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 오소마츠상 마츠노 쵸로마츠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9회 주제 : 사랑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사랑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written by Esoruen
지하아이돌이라 해도 아이돌이란 본래 반짝반짝 빛나는 법이었다. 아니, 오히려 지하아이돌 이기에 더 빛나는 경우도 있는 걸까. 메구미는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달고 화려한 춤을 선보이는 무대 위 소녀를 보며 웃었다.
원래 스타라는 건, TV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 여겨지기 쉬웠는데, 지하아이돌은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물론 콘서트가 매일 열리는 것도, 신곡이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디메리트는 감수할 수 있는 법이지.
“냐쨩!!”
그래, 감수 할 수 있으니 이렇게 좋아하는 거겠지. 그녀는 제 옆에서 격렬하게 야광봉을 흔드는 쵸로마츠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엔 하시모토 냐의 팬이라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지금 보니 완전히 광팬이지 않은가. 매일 냐쨩의 신곡이 어쩌구저쩌구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메구미였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매사에 시니컬하고, 여자 앞에서는 호구가 된다. 그리고 제 앞에서는 실컷 어른스러운 척 조언하고 딴죽을 거는 그도,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이런 면을 보이구나.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그 사람이 나름대로 ‘호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아, 역시 냐쨩의 라이브는 최고야… 냐쨩…”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무대 위 아이돌은 깜찍한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여운에 젖어있는 팬들 사이, 마찬가지로 오늘의 라이브를 곱씹던 쵸로마츠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옆에 있던 메구미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 냐짱 신곡!”
“…음, 신나네. 개인적으로 난 저번 노래가 더 좋지만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그래? 아, 하긴. 저번 노래는 진짜 명곡이었으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역시 이번 곡도 나쁘지 않지? 아니, 냐쨩 곡 중에서 ‘별로’라는 게 존재할 리가 없긴 하지만…”
와. 이렇게 말을 많이, 그리고 빨리 하는 쵸로마츠를 또 보는 날이 오다니. 전에 딱 한번, 쵸로마츠의 쌍둥이 형제와 셋이서 만났을 때도 분명 이렇게 말을 빨리 하긴 했지만, 그땐 이렇게 기쁜 표정은 아니었는데.
오소마츠라고 했던가. 여섯 쌍둥이 중 첫째인, 쵸로마츠와 똑같이 생겼지만 새빨간 후드를 입고 있던 그는 대뜸 자신을 보자마자 깜짝 놀란 눈으로 쵸로마츠에게 물었었다.
‘쵸로마츠!? 얘 여고생? 진짜 여고생?! 코스프레 같은 거 아니지?!’
그 말에 쵸로마츠는 분명 무서운 속도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라고 반박했었지. 하하. 메구미는 그날의 형제싸움을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의 딸딸마츠가 여고생을 만나고 있다니! 너 사실 톳티 아냐? 톳티~! 옷 잘못 입고 나왔어~!’ 동네가 떠나가라 떠들던 그는 결국 쵸로마츠가 종이가방으로 때리는 탓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망가긴 했지만, 메구미의 인상에선 절대 지워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모습과 이름이 강렬하게 각인됐었다.
“…에, 잠깐. 왜 웃어 카도와키?”
“응? 아아”
겨우 웃는 얼굴을 감춘 그녀는 쵸로마츠에게 받았던 냐쨩 부채로 시선을 돌렸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 제 옆에 있는 남자를 함박웃음 짓게 해 주는 이 지하아이돌이 조금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상한 걸까?
“그냥, 마츠노 씨가 이렇게 신난 건 처음 봐서!”
헤헤. 평소의 새침한 표정은 어디 갔냐는 듯 웃은 그녀는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고 부채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돌은 아니지만, 적어도 노래는 들으니 이런 기념품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그래?”
“응, 아. 물론 콘서트도 재밌었어. 냐쨩 귀엽네”
답지 않게 솔직한 감상인가. 메구미는 술술 진실만을 말하는 제 입이 신기했지만 굳이 입을 닫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그의 이런 저런 모습을 봐서 기분이 좋으니까, 뭐 이정도 솔직함도 좋지 않을까.
“그럼, 다음에 봐. 난 먼저 가볼게! 너무 늦으면 엄마가 잔소리 하거든!”
그럼 이만. 대답을 들을 시간도 없다는 듯 작별인사를 남긴 그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공연장을 떠났다. ‘어어’ 멀어져가는 그녀에게 ‘나중에 봐’ 라는 인사를 하려던 쵸로마츠는 어쩐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제 목 위에 손을 얹었다가, 제 몸이 평소보다 뜨겁다는 걸 눈치 챘다.
‘한심하게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이런 거에 열광하는 거야?’ 라던가 ‘노래는 좋지만 이런 걸 매일 보러 오는 거야?’ 같은 대답을 각오했던 그는 생각보다 긍정적인 그녀의 반응이 기뻤다. 하지만 그건, 절대 얼굴이 빨개질 일은 아닌데.
‘마츠노 씨가 이렇게 신난 건 처음 봐서’
그 말 때문에, 이러는 걸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마른세수를 하는 그의 귓가에 아까 전 마지막 앵콜곡이 들려왔다. ‘사랑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어’ 귀여운 목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얼굴은 지하아이돌이 아닌, 막 제 앞에서 떠난 여고생의 것.
“이거, 위험한 거 아니냐. 마츠노 쵸로마츠…”
왜 이상한 곳에서, 두근거려 버린 거야.
혼잣말을 한 그의 입술이 얄궂은 호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