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두 남자와 한 마리의 이야기
두 남자와 한 마리의 이야기
written by Esoruen
내 이름은 점박이다.
사실 내 진짜 이름은 저런 촌스러운 이름이 아니지만, 나를 주워준 남자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는 동거인 남자는 나를 ‘이 녀석’ 이라고 불렀고, 가끔 놀러오는 우스운 머리모양을 한 남자는 날 ‘야옹이’라고 불렀다.
인간들은 왜 그렇게 상대를 부르는 명칭을 제 멋대로 짓는 걸까.
나로선 알 길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이 집의 인간들은 나를 대부분 ‘점박이’ 라고 불렀으니 난 내 스스로의 이름을 점박이로 정했다.
“이봐”
이런. 기분 좋게 낮잠 자고 있는데 뭐야.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날 주워온 남자가 사준 쿠션 위에서 드러누워 잠을 청하던 나는 커다란 손이 쓰다듬는 감각에 눈을 떴다. 무식하게 큰 손, 무식하게 큰 덩치. 전봇대처럼 과묵한 이 남자의 이름은 ‘쿠죠 죠타로’ 날 주워온 남자의 애인이자, 심심하면 나를 괴롭히는 심술궂은 남자다.
“카쿄인은?”
카쿄인. 그건 날 주워온 남자의 이름이었다. 정확하게는 카쿄인 노리아키. 하지만 죠타로는 그를 언제나 카쿄인이라고 불렀으니 나도 그렇게 부른다.
카쿄인이라면 분명 장을 보러 간다고 내게 말했지.
“야옹”
“…시장이라도 간 건가”
오호. 이제는 제법 잘 알아듣잖아. 나는 정답이라는 뜻으로 꼬리를 가볍게 흔들어 주고 쿠션에 고개를 파묻었다. 인간들은 불쌍하게도 우리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데, 카쿄인은 내가 뭐라고 하는지 대충 알아듣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그럴까, 나와 카쿄인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면 죠타로는 늘 나를 노려보거나 자신에게 신경을 쓰도록 유도했고 나는 그 질투에 못이기는 척 카쿄인의 품을 빠져나가곤 했다.
질투가 많은 남자는 미움 받는 법이거늘.
그래도 이젠 죠타로도 제법 내 말을 알아들으니, 저렇게 쓸모없는 질투를 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 물론 ‘줄었다’와 ‘없다’는 천지차이의 단어니, 나는 아직도 가끔 눈치를 봐야 했지만.
“쯧”
오늘 할 일은 다 끝낸 것인지 죠타로는 웬일로 내 곁을 바로 떠나지 않고 옆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내 곁을 지키며 내게 밥을 주는 건 카쿄인의 몫이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걸까. 호기심에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자, 또 다시 커다란 손이 내 허리를 쓰다듬었다.
“팔자 좋은 녀석이군”
“냐아”
당연하지. 묘생(猫生)이 얼마나 좋은데.
그렇게 대답한 나는 몸을 비틀어 피로감을 떨쳐냈다. 만약 지금, 내 옆에 있는 게 카쿄인이었다면 여기서 놀아달라고 조금 아우성을 쳤겠지만… 이 무뚝뚝한 남자에게 ‘놀이’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얼른 와야 할 텐데…”
꼬르륵. 이 요란한 소리는 내 배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하, 알았다.
어쩐지 카쿄인을 찾더니, 배가 고픈 것이었나.
죠타로는 특이한 법칙을 가진 남자였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는 반드시 카쿄인과 함께 먹는다는 특이한 법칙. 아마도 인간은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에 상당한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으니 저런 룰을 만들어서라도 애인이랑 있는 시간을 늘리려는 거겠지. 무뚝뚝한 얼굴을 해선, 정말이지 지독한 순애보다.
그건 그렇고, 사실 나도 배가 고프니 슬슬 카쿄인이 돌아와 줬으면 싶은데…
“나 원 참”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죠타로는 갑자기 드러눕더니 나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네놈 장난감이 아니다만. 건방진 녀석. 손을 물어주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날 집어던질 것 같으니 참아야겠지.
…그런데 이 녀석, 쓰다듬는 게 꽤 기분이 좋잖아?
“그르릉…”
“이런, 기분 좋냐”
카쿄인의 흉내를 내듯 내 목과 턱을 간질이는 죠타로의 손에선 강한 잉크냄새가 났다. 으음, 인정하긴 싫지만. 기분 좋다. 카쿄인을 따라가기엔 멀었지만, 역시 애인들끼린 닮는 건가.
“…빨리 좀 와라 카쿄인”
“고르르르릉…”
“…배고프군…”
“고르르르릉…”
으음. 온다… 잠이 온다…
조금 있으면 산 너머로 넘어갈 것 같은 오후의 햇살, 커다란 손, 약간의 허기. 거리에선 느낄 수 없는, 주워진 고양이들만의 특권. 나는 처음엔 이 특권이 좋아 여기 남아있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죠타로와 카쿄인에 정이 들어서 못 나가게 되어버렸다.
다른 종족의 연애를 보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고, 둘 다 내게 잘 해주는 편이니까. 정이 들지 않을 리가.
“…둘 다 거기서 뭐해?”
아, 드디어 왔다. 조는 탓에 듣지 못했는데 어느새 우리의 뒤로 다가온 카쿄인은 장바구니를 들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왜 웃음을 참는 거지? 아니, 애초에 뭐가 웃기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죠타로는 이해할 수 있었나 보다.
황급히 내게서 손을 떼고 벌떡 일어선 죠타로는 근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늦었지?”
“아, 미안, 그런데 죠타로. 너 점박이랑 그렇게 사이가 좋았어? 크, 크큭…”
“…웃지 마”
“미, 미안, 하지만…”
아. 결국 터졌군. 카쿄인은 아예 장바구니까지 내려놓고 박장대소를 했다. 음, 한 가지 문제는 터진 건 카쿄인의 웃음뿐만이 아니었다. 조용히 주먹을 쥐고 있던 죠타로는 바닥에 뒹굴 기세로 웃는 카쿄인을 조용히 내려 보고 있더니, 갑자기 그를 번쩍 들었다.
헉, 설마. 죠타로. 카쿄인을 집어 던지는 건 아니겠지?
“죠, 죠타로?!”
“뭘 웃는 거야? 웃음이 안 나오도록 해주지”
“자, 잠깐 내가 잘못했어!”
“이미 늦었다”
마치 짐짝처럼 카쿄인을 들쳐 맨 죠타로는 그대로 그들의 침실로 사라졌다. 아, 다행이 던지는 건 아니군. 대신 더 심한 짓을 하려는 거겠지만. 쯧. 짝도 없는 난 서러워서 살겠나. 배는 고프지만 저렇게 된 이상 카쿄인은 2시간 동안은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니까, 잠이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