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조차 거슬리는 침묵, 오래 된 종이냄새가 진동하는 도서관은 그 웅장한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여기 있는 게 맞을까’ 애써 기척을 죽이고 들어온 디스트로이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프라임”
넓은 공간에 울리는 목소리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품에서 메모를 꺼낸 그는 천천히 도서관 안쪽으로 들어가며 프라임을 찾아보았다.
‘잠시 찾아볼 게 있어서 도서관에 갑니다’
아마 누구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보라고 남겨놓은 것 같은 그 메모는 꽤 급하게 나가는 중 적은 건지 필체가 엉망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어지간하면 나가지도 않는 녀석이 시내 한복판 도서관까지 납신 걸까. 그것도 의아했지만, 아무도 없는 도서관도 이상했다.
설마 전세 낸 건 아니겠지.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역사 관련 서적이 꽂힌 책장을 돌자,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등이 나타났다.
“프라임?”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건 익숙했다. 원래 프라임은 집중하면 남의 말 같은 게 안 들리는 녀석이었으니까.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고 나서야 돌아본 프라임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보곤 깜짝 놀랐다.
“디스트로이어?”
“웬일로 밖으로 나온 거야?”
“찾을 게 있어서. 그렇게 써놓고 나왔잖아?”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디스트로이어가 물은 이유는 ‘몰라서’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일은 제 연구실 안에서 해결한다. 바깥에 나가야 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에게 부탁하고, 부탁할 타인이 없다면 타인을 불러서라도 해결했다. 그렇게 자주 불려나왔던 디스트로이어였기에, 지금의 프라임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아니, 그건 알지만…”
“마침 잘됐어. 책을 빌려 갈 건데 네가 좀 들어”
“어째서 내가?! 아, 물론 들어줄 거지만 말이야”
“무겁잖아”
잘도 그런 소리를. 한숨을 내쉬는 입과 달리 그는 이미 프라임이 대출한 책들을 받아들고 있었다. 책표지가 너덜너덜하게 낡은 수많은 책들. 책 제목조차 지워진 그 책들은 도대체 무슨 책인가.
“이거, 무슨 책이야?”
혹시나 싶어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할 정도로 냉정했다.
“네가 알 거 없어”
“그러지 말고, 알려줘도 되잖아?”
“알면 좋을 게 없는 거니까 안 알려주는 거야. 그렇게만 알고 있어”
프라임에 말투에는 경멸이나 무시가 담겨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말대로 이건 정말로 ‘알면 손해를 보는 무언가’ 인 것 같았지만 디스트로이어는 그래도 알져주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자신을 말려들지 않게 하려는 저 어중간한 친절. 다른 사람이라면 그 친절도 감사히 받아들였겠지만 디스트로이어는 프라임에게 친절을 바란 게 아니었다.
자신은 좀더, 프라임이 자신에게 기대주기를 바란 건데.
“그런 사람에게 이런 걸 들게 해도 되는 거야?”
“드는 것 만이라면 문제없잖아?”
“그러다 열어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무슨 말이든 척척 답하는 프라임이 대답을 망설인 것 같이 보인 것은 우연이었을까.
한 템포 쉬듯, 크게 숨을 들이마신 프라임은 작게 웃으며 디스트로이어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럴 인간이 아닌 것쯤은, 잘 안다고”
그러니까 괜찮아. 아무렇지 않게 덧붙이고 고개를 돌린 프라임과 달리, 디스트로이어는 깜짝 놀라 들고 있는 책을 떨어뜨릴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