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도시락도 싸오지 않은 미하네는 간단히 매점의 빵과 캔커피로 점심을 해결하고 낮잠을 자기 위해 책상에 엎어져 있다가 원치 않은 방문객 때문에 고개를 들었다. 어제도 밤새 글을 쓰고 숙제를 하느라 3시간 밖에 못 자서 지금 자지 않으면 안 되는데. 불규칙한 생활인 건 알고 있었지만, 학생이자 작가라는 자리는 그런 것이었다.
“…하야마 군?”
“자고 있었어? 내가 깨운 거야?”
“아니, 괜찮아. 무슨 일이야?”
제게 말을 건 것은 옆자리의 남학생이었다. 하야마 군. 퍽이나 정감 없는 호칭이다. 그래도 나름 이 반에서는 가장 친한 상대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딱딱하게 부르는 건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미하네는 이런 것에는 선을 지나치게 분명히 긋는 편이라, 존댓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에게 친근감을 표하고 있다는 걸 모두 알 수 있었으니까.
“이번 주 주말에 시간 있어?”
“이번 주?”
이번 주는 딱히 일정은 없다. 집에 틀어박혀 원고를 쓰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지만, 그건 굳이 그 날이 아니어도 하는 일이었으니 일정이라곤 할 수 없지. 잠깐 고민하던 미하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잘 됐다!! 나 그날 시합 있거든! 구경 와!”
“시합?”
“응! 예선전 전의 친선경기지만!”
예선전이라면 인터하이인가. 벌써 친선경기를 할 정도가 되었다니, 새삼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 느껴졌다. 입학식을 하고 고등학교 교복을 처음 입어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반에서 친한 친구도 생기고 여름방학도 다가오고 있다니.
뭐, 설마 그 친구가 이런 자신과는 정반대 타입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남자애인 것은 여러 의미로 신기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예측 할 수 없기에 인생은 재미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하야마가 싫지 않았으니, 이 예외성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디서 해?”
“으음, 어디더라? 무슨 체육관이었는데… 저기 시내 지나서…”
저렇게 설명을 못 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지 않을까. 미하네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릴 뻔 했다. 하지만 진짜 웃으면 바보취급 해 버리는 거니 참아야겠지. 평소와 같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머릿속으로 지하철 노선도를 그리던 그녀는 위치를 대충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안 멀면 괜찮아, 갈게”
“정말?!”
“응. 한번쯤은 보고 싶거든, 하야마 군이 농구하는 모습”
제가 그에게 처음 관심을 가진 것도, 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그 생동감 때문이었으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절대 할 수 없는 걸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존재. 미하네가 하야마에게 느끼는 관심은 거기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았다. 물론 그것만이 하야마를 설명하는 키워드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정말? 내 농구하는 모습을?”
“응. 체육 시간 땐 피구나 달리기만 하니까. 하야마 군이 정말 잘 하는 건 얼마나 신나서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거라면 나 연습할 때 구경하러 와도 되는 거 아냐? 아, 감독이 싫어하려나? 하지만 다른 여자애들도 잔뜩 구경 오고 하는데…”
“…가도 되는 거야?”
하야마의 태도에 조금은 놀란 듯, 미하네의 눈에서 졸음기가 싹 달아났다. 자신은 그를 신경 쓰고 있고, 그가 가장 친한 클래스메이트라고 생각하지만 하야마에겐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습이라는 정식 부활동을 보고 있어도 될 정도로 가까운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하야마는 친구가 많았다. 정확하게는 교우관계에 선을 긋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쉽게 말하자면 누구와도 두루두루 친하단 의미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하네는 제가 그에겐 그저 옆자리의 여학생, 혹은 가끔 모르는 걸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여자애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가 제일 열중하는 농구에, 쉽게 관여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에? 안 될 이유가 있어…?”
“…그…”
하야마 군에게 나는 뭐야? 그렇게 물어보려던 미하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걸 물어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 막상 자신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곤란해 할 거면서. 하지만 이런 걸 물을 기회는 보통 잘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좋은가. 자랑은 아니지만 그 나름 자신은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미하네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 최고의 결과를 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