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 부스
- 오소마츠상 마츠노 쵸로마츠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3회 주제 : 공중전화 부스
24화 생각하다가 운 쵸로맘의 온기가 남아있는 글입니다(따스)
공중전화 부스
written by Esoruen
처음 취직한 회사, 처음 해보는 회사생활, 첫 기숙사 생활.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도배된 나날에서, 마츠노 쵸로마츠는 조금 빨리 지쳐버린 걸지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 옆에 자신과 닮은, 아니 똑같은 얼굴 5개가 없는 것은 견딜 수 있는 어색함이었다. 지겹도록 붙어 지내고, 그 나이를 먹도록 같은 방에서 다닥다닥 붙어 잔 자신들이지만 낮잠을 자거나 따로 여행을 갔을 땐 혼자서 잠들었다가 일어날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늘 먹는 집밥을 먹을 수 없고, 그 집밥을 같이 먹어주는 형제들이 없다는 것은 조금 견디기 힘든 공허감을 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힘겨운 회사생활을 한 후 돌아왔을 때 아무도 자신에게 ‘다녀왔어?’라고 인사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진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집을 나올 때, 형제들은 모두 자신을 배웅해 주었지만 오소마츠는 그러지 않았지. 얼른 오소마츠에게, 정확하게는 오소마츠와 모두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텐데. 정신적으로 피곤한 그에게는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는 일은 너무나도 힘겨웠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만 흐르던 때.
“허억”
식은땀에 젖어 깨어난 쵸로마츠는 습관적으로 제 옆자리를 더듬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악몽을 꿨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 졌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걸 보아 굉장한 악몽이었겠지. 평소라면 형제들 중 아무나 한명 잡고, 하소연을 하던 마음이 진정될 때 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할 텐데. 지금 제 옆에는, 아무도 없다. 부모도 형제도. 아무도.
“……”
다 큰 어른인데, 그 사실이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 쵸로마츠는 울면서도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눈물을 멈출 순 없었다. 책상 위에는 쓰다 만 편지, 좁은 방에 가득 찬 건 샛노란 달빛. 궁상떨기 딱 좋은 방에서 계속 울어봐야 기운만 빠지겠지. 한참을 훌쩍거리던 그는 못 이긴 척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밖으로 나섰다.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다. 늦게 잔다고 해도 문제는 없겠지. 이왕 나온 거, 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라도 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거리를 산책하자, 서글펐던 마음이 조금은 정리되는 것 같기도 했다. 가로등 불빛, 길고양이가 오가는 골목길, 약간은 차가운 밤공기. 쓸쓸해 보이지만, 그 좁은 방보단 아름답다.
“…힘 내야지”
기껏 독립했는데, 약해지면 안 되겠지. 아니, 약해져도 가족들에겐 멀쩡한 척 해야 한다. 걱정시키고 싶진 않으니까. 오히려 잘 지낸다는 걸 보여줘야, 다른 형제들도 독립할 용기를 가질 테고. 어른스러운 건지 희생적인건지 모를 생각을 하며 제법 멀리까지 걸어온 쵸로마츠는, 슬슬 돌아가려고 골목길을 돌았다가 생각 외의 물건을 보고 멈춰 섰다.
“…어라, 새로 생겼나?”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엔 가로등과 자판기뿐이었는데, 언제 공중전화 부스가 생긴 거지? 이 근처는 회사원들이 밀집해서 사니, 하나 쯤 생겨도 이상할 건 없지만…
“……”
전화할까.
마침 핸드폰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그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해 봤다. 이런 새벽에 전화를 받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만약 받는다면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 것만 듣고 끊으면 될 텐데. 대화를 했다간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으니, 그저 목소리만 듣고 싶었다.
하지만 과연 제가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전화를 끊을 수 있을까. 만약,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자신인 걸 알아채고 말을 걸어오면 어쩌지?
외로움과 두려움. 제가 이길 수 없는 감정들 사이서 갈등하던 쵸로마츠는 찬바람이 부는 길거리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결국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고, 잠깐 고민하던 쵸로마츠는 돈이 다시 반환되기 전 급히 어떤 번호를 누르더니 숨소리도 죽이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걸 기다렸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 평소의 그 발랄한 목소리와는 다른, 이 밤과 어울리는 차분한 인사. 쵸로마츠는 태연하게 ‘나야’라고 말하려다가, 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윽…”
“…여보세요? 누구세요?”
“으윽… 으… 카도와키…”
“…마츠노 씨?”
우는 목소리인데도 단번에 자신임을 알아채다니. 이건 고마워해야 하는 일인 걸까 아니면 미안해해야 하는 일인 걸까. 가족도 아니지만, 적당히 제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상대로 그녀를 생각한 쵸로마츠는 제 선택이 얼마나 바보같은 것이었는지를 단번에 깨닫고 말았다.
“자, 잠깐 왜 울어?! 저기, 새벽에 전화해서 울다니. 무슨 일이야!?”
“나, 나… 나…”
외롭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목이 부어올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우는 소리는 그렇게나 우렁차게 나는데, 어째서 중요한 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을까. 수화기를 붙잡고 우는 쵸로마츠는 눈앞에 살랑이던 검은 세라복을 떠올렸다.
니트였던 때는, 종종 그녀가 학교 끝나고 시내에 올 시간에 맞춰 번화가로 나가곤 했는데. 우연히 마주치는 날은 같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간식을 먹고, 마주치지 못한 날은 조금 아쉬워하며 돌아오곤 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취미를 이해해 본다고 냐쨩 콘서트에 같이 가거나, 스티커 사진을 찍어 핸드폰에 붙이곤 했는데.
“보고싶어…”
겨우 쥐어짜낸 말이 아팠다. 마음과 목구멍, 혀끝을 긁고 나온 말은 수화기 너머의 메구미의 마음까지 긁어놓았다. 끅끅거리며 우는 쵸로마츠의 목소리를 듣던 메구미는 잠깐 아무 말도 없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츠노 씨”
“……”
“전화 해 줘서 고마워… …지금 집에 전화하긴 무서워서 나한테 한 거지? 정말 바보같은 어른이네”
정확하게 짚었다. 정곡을 찔렸다 해도 좋겠지. 보통은 이런 경우에 기분이 나빠지기 마련인데, 어째서 오늘은 차라리 속이 시원한 걸까.
“외롭고 힘들면, 가족에게 기대도 되잖아? 무, 물론… 나에게 전화해 준 건… 고맙지만”
“…미안해”
“뭐, 뭐야. 답지 않게! 울기나 마저 울어! 요금 떨어질 때 까지 가만히 들어줄 테니까…! 이거 공중전화로 건 거지?! 번호가 그렇던데”
“…추가 요금 넣어도 돼?”
“될 리가…! …돼, 됐어. 한 30분 정도는 들어줄게”
‘고마워’ 한결 나아진 목소리로 내뱉는 대답.
우는 와중에도 살짝 번진 미소가 가로등의 빛에 희미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