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메로기아] 네가 죽은 날, 메로네
네가 죽은 날, 메로네
written by Esoruen
기앗쵸의 시체가 아지트로 보내졌을 때 메로네의 표정은 어땠던가. 나는 그걸 떠올릴 때면 언제나 가벼운 두통에 시달리곤 했다. 처참하게 목이 꿰뚫려, 기억해 내기도 싫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돌아온 기앗쵸의 시체는 그가 스탠드로 다루던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제일 먼저 시체를 받아 본 리조토는 리더로서 그 죽음에 예를 표했다. 그리고 동료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고, 우리 팀 전원에게 기앗쵸의 시체를 보여주었다.
누구 하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일을 하는 이상, 죽어서 돌아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언젠가 자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사실 눈물보다는 식은땀이나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당연할지 몰랐다. 하지만 내가 정말 놀란 것은, 기앗쵸의 죽음에 가장 슬퍼할 것 같은 메로네조차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메로네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기앗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디백(Body bag)에서 막 꺼내, 피비린내와 방부제 냄새가 진동하는 시체를 보고 메로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로선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을 통해 유추하자면 분명 ‘비참함’부터 먼저 느꼈을 것이리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보통 그런 감정이 가장 사무치는 법이었으니까.
“장례는 어떻게 할 거야, 리더?”
모두가 침묵하고 있던 중 입을 연 것은 메로네였다. 모두 아직 충분히 슬퍼하지도 않았는데, 기앗쵸를 죽인 누군가에 대한 분노도 다 가시질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상했을까. 처음에 지나치게 빨리 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메로네에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성을 유지하려는 메로네의 발악임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내가 느낀 반감은 곧 동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가늘게 떨리는 손, 비정상 적으로 빨리 깜빡이는 눈, 그리고 결정적으로 메로네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되도록 빨리 진행해야겠지. 오는 동안 시간이 걸려서 부패가 진행되려고 하고 있으니까. 몰골로 관에 넣는 건 사양하고 싶군”
“동감이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찾아내는 건 장례 후라도 늦지 않아”
프로슈토는 메로네가 서두르는 이유를 아는지 리조토의 말에 동의했다. 여기서 나까지 무슨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판단한 나는 옆에 입 다물고 있는 포르마지오에게 물어봤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뭐가? 기앗쵸의 일이라면… 좀 화나는군. 내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할 생각은 없지만, 누군지 알아내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걸 말하는 게 아냐”
나는 여전히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메로네를 가리켰다. 평소에 표정이 풍부했던 탓에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저렇게 얼굴 근육이 맛이 가버리는 걸까. 울지도 웃지도 화내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메로네의 표정은 누군가가 무생물로 만든 피조물처럼 딱딱하고 어색했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포르마지오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좀, 의외네”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오열할 줄 알았는데”
오열이라. 메로네가 오열하는 모습을 상상하던 난 고개를 저었다. 메로네는 평소에도 우는 일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웃고, 떠들고 소란을 피우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봐온 나였지만 정작 메로네가 우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메로네가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일면인 걸까. 그런 가정도 해봤지만 메로네가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역시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는 메로네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관을 구해오기 전 까진 도로 집어넣어 방에 두지”
리조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확인을 위해 바디백 밖으로 꺼내놓은 시체를 넣는 행위를 말리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주인의 방으로 바디백을 옮기는 것도, 그 방의 문을 굳게 닫는 것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메로네는 그저 아까전과 똑같은 표정, 똑같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숨만 쉬고 있었다. 모두가 메로네를 보고 있었지만, 메로네는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 메로네. 괜찮아?”
“응? 어, 아아”
펫시가 말을 걸자 메로네는 그저 웃었다. 시선을 내리깔고, 힘없는 웃음을 짓는 메로네는 고개와 손을 휘휘 저으며 비틀비틀 자기 방으로 나아갔다.
“나는 괜찮아, 먼저 들어가서 쉴게”
방문을 닫는 소리조차 힘이 없었던 것은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기엔 충분했다. 지금 메로네는 충분히 충격을 받았으니,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말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갈아버려야지, 갈아버려야 해’ 화가 나서 중얼거리던 프로슈토는 담배를 피우러 나가버렸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저 어쩔 줄 모르고 거실에 서서,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분명, 소르베의 시체가 전부 도착한 날도 이런 느낌의 분위기였지. 생각하기 싫은 소르베의 최후는 아무리 내가 동료라고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차라리 질식으로 죽은 젤라토 쪽이 행복해 보일 정도로, 잔인하고 인권 없이 죽은 소르베를 본 우리는 공포와 혐오, 그리고 분노를 느꼈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쳇”
잠자리가 뒤숭숭해 지겠어. 옆에 있는 내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간 포르마지오는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기앗쵸를 두고 온 리조토와 펫시, 그리고 나 뿐.
