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의식 속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의 감각은 언제나 약간의 두통과 답답함이 온몸을 짓눌렀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잠에서 깨어난 제너럴은 쥐죽은 듯 조용한 제 방에서 또 하나의 인기척을 찾아 주변을 더듬었다. 어제 자신을 찾아온 데스페라도는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자도 될 텐데 굳이 의자에 앉아 자는 것은 평소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제너럴이 푹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리라. 과묵한 그의 배려에 제너럴은 감동을 느끼긴 했지만, 지금은 감동보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데스페라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불렀을 뿐인데도 데스페라도는 금방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언제라도 제너럴이 부르면 일어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듯,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지도 않은 그는 자신을 부르는 애인에게 다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더 자지 왜 벌써 일어났어?”
“…별로 좋지 않은 꿈을 꿔서요”
“꿈?”
제너럴이 꾸는 꿈은 대체적으로 좋은 꿈이 없었다.
매일 전장에서 구르고 누군가가 죽는 일을 보는 사람이 꾸는 꿈이라면 뻔했다. 비린내 나고 검붉은 꿈. 지옥의 한편을 잘라놓은 것 같은 그 꿈을 데스페라도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피를 보는 삶을 사는 것은 데스페라도도 같았으니까. 다만 데스페라도는 그 모형지옥을 무의식의 세계에서 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꿈을 꾸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그는 그 모든 참상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직접 만들었다.
“또 내가 죽는 꿈이라도 꾼 거야?”
“그런 걸로 불안해 할 만큼 어린애는 아니에요”
‘다만’ 짧게 입을 열었다 다시 입을 닫은 제너럴은 상처투성이의 손을 꽉 잡았다. 식은땀으로 차갑게 변해버린 제너럴의 손끝에는 어느 군인들과 똑같은 약한 화상자국이 남아있었다.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이는 꿈을 꿨어요”
달빛처럼 차분한 그 고백은 간단한 가구뿐인 그의 방을 고해소로 만들어 버렸다. 그까짓 꿈이 뭐라고. 자신을 죽이는 꿈을 꾸었다는 말을 들었어도 데스페라도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꿈이라는 것은 비현실. 누군가는 꿈이 반대라고도 하고 무의식의 반영이라고도 했지만 그는 어느 쪽이던 관심이 없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 꿈의 해석이 어떻든 내용이 어떻던, 그는 지금 이 순간 제 연인이 불안에 떠는 것이 싫었다.
겨우 그깟 꿈이 뭐라고, 그는 저렇게나 죄스러워 한단 말인가.
데스페라도는 가끔 제너럴이 황도군의 장군이 아니라, 부모를 잃은 어린 짐승같이 보일 때가 있었다. 언제나 전장에선 믿음직한 상관이고, 적군의 앞에선 이길 수 없을 완벽한 군인인 그는 애인의 앞에서는 평소엔 가려진 여린 부분을 언뜻 보여주었다. 곪고 곪아, 악취가 나고 형체가 무너질 정도로 망가진 제너럴의 약한 부분은 책임감과 사명으로 꽁꽁 감싸져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데스페라도는 그저 그 틈으로 언뜻 보이는 상처만으로도, 제너럴이 얼마나 인내하며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냥 꿈이잖아”
“하지만, 그래도…”
“난 절대 네 손에 죽지 않아. 내가 널 죽이면 몰라도, 절대 네가 날 죽이게 두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괜찮아, 걱정하지 마”
진심을 담긴 위로에 제너럴은 그의 손을 놓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겨우 꿈일 뿐인데, 다 허상인데, 현실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제너럴은 그저 데스페라도에 관한 일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까.
“같이 잘까?”
대답도 듣지 않고 제너럴의 옆에 누워버린 데스페라도는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제너럴의 얼굴을 잡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담배냄새가 짙게 묻어있는 메마른 입술은 따뜻했다. 다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 그것에 겨우 안심한 제너럴은 데스페라도에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겨우 다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아직은 얕게 잠든 제너럴이 다시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의 허리를 안은 데스페라도는 규칙적으로 변한 숨소리에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악몽을 꾸지 않아야 할 텐데’
평소에 기도 같은 건 잘 하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 만큼은 달랐다. 아니, 기도라기 보단 소원과 같은 작은 바램이었다. 자신을 이토록 사랑하는 제 연인이, 평소에는 감정 표현도 잘 하지 못하는 위치에 놓인 품 안의 그가 그저 편히 잘 수 있기를. 그렇게, 단지 그것만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