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제국군에서도 아주 소수만 알고, 반란군에서는 단 둘밖에 모르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 알아봐야 혼란만이 오고, 당사자가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 수 없는 그 사실은 놀랍게도 제국의 황제와 그 씨 다른 동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셀렌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말수가 많아진 그녀지만, 그래도 역시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화의 시작을 만들어 주는 그녀는 낯설었다. 마지막 부상병의 치료를 마치고 온 디스티는 수고했다는 말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가 놀라워, 그 답지 않게 반문하고 말았다.
“으응?”
“그 아이 있잖습니까. 군의관이 마지막으로 개조하던 아이”
“응? 아아, 아. 14번째 테슬러 말이군!”
이름보다 실험체 명으로 기억해 내다니. 정말이지 대단한 과학자다. 분명 본명은 ‘플루토’였던 것 같지만 저 ‘14번째’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디스티의 실험을 일일이 지켜본 그녀로서는 한번 본 아이의 본명보다는 저 이름이 익숙한 게 당연했지만, 그래도 셀렌은 못내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군의관이 제국을 빠져나간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갑자기 그건 왜?”
“그냥, 오늘 총통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저는 성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군의관은 그 아이가 꽤 좋은 소재라고 좋아했지 않았습니까?”
좋은 소재. 즉, 마음이 약하고 연약한 존재. 본디 세뇌란 정신력이 약한 자가 걸리기 쉬운 것이었으니, 정신개조에 좋은 소재란 곧 심신이 약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14번째 테슬러, 그는 분명히 디스티의 마음에 든 소재였다. 정신력은 한없이 약하고, 외모는 진짜 테슬러와 닮아있으며, 멀쩡한 몸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훌륭한 신체 병기로 만들 수 있겠어!’ 그렇게 외치던 디스티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 셀렌으로선 그 아이야 말로 어쩌면 황제가 바라던 테슬러의 대용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흐음, 솔직히 내 밑에 있었다면 지금 쯤 테슬러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있겠지만?”
“내가 없는 이상 무리지! 킥킥, 다른 어중이떠중이 녀석들이 나만큼 성과를 낼 것 같지도 않고!”
자신감에 절은 오만한 대답 같이 보일지 몰라도 저건 사실이었다. 그때 제국에 있는 의사 중 개조와 세뇌에 있어 디스티보다 우수한 인재는 없었고,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인격적인 점만 제외하면 그는 정말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인재였다. 하지만 그놈의 인격이, 모든 걸 상쇄하는 것이 문제지.
“그러고 보니 중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총통에게 그 이야기는 안한 건가?”
“테슬러를 만드는 그 미친 계획 말입니까”
“그래, 미친 계획. 킥킥”
제가 중심이었던 계획을 가차 없이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 또한 디스티의 일면이었다. 그는 미쳤다거나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 나름 사랑스러운 애칭이자,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으니까.
“말할 이유가 없지요. 안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기분만 나쁘게 할 것 같고, 무엇보다 전 그것에 함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국 시절의 함구령을 반란군이 되어서도 지키겠다, 이건가?”
“굳이 말하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진실이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제 형제자매가 인간을 죽이고 전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다가 지금은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알고 기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는 것 뿐. 셀렌은 감정과 공감능력은 남들보다 많이 부족했지만, 무엇이 더 이득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잘했다.
“그러는 군의관이야말로 조용하군요”
“왜, 내가 자랑스럽게 그 일에 대해 총통에게 떠들 것 같았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너무하군, 셀렌. 정말이지 나에 대해서 조금도 몰라! 족히 3년은 같이 있지 않았나!”
그러는 당신은. 그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셀렌은 표정을 구기는 것으로 제 분노를 적당히 표출했다. 남을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에 대해서, 저 작자가 말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찌푸린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셀렌이 그저 귀여운지 소리죽여 웃던 디스티는 간단한 대답을 내놓았다.
“미완성 작품을 자랑하는 건 내 성미와 맞지 않아”
“그러면 영원히 말하지 못 하겠군요, 도로 제국에 돌아갈 것도 아니니까”
“그렇겠지, 뭐~ 게다가, 언젠가 제국을 쓰러뜨리고 난 후라면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셀렌은 아직도 건재한 제국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왔다. 비록 제 의지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이래가지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그녀의 걱정을 읽기라도 한 걸까. 수술 장갑을 바꿔 끼고 안경의 먼지를 닦던 디스티가 다가와 셀렌의 얼굴을 잡았다.
“뭐, 비밀이라는 건 말이지. 언젠가 밝혀지게 되는 거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셀렌”
“…걱정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알아, 알지”
뭘 안다는 걸까. 애매한 말만 중얼거리던 디스티는 살집 없는 그녀의 볼을 한번 꾹 누르고 손을 거두었다. 역시나 기분 나쁜 남자. 셀렌은 비뚤어진 군모를 고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