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등장한 퀼은 화난 욘두에게 쫒길 때 보다 더 다급한 표정으로 방에 난입했다. 여유롭게 제 방에 앉아서, 일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슬쩍한 책을 읽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불쑥 나타난 퀼을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와서 무슨 소리냐고 하면, 뭐라고 해 줘야 좋은 걸까.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 때문에 김이 빠진 그는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누가 너보고 프러포즈를 했다고?”
“아”
뭔가 했는데, 그거였나. 벨은 땅이 꺼져라 한숨 쉬었다. 분명 아까 욘두랑 만나서 일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흘리듯 말한 거였는데. 그게 어쩌다가 이 남자 귀에까지? 아니, 그것보다 퀼이 알 정도면 이미 라바저 안에는 다 퍼져버린 건가?
“그거 말이었어?”
“그거 말이었어, 가 아니지. 뭐라고 대답했어? 아니 그것보다 누구야, 응?”
어지간히도 불안한가 보군. 그녀는 애써 웃고 있지만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퀼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 별일 아니니까, 자신도 말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거에 초조해 하다니. 피터 퀼이란 남자는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짓궂은 마음이 든 그녀는, 조금 더 그를 애태워 보기로 했다.
“누구냐고 하면 글쎄다… 나도 잘은 모르는 남자라서…”
“잘 모르는데 프러포즈를 하는 정신 나간 녀석도 있어?”
“아니 이름 정도는 알지, 일 하면서 몇 번 봤거든. 근데 설마 갑자기 나보고 ‘라바저를 떠나 여기서 살아 달라’ 같은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겠어?”
오, 웃는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이렇게 놀려먹으면 나중에 제가 그대로 당한다는 건 잘 알지만 벨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 얄미운, 욘두에게마저도 여유롭게 말재간으로 빠져나가는 스타 로드가 포커페이스를 유지 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
“그래서? 어쨌어?”
“어쨌을 거 같아?”
“…오, 제발. 벨?”
“왜? 왜 불러?”
그냥 바로 대답해 주면 좋을 것을! 퀼은 자꾸 내려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고 식은땀을 닦았다. 옛날부터 쭉 같이 지내 와서 확신하는데, 벨이 저 프러포즈에 긍정적인 대답을 했을 가능성은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답을 뜸들이면 누구라도 속이 타지 않는가. 자신도 사람인데!
“그러지 말고 우리 자기, 응? 안 받아줬지?”
“당연하지 내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여자로 보여?”
“그래, 그렇지! 누구 여자인데, 음!”
“아니, 네 여자도 아니거든?”
아니기는. 퀼은 히죽히죽 웃으며 그녀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음, 나는 결혼보다는 연애가 좋다?”
“……”
“농담이야. 그런 소리 또 하면 욘두가 잡으러 올 거라고 했지”
왜 자신이 아니라 욘두인가, 그건 거슬렸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피터 퀼, 스타로드가 널 잡으러 갈 거다’ 보다는 ‘라바저의 욘두가 널 잡으러 갈 거다’가 위협적인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욘두라면 정말 누군가 벨에게 수작을 걸려고 한다면, 단번에 화살로 상대방을 저승으로 보내 주리라.
“다음부터는 이런 걸로 날 놀라게 하지 마, 벨”
“싫은데? 애초에, 이런 거에 애태우는 네가 바보인 거야. 스타로드 씨”
읽는 둥 마는 둥 하던 책을 덮어 툭, 하고 그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쳤다.
‘그런가?’ 실실 웃으며 답한 퀼은 겨우 안심한 표정으로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