡곤란
호흡곤란
written by Esoruen
퉁. 투박한 소리와 함께 농구공이 골대를 벗어나 바닥을 곤두박질쳤다. 사쿠라이는 덜덜 떨리는 손을 움켜쥐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어지러움이, 도무지 가시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두통에, 사쿠라이는 며칠 째 연습에 지장을 받고 있었다.
병원에 가니 원인은 정확이 모른다며, 아마 스트레스 때문일지 모르니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진통제를 줄 뿐이었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조금 있으면 윈터컵, 이번에야 말로 우승하겠다는 선배들의 기합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사쿠라이는 연습을 설렁설렁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법. 결과적으로 사쿠라이의 생활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었고 두통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사쿠라이의 호흡은 거칠었다. 혼자 남은 체육관에서 한참을 웅크려 앉아 가픈 숨을 몰아쉬던 사쿠라이는 제 팔에 닿는 차가운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 찰랑. 햇빛을 받은 물이 눈부시게 빛나 사쿠라이는 다시 현기증을 느낄 뻔 했다. 투명한 생수병에 담긴 물, 그것을 잡고 있는 손은 투박하고 컸다.
“아직 안가고 있었냐?”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근심으로 얼룩져있었다. 와카마츠씨. 작게 부르자 와카마츠는 대답 대신 생수병을 뜨거운 이마에 툭 가져가댈 뿐이었다. 두 손으로 생수를 받은 사쿠라이는 단숨에 내용물을 들이마시고 한숨을 쉬었다. 흐릿해진 시야가, 시원하게 개였다.
“고맙습니다, 저어”
“됐고, 적당히 연습하고 집에 가. 너 요즘 너무 무리한다고!”
“죄, 죄송합니다!”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와카마츠의 목소리에 사쿠라이는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고 말았다. 쯧, 가볍게 혀를 차고 제게 사과하는 사쿠라이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은 그는 가방을 고쳐 메고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갔다. 체육관 문을 반쯤 닫고 나가는 와카마츠를 가만히 보고만 있던 사쿠라이는, 완전히 머리가 개운해 지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걱정되어 일부러 와 준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자기 자신이 부정해버렸다. 그럴 리가. 우연히 두고 간 물건이라도 있어서 온 거겠지. 제 안에서 새로운 가설로 기대를 묵살시킨 사쿠라이는 농구공을 정리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바깥은 벌써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어이 료, 도시락 없냐?”
언제나처럼 점심시간이 되자 아오미네는 사쿠라이에게 와서 도시락을 요구했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라 사쿠라이는 정말로 무덤덤하게 가방 속에서 도시락을 하나 더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아오미네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도시락만 받아들곤 체육관을 나갔다. 늘 이런 식이었다. 아오미네는 연습은 나오지 않아도 도시락만큼은 챙기러 온다. 그런 태도에 모두가 혐오의 시선으로 그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함은, 그를 이길만한 실력자가 없어서 이기도 해서였다.
“저 자식, 또 연습은 안하고!”
“참아라, 와카마츠~”
“주장도 너무 오냐오냐 해 주지 마세요!! 사쿠라이 너도 일부러 하나 더 싸오지 마!!”
“죄송합니다, 그, 하지만 안 그러면 제걸 뺐기는 걸요!”
어색하게 웃으며 사쿠라이는 제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반찬은 모두 그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오늘의 도시락은 토끼 모양, 물론 이것도 그의 데코레이션이었다. 젓가락을 들고, 잘 먹겠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한 사쿠라이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비엔나소시지를 집어 들기 무섭게,
“아, 맞다 사쿠라이”
이마요시가 입을 열었다.
“니 요즘 이상하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거 같데, 에어 볼이 너무 많은 거 아이가?”
“예?”
갑작스럽게 지적을 받자 사쿠라이는 또 머리 뒤편이 저릿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또다. 또 두통이다. 초점이 흐릿해지는 시야를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저, 죄, 죄송…”
“아니, 사과를 받으려는게 아이라…”
“죄송, 죄송합니다…”
다그닥. 쥐고 있는 젓가락까지 떨릴 정도로 사쿠라이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두통이 심해지면 그는 손을 떨었다. 슈팅가드인 그였기에 손이 떨린다는 이 증상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에어 볼이 많아진 것도, 다 두통에서 오는 어지러움 보단 이 손 떨림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덜덜 떨리는 자신, 몽롱한 시야. 숨이, 또 숨이 가빠온다. 모든 것이 사쿠라이를 괴롭히던 그때 낮선 온기가 어깨로 다가왔다.
“어, 사쿠라이 이거 뭐냐”
와카마츠는 사쿠라이의 어깨를 꽉 잡고 도시락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화들짝 놀라 몸의 떨림이 멈춘 사쿠라이는 어지러운 와중에도 제 도시락과 와카마츠를 바라보았다.
“네, 네?”