“방의 온도를 낮추는 편이 좋겠군. 방부 처리도 완전히 되지 않아서 부패될 가능성이 높으니”
“메로네, 정말 괜찮을까?”
“펫시”
자꾸 걱정하는 펫시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리조토는 더 이상 메로네를 신경써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걸 알았기에 펫시가 더 말하려는 것을 막았다. 차라리 오열했더라면, 눈물이라도 보였다면, 그렇다면 모두가 마음 편하게 걱정할 수 있었을 텐데.
메로네의 방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러다 자살이라도 하면, 그렇게 말하려 했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리조토의 노력을, 모두의 암묵의 약속을 깰 수는 없었으니까.
“펫시 너도 들어가서 쉬어. 너랑 프로슈토는 내일 나가야 하잖아?”
“…응”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펫시는 내게 대답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리더는 조용해진 아지트를 보고 끝없이 한숨만 쉬더니, 내게 물었다.
“지금, 메로네가 죽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지?”
아아. 나는 명치라도 얻어맞은 듯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을 수 없었다. 역시 리더는 다르다는 걸까. 아니면 지금 내 표정이 너무 노골적으로 걱정을 드러내고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던 난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응, 조금”
“저 녀석은 그럴 녀석이 아냐.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잠이나 자. 벌써 자정이다”
“리더도 잘 자”
‘오늘 밤은 아무도 잠들지 못하겠지만’
내 진심은 목구멍 어딘가에서 녹아 사라져 버렸다.
방으로 돌아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잠이 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깨어있기엔 너무나도 지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정도뿐이었다.
3시간도 안 되는 옅은 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허우적거렸다. 온 몸에 가득한 식은 땀. 기억나지 않는 꿈. 누군가가 죽는 꿈이라도 꾼 걸까, 아니면 내가 죽는 꿈을 꾼 걸까. 별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결국은 나는 기억해 낼 수 없겠지.
‘정신 좀 차려야지’
어차피 당분간 나는 한가하다.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으니 밤에 억지로 잘 이유는 없겠지. 비틀비틀 일어나 부엌에 물을 마시러 간 나는, 열려있는 기앗쵸의 방문에 얼어붙었다.
분명 리조토가 방문을 닫았었는데, 어째서 열려있는 걸까.
혹시나 싶어 숨을 죽이고 방으로 다가가도 들리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누가 왔다간 건가. 그렇다면 참으로 부주의한 행동이다. 혹시 우리 팀원 중 누군가가 아닌 사람이 다녀간 거라면 이건 큰 사건이니, 나는 만약에 상황에서는 전투를 할 수 있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열린 문틈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방 안에는 우두커니 서있는 메로네가 있었다.
바디백이 놓인 침대 옆, 숨은 쉬고 있는지 걱정 될 정도로 가만히 서있는 메로네는 아까 전과 별다를 것 없이 아무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언제부터 여기 들어와 있던 걸까. 바디백에는 손도 안 덴 것 같은데 어째서 바라보고만 있는 걸까. 물러서지도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던 나에게 말을 건 것은 메로네였다.
“일루조?”
이쪽을 보지도 않고 나를 부르는 메로네의 얼굴이, 그때 얼핏 웃는 것처럼 보였다. 내 착각이겠지. 눈을 거칠게 비비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메로네의 옆에 섰다.
기앗쵸.
주인의 이름만 적힌 보디백은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저 섬뜩했다.
저 안에는 기앗쵸가 잠들어 있다. 목을 꿰뚫린, 피를 잔뜩 흘려 창백한 불쌍한 동료가.
“어떻게 알았어?”
“그냥 감이야. 나는 감이 좋으니까”
왜 이러고 있는 거야?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안 될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왜 메로네가 여기 있는가가 아니라, 밤늦게 까지 찾아와 지켜볼 정도로 이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견디기 힘들어 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지. 내가 와서 울음을 멈춘 건 절대 아니었다. 메로네의 얼굴에서 울었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으니까.
