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배소년 총통조 디스티 드림
- 오리주 주의
- 드림전력 60분 샹그릴라 서른여섯 번째 주제 : 눈동자
제국조, 총통조 네타 주의
눈동자
written by Esoruen
셀렌은 가끔 그 선명한 자주색 눈동자를 생각하면 괜히 소름이 돋을 때가 있었다.
총통의 오드아이가 후천적인 것은 열차 안에서는 이미 비밀이 될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푸른색 눈동자는 천연, 본인의 것. 쇠의 색을 닮은 회색 눈동자는 의안, 디스티가 넣어준 것. ‘군의관이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지’ 총통은 개조당한 자신에 만족하며 부하들에게 말했지만, 그래도 셀렌은 그의 의안을 볼 때 마다 옛날 기억이 떠올라 한없이 오싹해졌다.
그러니까 아직 자신이 반란군의 중위가 아니라 제국군의 대위이고, 디스티도 군의관이 아닌 제국 의사이던 시절. 무려 적인데도 불구하고 겁 없이 반란군의 총통을 구해준 제 상관은 테슬러를 살리기 위해 멋대로 개조 수술을 집도했고, 그 와중 망가진 총통의 한쪽 눈을 뽑아내었다.
“이건 못 쓰겠군, 아까워. 색이 예쁜데 말이야”
“색의 문제입니까”
“뭐, 꼭 색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도 미적 감각이라는 건 있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히히히. 눈 색이 짝짝이인건 별로잖아?”
과연 그럴까. 셀렌은 간혹 높으신 분들이 데리고 다니던 새하얀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그 고양이들은 오드아이였기 때문에 더 값비싸고, 더 사랑받았는데.
“어디 보자, 음. 어차피 색을 못 맞추는 거면 아무거나 넣어도 좋겠지”
제법 진지하게 의안의 색을 고르던 그는 결국 무채색 계열인 회색 눈동자를 그의 눈에 넣어주었다. ‘쨔잔!’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수술을 끝낸 사람이라고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밝은 얼굴로 수술대를 떠난 그는 피 묻은 장갑들을 벗어버리고 의자에 앉았다.
“어쩔 생각입니까, 닥터”
“무슨 의미야? 대위”
“총통 말입니다. 황제에게 넘길 겁니까? 그렇다고 쳐도, 개조 할 이유는 없을 텐데…”
해부는 하려고 했다면 진작 했을 것이다. 죽이려고 했다면 언제든 기회가 있었고, 단순히 살리려고만 했어도 수많은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디스티는 과감하게도 적군의 수장에게 개조수술을 해주었고, 자신은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걸 황제가 알면 뭐라고 할까. 공포라는 감정은 잃은 지 오래 된 셀렌이었지만, 그녀는 지금 걱정스러움 속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든 죽는 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제 걱정을 쓸데없는 소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스티는 도대체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더니, 대뜸 물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대위”
“무슨 소리라니요, 총통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잖습니까?”
“아니, 알고 있어. 다만 자꾸 황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뭐야? 황제에겐 안 알려 줄 거다만?”
지금 제가 무슨 소릴 들은 거지? 셀렌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 그러니까. 황제에게 비밀로 뭔가 다른 걸 하겠단 걸까. 설마 ‘테슬러 계획’에 진짜 테슬러를 이용하려는 건가.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그녀를 더 황당하게 만든 것은 디스티의 환한 미소였다.
“나는 말이야, 대위. 여길 뜰 거야”
“네?”
“질렸어. 남이 하라는 걸 하는 건 말이지. 제약도 많고. 테슬러를 만드는 그 계획에서 잔뜩 재밌는 걸 만들었지만 제 마음에 안 든다고 버리라고 하고… 이 디스티님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겠나, 히히히”
요약하자면 자신은 제국을 배신하겠다는 소리였다. 본래라면 이런 말에 자신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더라. 제국군의 대위이자 디스티의 ‘감시병’인 그녀는 더듬더듬 제 권총 위에 손을 올렸다. 그가 우리 편일 때는 절대 죽지 않게 하고, 그가 배신하면 가장 먼저 죽여 버려야 한다. 그게 위쪽의 명령이었으니, 자신은 지금 그를 쏴 죽여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셀렌은 권총을 꺼내려다 말고 다시 물었다.
“총통에게 붙을 생각입니까”
“그러니까 살려준 거지”
“…진심인 것 같군요”
“물론이지. 셀렌, 내가 농담을 하는 사람이었나?”
