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다가온 손이 어깨위에 가볍게 안착했다. 커다란 악기라도 만지듯 조심스럽고 리드미컬한 움직임. 어깨에서 뺨까지, 천천히 올라오던 손은 연습 후 지친 볼을 쿡, 하고 눌렀다. 도대체 부원도 아니고 매니저도 아니면서, 주장이랑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왔다 갔다 해도 되는 건가.
“선배?”
“안녕.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멍해?”
“…아뇨, 딱히 아무 생각도…”
“혹시 내 생각 한 거야?”
아니요. 그렇게 대답하려던 이마이즈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선배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라던가, 저런 부끄러운 말을 뻔뻔하게 내뱉는 선배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정말로 그는,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정말 잊어버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어진 것 뿐.
‘그러고 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오노다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나가야 한다’나 ‘오늘 숙제 범위가 어디까지였나’ 같은 건 아니었다. 오노다는 남을 재촉할 만큼 조급한 성격도 아니었고, 제가 조금 늦게 나온다고 먼저 가버릴 성격도 아니니까. 오히려 재촉할 거라면 나루코 쪽이겠지. 하지만 오늘 나루코는 바쁜 일 때문에 먼저 가버렸다. 숙제는… 어차피 범위가 어디까지라도 예습복습 하면서 다 해치울 것 같으니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지.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이마 쨩?”
아무 말도 없자 유메도 초조한지, 가볍게 그의 볼을 또한번 찔렀다. 쿡. 쿡. ‘아유 귀여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얼굴로 제 볼을 만지작거리는 그녀가 얄미워, 이마이즈미는 평소답지 않게 거짓말을 해보기로 했다.
“네”
“어?”
“선배 생각 했어요. 오늘은 안 오네, 킨조 선배랑 먼저 갔나 하고”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그럴싸한 거짓말이다. 이마이즈미는 혹시라도 제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이 들켰을 까봐 시선을 피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딱히 들켜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짓궂다. 3학년이나 되어선 1학년이나 괴롭히는, 미운 선배다. 물론 3학년 선배들 똑같이 대하는 걸 봐선 제가 1학년이 아니었다고 해도 딱히 괴롭히지 않을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 연하라서 저 못되게 구는 것도 있으리라.
그래서 이마이즈미는 작은 반항을 해보고 싶었다. 아주 작은, 모두를 놀려먹기 좋아하는 선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반항을…
“……”
“…?”
어라. 헛방이 아니었나?
“…크, 크흠. 신고는 어디 있어?”
“네? 아… 지금 아마 마키시마 선배랑 부실에서…”
“아 그래, 고마워!”
제 말도 끝까지 듣지 않고 뛰어나가는 유메의 얼굴은 평소보다 붉었다. 설마, 제가 한 말이 진짜인 줄 안건가? 아니면 진짜가 아닌 줄 알면서도, 조금은 기대해 버렸다던가?
“…어쩌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이마이즈미는 말문이 막혀, 농담이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내일 선배의 얼굴은 어떻게 보면 좋지, 내일이라도 거짓말이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느라 고개를 푹 숙인 그는 제 얼굴도 유메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