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JoJo

[승화] 절화(折花)

Еsoruen 2015. 2. 12. 19:11

 

※ 루엔님 대저택 12강 띄워서 리퀘받았습니다. 12강 만세. 신청해준 라쿤언니 고마워용♥

※ 카쿄인이 꽃꽂이 명인이라는 설정의 AU

 

 

 

 

折花

written by Esoruen

to. 라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죠타로는 오늘도 가지런히 놓여있는 남성용 게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자신은 집에 돌아올 때 마다 쓸데없는 것을 걱정하고 마는 것일까. 게다와 여성용 낮은 구두, 그 가운데 빈자리에 제 신발을 벗고 들어온 죠타로는 습관처럼 안방을 기웃거렸다.

전업주부인 어머니는 청소라도 하는지 열심히 물건들을 늘어놓고 서랍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이 들어오는 소리에도 아무도 반겨주는 말이 없다 했더니 집안일 중이었던 건가. 기척을 낼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먼저 기척을 알아챈 홀리는 돌아보며 상냥하게 웃었다.

 

“죠타로! 어서 오렴!”

“카쿄인은?”

 

카쿄인. 현관에 늘 놓여있는 그 게다 주인의 이름. 죠타로는 언제나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 마다 입이 바싹 마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쿠죠 가의 사람도 아니지만, 언제나 이 집에 머물러있는 그는 몇 년 전 죠타로가 데려온 자신 또래의 꽃꽂이 장인이었다.

 

“아마 거실에서 꽃꽂이 중일거야, 워낙 조용한 애라서 가끔 있는지도 모르겠다니까?”

 

홀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먼지가 묻은 책을 털었지만, 죠타로는 그 농담에 무심코 동의해 버릴 뻔 했다. 어머니의 말대로 카쿄인은 정말로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말투도 행동도 그가 가꾸는 꽃 마냥, 그저 어여쁘고 정적이었다.

카쿄인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어머니인 홀리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러 갔을 때였다. ‘옆집에 꽃꽂이 장식품이 있던데 정말 예쁘더라고, 일본은 저런 장식품이 예쁜 것 같아’ 홀리는 외국인 탓에 일본 문물이라면 사소한 것에도 크게 감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죠타로는 어머니의 그 말을 언제나처럼 늘 하는 말인 줄 알고 그냥 흘려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그녀의 감탄은 약 일주일간 지겹도록 이어졌다. ‘나도 하나 가지고 싶다, 어디 가면 살 수 있지?’ ‘생각보다 비싼 것 같던데’ ‘직접 배우는 게 더 비싸겠지?’ 아마 홀리는 그 모든 말을 정말 혼잣말로 생각하고 한 것이겠지만, 반복되는 혼잣말에 죠타로는 그 말들을 ‘죠타로, 하나 사와주지 않을래?’ 라고 돌려 말하고 있다고 느껴버렸다.

‘하나 사주면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겠지’ 하도 시끄러운 어머니의 혼잣말 때문에 그는 결국 생일 선물로 그렇게 원하던 꽃 장식품을 사주기로 해버렸다. 그것 까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꽃이나 집안 장식품 같은 건 전혀 관심도 없는 죠타로는 처음엔 어떤 것을 사주어야 좋은지 조금도 감을 잡지 못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죠타로는 유명 꽃꽂이 장인이 만든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명한 유파에 속한 장인의 것을 사기로 하고, 지갑만 달랑 들고 장인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것이 카쿄인 노리아키.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꽃꽂이 장인이 된 천재이자 지금 죠타로의 연인이었다.

 

“어머니에게 선물한 것이라고요?”

 

효자네요. 자세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카쿄인은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제가 만든 꽃꽂이 장식품을 사러 온 죠타로에게 그런 말을 했다. 효자는 무슨. 그의 말을 반박하려단 죠타로는 너무나도 환하게 웃는 카쿄인의 얼굴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저런 분위기의 사람에겐 함부로 말을 못 던지겠단 말이지. 결국 주제를 꽃의 종류와 가격으로 돌린 죠타로는 며칠 뒤 물건을 찾으러 오겠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남자였나. 여자인 줄 알았는데’

 

처음엔 꽃꽂이의 명인이라기에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어찌 보면 편견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죠타로는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 섞여있던 카쿄인이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분명 골격도 목소리도 남자다운데, 그 손짓과 눈빛은 그 어떤 여자보다도 섬세하고 우아하다. 이름 탓일까 아니면 늘 꽃을 만져서일까. 정말로 카쿄인 노리아키는 한 그루 꽃나무 같은 느낌의 사내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는 남자. 과연 여성 취향에 맞는, 제 어머니가 놀라서 두 번 다시 옆집을 부러워하지 않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렇게 걱정한 죠타로였는데.

 

“여기, 최대한 요구에 맞게 작업해 봤어요”

 

며칠 뒤 다시 카쿄인을 찾아간 죠타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아. 낮고 짧은, 순수한 놀람의 감탄사. 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자신이 봐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쿄인의 꽃꽂이는 아름다웠다. 그저 예쁘기만 한 꽃들이 일정한 질서 안에서 우아함을 갖추고, 우아함 속에서 남성적인 미와 여성적인 섬세함이 공존하는. 오직 카쿄인 그 만이 만들 수 있을 법한 아름다움에 죠타로는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 수 있었다.

