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우메는 나무간판에 쓴 제 글씨를 보며 작게 웃었다. 미즈하라 서당. 제법 그럴싸한 달필이다. 카츠라는 칼을 잡기 전엔 글을 썼다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고 쓴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그녀가 제 자리로 돌아간 것 같아 기쁘면서도, 양이전쟁 시절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더없이 슬퍼졌다.
“확실히 잘 썼군. 자네 글씨는 늘 보기가 좋아”
“그렇게 띄워줘도, 나오는 건 없지만”
“진심이라네”
그러면 더없이 고맙지. 살포시 덧붙인 그녀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아마 이르면 내일부터, 늦어도 3일 뒤부터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리라. 나찰녀라 불리며 피를 흘리게 했던 과거를 청산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그건 이제 더 이상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전장에서 도망쳐 나온 후 느끼는 비겁한 편안함일까. 어느 쪽이던, 이제 자신은 선생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양이지사, 살인자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뭔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네”
“그런가?”
“응. 뭐어, 과거는 변하지 않겠지만”
역시 신경 쓰고 있는 건가. 아니, 신경 쓰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하지. 카츠라는 무슨 대답을 해 줘야 좋을지 몰라 침묵하고 있다가, 묵묵히 간판을 들었다. ‘달고 오겠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간판을 들고 나가는 그의 얼굴은 결코 밝다곤 할 수 없었다.
역시, 괜히 부른 걸까.
혼자 남은 서당 안에서 고민하던 코우메는 비척비척 차를 끓이러 갔다. 크던 작던 제 일을 도와줬으니, 차와 과자 정도는 대접하는 것이 예의겠지. 부엌에서 이것저것을 챙겨 쟁반에 올리던 그녀는 그 옛날, 자신과 함께 피를 뒤집어썼던 카츠라의 모습에 손을 멈추었다.
그가 양이 활동을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가 피를 더 보는 일은 없었으면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온건파가 되면 좋겠는데.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코우메는 제가 그의 운명을 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가 전장을 떠나는 것을 카츠라가 말리지 않은 것처럼.
“코우메, 코우메?”
아. 벌써 돌아온 걸까. 이제 막 끓여 따뜻한 말차와 전병을 들고 나간 코우메는 땀범벅인 그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간판 하나를 다는 일에 저렇게 된 걸까?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어리둥절해 있는 그녀에게 답을 준 것은, 그의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였다.
“그, 조각케이크이긴 하다만. 뭐 어떤가. 이걸로 축하하도록 하세. 새로운 시작을”
“…푸흡!”
“뭐, 뭐지?! 왜 웃는 건가 자네!”
“아무 것도 아냐. 코타로”
아아. 다정하기는. 코우메는 웃음을 참으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케이크에는 말차보단 커피가 어울리겠지. 끓여놓은 차가 아깝긴 했지만, 그녀는 기꺼이 새로 커피를 끓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