“이거, 샐러드의 이거”
“아, 이건, 그, 아보카도에요”
“아보, 뭐…”
와카마츠는 샐러드 속 아보카도 조각을 빤히 바라보았다. 드셔보실래요? 사쿠라이가 드레싱을 뿌린 아보카도를 슬쩍 권유하며 젓가락으로 집어 건네자,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그도 슬쩍 눈치를 보더니 젓가락 끝의 과육을 물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킨 와카마츠는, 슬쩍 표정을 찌푸렸다.
“뭐지, 오묘한 맛인데, 이거 과일 맞나?”
“네, 그, 아마 단백질이 많아서 달진 않을거에요”
“사쿠라이, 내도 함 도”
호기심이 생긴 이마요시는 은근슬쩍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쿠라이는 작게 웃으며, 이마요시에게도 아보카도를 주었다. 이마요시는 꼭꼭 씹어 먹어보더니 ‘생각보다 맛있다’라는 감상평을 냈다. 그런가요. 적당히 대꾸한 사쿠라이가 샐러드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제 입맛에 딱 맞게 만든 샐러드답게, 제 입에는 더없이 맛있었다.
“아”
사쿠라이는 그제야 눈앞의 어지러움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호흡도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고, 약간의 두통 외엔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야단맞지 않게 되어서 진정된 것일까. 자신조차도 종잡을 수 없는 제 몸의 상태에 사쿠라이는 쓴 웃음을 지었다. 제멋대로다. 누굴 닮은 것인지 정말 제멋대로인 몸이었다.
“너희들 다 뭐 하는거야? 빨리 먹어, 점심시간 그렇게 안 길다”
“스사, 니도 와서 사쿠라이 샐러드 함 먹어봐라~”
“됐어, 사쿠라이 도시락 뺐어먹기는 아오미네로 족하잖아?”
선배들의 농담, 아직도 뭔가 찝찝한 입안의 맛에 입맛을 다시는 와카마츠. 선명한 시야의 평온한 풍경. 머릿속에 남아있던 자그마한 고통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아, 이래서 스트레스라는 것은 무섭구나. 완전히 긴장이 풀린 사쿠라이는 안심하고 다시 비엔나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방과 후 연습은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숨이 가빠 오거나, 약간의 두통을 느끼기는 했지만, 눈앞이 흐릿해 질 정도의 어지러움이나 호흡 곤란은 오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최선. 의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지만 공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연습하고 가자. 마음속으로 결심한 사쿠라이는 탈의하러 가는 부원들 사이에서 혼자 슛 연습을 계속했다. 떨림 없는 손으로 던진 공은,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서 골대에 내리꽂혔다. 빠르고 정확한 3점 슛. 사쿠라이 료 그만의 특기.
“사쿠라이”
다섯 개 째 공을 던진 그때, 누군가의 부름이 그를 멈춰 세웠다. 언제 옷을 갈아입은 것인지 갈 준비를 마친 와카마츠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 그, 와카마츠씨”
“오늘도 추가 연습이냐. 너. 이주일이나 그러면 몸 상한다고! 요즘 몸도 안 좋은 거 같더니!”
“죄, 죄송합니다! …네?”
이주일? 구체적인 날짜의 제시에 사쿠라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확실히 자신이 남아서 연습을 하게 된 것도 그 정도 쯤 되었을 것이다. 몸에 이상이 찾아 온 것은 일주일 전부터. 차근차근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던 사쿠라이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설마, 설마. 자신이 착각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사쿠라이는 거침없이 제 생각을 뱉어냈다.
“저, 와카마츠씨. 혹시, 그, 다 보고 있었어요?”
사쿠라이의 수줍은 질문에 와카마츠는 머리를 긁적였다. 쑥스러움의 표시일 것이다. 흠흠. 어울리지 않게 헛기침을 해 점잔뺀 와카마츠는 가방 속에서 이온음료를 꺼내 내밀었다. 샛노란 음료의 색이, 사쿠라이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마시고 해. 오늘은 해 지기 전에 가라. 매일 밤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걱정한다?”
사쿠라이의 손에 음료수를 떠맡기듯 쥐어 준 와카마츠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찰랑찰랑. 손목을 움직이자 페트병 안쪽의 금빛 음료가 한기를 내뿜으며 흔들렸다. 눈부셨다. 분명 어제의 그 생수처럼, 차갑고 눈부셨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 공 굴러가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체육관. 하지만 사쿠라이의 머릿속은 알 수 없는 소란으로 시끄러웠다. 어째서인지, 차가워서 손이 시릴 것 같은 음료수가 그에겐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상했다.
머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손에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지럼증도 전혀 없는데. 사쿠라이는 마치 숨이 멈춘 듯 숨쉬기가 괴로웠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차오르는 숨이,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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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토오 커플링 소설인지 모르겠네요. 흐으. 약앵 입니다. 약앵. 약앵 좋아요. 여러분..
사실 토오는 정말 커플링 올라운더지만, 와카마츠 관련 커플링을 이상하게 아끼게 되는 저입니다.
약앵, 추약, 약금 이건 뭐 죄다 와카마츠가 들어가있네요. 마성의 돗세이남 같으니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