 

“어머니가 기뻐하면 좋겠네요”

“그럴 거야. 신세를 졌군”

“신세라니요, 전 받은 만큼 일한 것뿐인 걸요?”

 

받은 만큼. 아아. 그랬지.

죠타로는 그 꽃 장식을 어머니에게 선물한 후, 엄청난 감사를 받았다. ‘정말 예쁘구나!’ ‘어쩜!’ 연신 감탄사를 남발하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자 죠타로는 괜히 코 밑이 간지러워졌다.

그리고 그 이후 죠타로는 관심도 없던 꽃꽂이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작품들을 감상하기 시작하더니, 카쿄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또 부탁할 것이 있어서 말이야’ 죠타로는 그렇게 변명하곤 했지만 사실은 그저 카쿄인의 작품을 또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제 용돈은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일 명인의 작품을 사는 것은 무리가 가는 법. 견학과 의뢰를 빌미로 몇 번이고 카쿄인을 찾아가던 죠타로는 결국 그에게 엄청난 말을 하고 말았다.

 

“우리 집에서 살지 않겠나? 당신의 작품을 나 혼자 보고 싶어졌어”

 

쿠죠 가는 가난한 편이 아니었다. 아니, 단도직입 적으로 말한다면 잘 사는 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죠타로는 그런 객기도 부릴 수 있었다. 당신을, 당신의 재능을 사고 싶어. 그런 낯간지러운 말에 카쿄인은 얼굴을 붉히더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좋아요, 죠타로”

 

며칠을 고민한 카쿄인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낮선 사람이 집에서 살게 된 것을 염려했지만, 그가 제가 선물 받은 훌륭한 꽃꽂이 장식의 작가임을 알았을 때는 빈방을 정리하고 오겠다며 소매를 걷었다. 어차피 아버지는 자주 오지 않으니 괜찮아. 낮선 장소에 불편하지 않게 그렇게 카쿄인을 안심시켜 데려온 죠타로는, 이제 카쿄인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카쿄인은 거실에 있었다. 볕이 잘 드는 거실 한 구석. 짙은 녹색의 유카타를 입고 꽃가지를 자르고 있는 등은 고요했다. 가끔 그 견갑골이 위 아래로 작게 움직이고,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가위 소리에 함께 잘려나갈 뿐.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오후의 거실은 말을 할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해 보였다.

 

“카쿄인”

 

죠타로는 그 정적이 싫어 입을 열었다. 돌아보는 얼굴은 꽃과 같았지만, 분명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생물이었다.

 

“죠타로, 어서 와요”

“또 뭔가 만드는 건가?”

“장식해 둔 게 또 시들어서요. 만드는데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

 

작업하던 것을 구석으로 밀어둔 카쿄인은 옷을 털고 일어났다. 툭툭. 잘라낸 가지에서 떨어진 잎들과 시든 꽃잎들은 먼지처럼 천천히 낙하했다. 어째서일까. 죠타로는 그것이 카쿄인의 옷에 묻어있던 것이 아니라, 카쿄인 몸 자체에서 떨어지는 부속물처럼 보였다.

 

“차를 내올게요”

“됐어. 하던 일이나 마저 해. 방해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차라면 내가 내 오지. 하던 거나 해”

 

별로 차가 마시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차도 꽃도, 다 카쿄인과 시간을 보내려는 수단일 뿐. 사실 그런 수단 따위 필요하지 않음을 죠타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자꾸 가슴이 간질간질해서, 그는 언제나 귀찮게 핑계거리를 만들곤 했다. 그냥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옆에 있는 일은, 죠타로 그에겐 너무 낯간지러운 일이었으니까.

미적지근한 말차를 두잔 가져온 죠타로는 거리를 두고 카쿄인의 옆에 앉았다.

 

“이건 수선화군”

“네, 예쁘죠?”

“그래”

 

대답하는 죠타로의 시선은 수선화가 아니라 카쿄인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어차피 꽃은 언젠가 시든다. 꽃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영생을 살 수는 없는 법. 카쿄인은 꽃이란 시들기에 싱싱하게 피었을 때 아름다운 것이라곤 했지만 죠타로는 그것을 잘 이해 할 수 없었다. 조화와 달리 기한이 있기에 아름다운 생화란, 그저 인간과 비슷한 것이라 그런 것이겠지. 그가 이해 할 수 있는 꽃의 아름다움이란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건 오래 갔으면 좋겠군”

“걱정 마세요. 늘 제가 물을 갈아주고 가지를 잘라줄 거니까”

 

꽃꽂이 꽃은 저 정도 관심만 주어도 그냥 방치했을 때 보다 훨씬 오래 피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어떨까. 죠타로는 제 욕심으로 데려온 카쿄인을 떠올릴 때 마다 시들어가는 꽃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카쿄인은 제 집에 온 것을 후회하진 않을까. 자신이 멀쩡한 야생화를 꺾어와 집에 두고 말려 죽이는 것과 똑같은 건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이 머릿속을 잠식해 갈 때면, 그는 타는 갈증에 그저 카쿄인이 보고 싶어졌다.

작업을 중단한 채 차를 마시는 마른 몸을 그저 바라보고 있던 죠타로는 결국 두 손을 뻗어 카쿄인을 제 품에 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