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과 거리가 멀던 시절, 나에게 있어 도검이란 옛 유물이나 위험한 무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사니와가 된 것은, 기묘한 우연일까 나쁜 운명일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운명은 믿지 않으니, 우연이라고 해도 좋겠지.
그렇다면 이것은, 아주 좋은 우연일 것이다.
“키요미츠”
혼마루에 가만히 앉아 밖을 보고 있는 뒷모습을 향해 그 이름을 부르면, 당신은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단정하게 묶은 짙은 색 머리, 사과같이 붉은 눈, 언제나 몸치장을 중요시 여기는 그는 제 모습이 흐트러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런지 혼마루에서 쉴 때도, 출전 전에도, 내번을 한 후에도 나는 키요미츠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걸 본적이 없다.
“주인. 왜 불렀어?”
“그냥 불러봤어.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나 해서”
“아아, 나도 딱히 뭘 보고 있던 건 아냐. 멍하니 앉아있었던 것뿐이지”
그렇구나. 속삭이듯 대답하고 그 옆에 앉자 키요미츠는 나를 배려하는 듯 자리를 조금 옆으로 옮겨주었다. 이 넓은 혼마루에, 두 사람이 앉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오히려 이 넘쳐나는 공간을 두고 굳이 나를 위해 옆으로 조금 비켜줄 필요는 없을 터. 하지만 난 그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 딱 붙어 앉아, 곱게 칠한 손 위에 손을 겹친다. 그렇게 하면 꼭 키요미츠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전에 다친 상처는 어때?”
“제대로 수리했으니 괜찮아. 너무 걱정하는 거 아냐?”
“키요미츠니까”
“푸핫, 그렇게 말하면 미워할 수 없잖아”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이쪽인데.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말을 꾹 삼킨 나는 웃어 보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 출진을 나간 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키요미츠를 다치게 했다. 그는 죽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는 분명 들었다. 혼마루에서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를.
“이렇게 너덜너덜한 모습으론, 사랑받지 못하는데”
내가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들으라고 그렇게 넌지시 이야기 한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무거운 돌을 안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 숨이 막혀오고, 움직일 수 없는.
“수리하러 가자, 키요미츠”
아프다고 인상을 쓰는 그의 손을 최대한 가볍게 잡고 이끌자, 키요미츠는 흐트러진 머리를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한쪽 손만을 휘적거렸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은데. 잔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대신 머리를 올려주자,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피를 그도 본 걸까. 깜짝 놀란 얼굴로 내게서 떨어진 키요미츠는 내게 잡혔던 손을 슥 빼버렸다.
“미안, 주인. 손 씻고 와”
“괜찮아. 나중에 씻으면 돼”
“하지만…”
“됐으니까. 수리하자, 수리”
급한 대로 손수건으로 피를 닦고 키요미츠를 수리하러 가자, 키요미츠는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 사랑받고 있구나. 아직…”
대답은 하지 않았다. 아마 대답해 주었다면 키요미츠는 더 미안해하거나 대답은 안 해도 청승맞은 표정을 지었을 테니까. 난 그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때가 좋았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루기 힘들지만 성능은 좋다’든가 ‘몸단장 해줄 사람 대 모집 중이야’ 같은 말을 할 때처럼. 사랑스럽고 자신만만한, 그런 표정 말이다.
…물론 울상인 키요미츠도 싫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웃는 게 예쁘잖아.
“오늘은 출진 안 해?”
“쉴 거야. 원정 온 애들이 오면 생각해 봐야지”
“엇, 원정 보냈어? 언제? 부지런하네, 주인”
“혹시 원정에 끼워주지 않아 섭섭한 거야?”
“그건 아냐. 난 주인이랑 있고 싶으니까… 뭐, 검의 본분은 싸우는 거니 조금 섭섭하긴 해도”
그래? 작게 되물으며 어깨에 기대자 가볍게 움츠리는 떨림이 느껴졌다.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 그도 나도, 서로를 편하게 여기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주종관계란 원래 그런 것이지’ 야겐은 이런 나와 키요미츠를 보고 그렇게 평했지만, 사실 우리는 그런것과는 조금 달랐다.
“난 키요미츠랑 있고 싶어서 안 보낸 건데”
“…저, 정말?”
“그래. 내번도 빼주고”
“…헤헷”
키요미츠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수줍은 듯 웃으며 제 코를 긁적인 그는 제 어깨에 있는 내 귀에 중얼거렸다.
“언제나 말하지만, 난 다루기 힘든 아이니까”
잘 써줘. 주인.
네가 가장 자주하는 말. 네가 가장 바라는 것. 그것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사니와로서 살아간다. 아마도 당신은 모르겠지. 키요미츠의 부탁에 나는 오늘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