“내가 왜 울지 않느냐고 묻지 않네?”
“…어?”
“아까 펫시가 그러더라고, 울고 싶으면 우는 게 좋다고”
펫시 그 녀석.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말 하는걸 보면 은근히 고집이 센데 임무에서는 왜 그렇게 수동적인거야. 만약 내가 프로슈토였다면 지금 당장 펫시를 걷어차러 갔겠지만, 나는 그 녀석의 형님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내 앞에 놓여 진 폭탄부터 처리해야 했다.
“별로, 네가 울던 울지 않던 네 마음이잖아?”
“하하, 그렇지”
“하지만 웃고 싶지도 않은데 웃는 건 별로 보기 좋진 않아”
힘없는 웃음이 거슬려 그렇게 말하자, 메로네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슬픔에 젖은 눈동자, 놀란 표정, 오늘 처음으로 표정다운 표정을 짓고 있는 메로네는 당황해서 말을 이었다.
“아냐, 아냐 일루조.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방금 웃은 건 진심이야”
“아, 그래?”
“그게, 하하, 웃기거든 지금, 조금”
“뭐가?”
혹시 너무 강한 충격에 머리가 맛이 간 게 아닐까. 나로선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메로네는 무엇이 우스운 걸까. 허무하게 죽어버린 기앗쵸를 보고 보잘 것 없는 목숨이 우스워 진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우리들이 우스운 걸까.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추측을 내놓던 차에, 메로네는 내 말에 대답하며 도로 시선을 기앗쵸에게 돌렸다.
“슬프다고 꼭 울라는 법은 없는데, 다들 짜고 친 듯 그렇게 말하잖아?”
“…뭐?”
“아니,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난 별로 울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뿐이야”
“운다는 건 필요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기앗쵸가 죽은 게 슬프긴 한 거지?”
“물론이야”
평소와 같은 목소리, 나긋나긋한 톤으로 대답하는 메로네의 눈이 웃었다.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기앗쵸를 향해서.
“그런데 눈물은 안 나와”
방금 저 말은 내게 대답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았다. 분명 문맥상으론 내 말에 대답한 것이겠지만, 메로네의 시선과 손끝, 그 모든 게 기앗쵸를 향해있는데 어떻게 그게 날 위한 대답이라고 하겠는가.
무어라 더 할 말이 없던 나는 결국 그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추우니까 너무 오래 있지 마”
부패를 막기 위해 온도를 낮춰놓은 방에 오래 있다간 그게 누구더라도 감기에 걸린 것이었다. 그게 걱정되어 말한 것인데, 메로네는 내 말을 들은 것인지 못들은 것인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 아까 전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 거구만. 나까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아 물을 마셔 봐도, 목구멍 안쪽과 머리는 끊임없이 욱신거렸다.
만약 나도 포르마지오가 죽는다면, 저렇게 될까.
아닐 것이다. 아마 나는 울다 지쳐 쓰러지거나, 포르마지오를 죽인 상대에게 복수하겠다며 길길이 날뛰겠지. 나는 그럴 것이다, 아니 우리 팀 중 누구라도 제일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면 그럴 것이다.
그런데 메로네는 어째서.
‘고장 난 것 같네’
그렇게 생각해야 겨우 그의 행동이 납득이 갔다. 머리도, 마음도, 표정도, 죄다 그냥 망가져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 메로네의 스탠드, 베이비 페이스의 베이비처럼 아무것도 몰라 ‘학습’ 해야 하는 상태. 지금의 메로네는, 그런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다면 메로네는 언제부터 망가져 있던 걸까.
메로네의 우는 모습을 본 나는 그제야 처음부터 메로네는 우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올려보면 초반에 만난 메로네는 지금보다 감정이 풍부하지 않았다. 메로네가 유쾌하고 시끄러운 성격이 된 건 암살팀에 들어오고 난 후, 더 정확하게는 기앗쵸와 만난 후였다.
‘기앗쵸, 아무래도 더 이상 메로네는 학습되지 못할 것 같아’
기앗쵸는 제 죽음에 울지 못하는 메로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울어주지 않는 것에 서운해 할까, 아니면 울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 할까.
그것도 아니면,
우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 그 답은 죽은 기앗쵸만이 알고 있을 테니, 우리들 중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메로네조차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