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배소년 총통조 디스티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135회 주제 : 휴가
휴가
written by Esoruen
전쟁 중인 군인에겐 휴가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적군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바로 전장에 나가야 하는데 휴가라니. 그것도 수없이 널린 일반 병사라면 모를까 반란군 내에서도 몇 없는 저격수인 그녀에게 휴가란 환상의 생물처럼 이름만 존재하는 개념에 가까웠다.
‘애초에 반란군인 이상 휴가가 있는 것도 이상 할 것 같지만…’
제국군이었던 시절도 가뭄에 콩 나듯 온 휴가고, 그마저도 모두 긴급 상황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셀렌은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휴가가 제게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을 슬퍼하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휴가가 주어지는 쪽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휴가라는 게 생기면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틀어박혀서 푹 자면 될까? 아니면 여가활동이라도 한다던가? 가족도, 고향도, 기호도 없는 그녀에게 자율시간이란 휴식이 아닌 풀어야 하는 난해한 문제에 가까웠다.
“중위, 잠깐 시간 있나?”
며칠간 계속된 교전. 오늘에 와서야 겨우 총성이 멎은 열차에서 오래 된 책을 읽고 있던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휴식시간을 방해받아 싫은 건 아니었다. 제가 읽고 있는 이 책은 휴식시간에 읽기엔 지나치게 어려운 책이었고 그녀 자신도 머리를 쉬지 않기 위해 읽고 있는 것이지 흥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걸 읽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굳이 그녀가 싫은 기색을 내비친 것은, 자신을 부른 사람이 너무나도 불길하게 웃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군의관”
“뭘 읽고 있나? 자네가 책이라니. 어떤 걸 읽고 있는지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신화입니다. 제국의 것은 아니고, 점령지의 전설 같은 걸 묶어놓은 책입니다”
“호오”
자신을 관찰하는 것 같은 밝은 자주색 눈동자. 도수 없는 안경 너머에서 이리저리, 제 몸을 훑고 있는 눈이 밝게 빛난다. 그와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셀렌은 디스티가 저런 눈을 하고 있을 때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대상을 해부하고 뜯어 고치는 걸 좋아하는데, 저 눈빛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응? 아니. 딱히? 히히”
“그럼 왜 부르신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자네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궁금했다고!”
겨우 그거 하나 때문에? 셀렌은 별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잠깐 책을 덮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계속 된 전투 때문에, 아마 의무실에는 부상병과 시체가 산만큼 쌓여있을 것이다. 인체 개조를 할 재료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굳이 제게 관심을 보이다니. 역시 뭔가 이상했다.
“용무가 없다면 나가주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왜?”
“……”
“아, 아. 그렇게 노려보면 무섭지 않나, 셀렌”
이 군의관은 자신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셀렌은 제가 기분 나쁠 짓만 골라서 하는 그를 최대한 무덤덤하게 보고 도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디스티는 늘 이랬다. 마치 실험이라도 하듯 제가 어떤 반응을 할까 이것저것 시도하며 웃고, 그 반응을 모아 자신이라는 실험체를 분석해 냈다. 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랬으니, 어찌 제가 모를 수가 있는가. 애초에 디스티는 이 분석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나 당당하게, 셀렌을 수술대 위에 올려 메스로 헤집는 대신 이렇게 말과 시선으로 그녀를 해부했다.
차라리 전자가 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자 언젠가 그의 손으로 찢어 남은 왼쪽 가슴 위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오늘은 개조도 안 합니까?”
“아아. 오늘은 자체 휴가야. 며칠 동안 계속 일했더니 피곤해서 버틸 수가 있나! 나도 나이가 들었어. 그렇지?”
“자체 휴가라는 거, 총통은 알고 있습니까?”
“아니. 말 안했는데?”
호오. 셀렌은 그녀답지 않게 짓궂은 생각을 떠올렸다.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의미로도 안 좋은 의미로도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줄 모르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그녀가 누군가를 엿 먹일 생각을 떠올렸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 계기가 디스티의 정신 해부 덕분이라는 것과, 그 시도의 대상이 또 디스티라는 것은 조금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고하고 와야겠군요”
“허?”
“잠깐 총통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잠깐. 중위? 셀렌 중위?”
디스티는 뭔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그야말로 숨 쉬는 인형 같은, 자아가 없는 그녀가 제 의지만으로 누군가를 골탕먹이게 된 이 상황은 실로 즐거웠지만 그 대상이 하필 자신이라니. 이건 안 좋았다. 아무리 디스티라도 총통과 총통의 1등 부하인 코일의 잔소리는 싫었으니까.
셀렌. 아니, 중위? 진짜 가는 건가? 중위? 디스티의 절박한 물음이 복도에 울렸지만, 셀렌의 발걸음은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