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 아니 초여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후덥지근한 밤. 메리루는 가사를 적어놓은 노트를 달달 외우다 말고 옆에 앉은 나츠키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응,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거야?! 나츠키 굉장하네~”
“후후, 메리루에 관한 거라면 뭐든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 계절에 나타나니까요. 처녀자리는”
“에?! 정말?!”
그러고 보니 자기 별자리는 정작 자기 생일 때는 못 본다고 하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이런 뜻이었나. 노트에서 밤하늘로 고개를 돌린 메리루는 필사적으로 처녀자리를 찾으려고 해봤지만, 그녀의 노력은 당연하게도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다. 별자리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무작정 밤하늘을 보며 별을 찾으려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두리번거리며 하늘을 살피는 그녀가 귀여운지 웃음이 터져버린 나츠키는 남쪽을 가리켰다.
“저도 찾지는 못하지만, 남쪽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기 어디 쯤, 있지 않을까요?”
“우와, 나츠키 똑똑해… 나, 조금 반해버릴지도!”
“에, 정말인가요?”
나츠키의 얼굴에 약간 화색이 돈 것 같은 건 제 기분 탓일까. 메리루는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저 멀리 빛나는 별들보다, 훨씬 눈부신 나츠키는 밤인데도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로 설명을 이어갔다.
“처녀자리는 말이죠, 페르세포네를 뜻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대지의 여신의 딸 말이에요. 이삭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별자리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호오, 호오”
“물론 페르세포네는 처녀는 아니지만요, 하데스랑 결혼했으니까”
“에? 그런데 어쩌다 처녀자리가 된 거야? 그거 반칙 아냐?”
반칙이라고 할 것 까지 있을까. 마치 돌직구 같이 단순하고 묵직한 그녀의 어법에 나츠키는 또 웃어버리고 말았다. ‘왜 웃어?’ 정말로 이유를 모르는 지 눈을 깜빡이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본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말았다.
“반칙이 아니에요, 페르세포네가 지하에서 땅 밖으로 나오는 그 시기에 처녀자리가 뜨는 거니까. 페르세포네는 3개월만 지하에 있고, 나머지는 어머니인 데메테르 여신 옆에 있거든요”
“으음, 그렇구나~ 하지만, 그래선 하데스가 외롭겠는데?”
“그런가요?”
“응. 물론 페르세포네는 어머니를 봐서 좋겠지만, 하데스는 아내랑 떨어지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하데스가 불쌍하다. 언제나 데메테르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던 나츠키는, 처음으로 이 신화이야기에서 하데스를 조금 동정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라면 싫을 거 같아. 내 남편이 3개월 밖에 내 옆에 없다니. 그건 너무 슬프잖아”
“으응. 그렇네요. 저라도 그럴 것 같고”
가만히 그녀의 말에 공감해주던 나츠키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만약, 학원을 졸업한 후 메리루와 만날 수 없게 된다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처럼, 아니, 그 두 사람보다 비참하게 3개월도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학원에서 매일 보던 그녀가, 저 멀리, 별처럼 멀어진다면…
“…그래도, 별자리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에? 그런가요?”
“응. 지하에서도 별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밤하늘에 언제나 아내의 얼굴이 있다니. 그건 좀 로맨틱해!”
“언제나, 밤하늘에”
아아, 그렇지. 자신들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여기서 이러고 있었지.
아이돌, 스타란 곧 별과 같았다. TV와 광고판, 어디든 얼굴이 드러나는 직업. 일반인들도 미디어만 자주 접한다면, 옆집 친구처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의 특성.
그래, 만날 수 없어도. 분명 화면 너머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은 행복하겠지.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메리루쨩”
“응?”
“쪽, 해도 되나요?”
‘엑’ 당황한 것을 감추지 않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참으로 솔직한 사람. 나츠키는 온 몸으로 부끄러워하는 그녀가 대답을 내놓을 때 까지, 얌전히 기다릴 수 있었다.
“다, 당연히 되지! 그런 건 그냥 해도 돼! 나는 개, 개방적인 사람이니까 말이지!”
“다행이네요”
쪽. 가볍게 자그마한 입술 위에 키스한 그는 손을 거두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노트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메리루는 도저히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지, 입을 맞춘 그 자세로 그대로 얼어버린 채 중얼거렸다. ‘이, 이, 입에, 응?’ 혼잣말인지 말을 거는건지 모를 그녀의 말은, 선선한 밤바람에 그대로 흩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