아아. 또 이름으로. 그녀는 질색이라는 듯 도로 권총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동작은, 디스티 쪽이 조금 더 빨랐다. 그녀가 뭘 생각하는지는 이미 다 안다는 듯, 다짜고짜 셀렌의 손을 잡은 그는 여자의 손 치고는 너무나도 거친 그 흰 손은 제 오른쪽 가슴 위에 얹었다.
“쏠 거라면, 여길 쏴야 해. 대위”
이런 상황에서는 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체온과 약한 심장박동에 숨이 흐트러진 그녀는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자주색 눈동자에 흠칫했다.
불을 꺼도 빛이 날 것 같은 그 명도 높은 눈동자에는, 결코 공포라고는 들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눈동자에 어슬렁거리는 것은 호기심과 흥미. 그러니까, 셀렌의 반응을 순수하게 기대하고 있는 환희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왼쪽엔 아무 것도 없어. 자네라면 잘 알잖아? 흐흐흐흐”
그래. 잘 알지. 본인은 예전에 그의 손에 의해 심장이 반대편으로 옮겨졌고, 그때 그 수술을 맨 처음 실행한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들었으니까.
“쏘지 말라고는, 안 하는군요?”
“당연하지. 나는 말이야 대위. 지금 네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더 궁금해”
“목숨보다도?”
“히히히”
대답을 회피하는 건 그 답지 않다. 그렇게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셀렌은 자신 쪽이 더 무서워졌다.
그저 살기 위해, 아버지의 장기짝으로 군인이 된 자신은 그다지 애국심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사실 황제 따윈 어찌 되어도 관심 없었고, 명령만 없었다면 이런 미친 남자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디스티와 너무 오래 시간을 보내어 버렸고, 그 과정에서 옛날에는 없었던 것과 잃어버렸던 것들이 생기고 말았다. 감정,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들. 장기짝이 아닌, 인간 셀렌으로서 가져야 할 자아에 관한 것들. 그걸 가르쳐 준 당사자는 또 한 번, 셀렌에게 선택지를 줌으로서 몰랐던 것을 가르치려 들고 있다.
“아아”
아무 대답도 행동도 없는 셀렌을 지켜보던 눈동자가, 문답을 멈추고 깜빡였다. 셀렌은 저 눈이 무엇을 보는 눈인지 알고 있었다. 흥미로운 재료를 발견 했을 때의 눈, 혹은 제 완성품을 볼 때의 눈.
그것은 사랑을 모르는 디스티가 유일하게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 나오는 눈이었다.
“역시 대위는 재밌어, 히히. 나는 그 눈을 보는 게 좋아”
“제 눈이 무슨 문제라도?”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이렇게 들쑤시면 가끔 어쩔 줄 몰라 하잖아. 나는 그게 좋아. 이 녹색 눈동자가 좋다고”
가지고 싶어. 분명히 그렇게 덧붙이며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보통이면 기분 나빠서라도 모른 척 할 텐데, 그녀는 용감하게 제 미치광이 상관에게 대들었다.
“눈이 아니라 다른 걸 원하는 것은 아닙니까, 닥터”
“…히, 히히. 하하하!”
예상하지도 못한 날카로운 반문에 디스티는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잡고 있던 손도 놔주고, 양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은 그는 당황과 갈등이 사라진 그녀의 눈동자에 대답했다.
“그게 대답이군, 대위”
“그렇게 되는 겁니까?”
“나를 죽이지 못했어”
“안했다고 정정해 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음, 그게 더 가깝나. 어쨌든, 그래”
어찌 되든 좋겠지. 그렇게 말한 디스티는 아까 전 테슬러에게 적출한 안구가 든 실험관을 챙겨 넣었다. 어차피 쓸 수도 없는 재료일 텐데, 왜 버리지 않는 걸까. 그것은 디스티가 자신의 안구를 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걸까.
“짐을 챙기라고, 셀렌. 테슬러가 깨면 협상을 할 거야. 여길 뜨자고”
“협상에 성공하면, 말이지요”
어차피 여기 남아있어도 얻는 것은 없으리라. 그렇다면 자신은, 제게 없는 것을 만들어 준 괴물을 따라갈 것이다.
그 결정이 과연 잘한 것인지는 아직 감이 오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것이 최악의 선택은 아니었다는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