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티의 중얼거림은 30분 째 끊이질 않는다. 원래도 시끄러운 사람이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혼잣말이 심하다. 무언가 크게 곤란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지만, 셀렌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훌륭한 군인으로만 길러진 그녀는 의학에 대한 건 정말 기초적인 것도 몰랐으니까. 셀렌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의무실 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그의 말을 기다리는 것 뿐.
“하아, 거 참.”
결국 포기한 건가. 디스티는 허탈한 얼굴로 의자에 거칠게 주저앉았다. 드르륵. 바닥에 달린 낡은 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자, 그의 몸을 실은 의자는 저 멀리까지 밀려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모아둔 재료가 사라졌어. 곤란하군. 발이라도 달렸나?”
“뭐가 사라졌습니까?”
물건 찾기 정도는 어렵지 않다. 애초에 본업은 저격수이면서도 호위병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잡일을 해온 자신이었으니까. 다만 그가 말하는 재료는 늘 멀쩡한 것이 없다는 게 문제였지. 그걸 잘 아는 셀렌은 디스티의 입에서 어떤 물건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눈알이야. 눈알. 녹색. 자네 것 보단 조금 밝은 색이지.”
역시 멀쩡하지 않은 게 튀어나왔다. 그녀는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놀라진 않았지만 순순히 물건을 찾아보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 선반 가득 있는 건 분명….
“…눈알은 이미 잔뜩 있지 않습니까?”
“그 색이 아니면 싫으니 문제인 거지! 중위, 나는 녹색이 필요하네.”
“적당히 타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어차피 또 아무나 한명 잡아 개조하려고 이러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마취가 슬슬 풀릴 텐데, 얼른 찾아야 되겠군.”
제 말은 듣지도 않는다. 셀렌은 화가 나진 않았지만 그를 얌전히 만들지 못한 것은 걱정되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군의관은, 제 상사는 간단하게 말해서 미친놈이다. 부상병을 치료하는 척 개조하거나 제 심장을 오른쪽으로 옮기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대단한 천재이자 미친놈.
“…일단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어차피 여기 아니면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아아, 잠깐 기다리게 중위.”
“예?”
순순히 찾으러 가는데도 잔소리가 남은 건가. 셀렌을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더러운 수술가운, 피가 묻은 안경 너머로 빛나는 자주색 눈에서는 소독약품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습관적으로 숨을 한번 멈춘 그녀는 말할 게 있다면 얼른 지껄여보라는 듯 한 번 더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군의관.”
‘흐음.’ 얇은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앓는 소리가 불온하다. 나가려던 사람을 불러놓고 아무 말도 않는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셀렌과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 이건.’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셀렌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디스티의 손은 이미 그녀의 팔을 잡은 후였다.
“그냥 이걸 쓰겠네. 주게나.”
“네?”
“괜찮아. 나도 바보는 아니니, 오른쪽만 가져가겠네! 나중에 새 걸 넣어줄 테니까….”
“지금 장난하십니까?”
장난일 리가 없지. 제가 물었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셀렌은 자신의 눈 쪽으로 다가오는 손을 필사적으로 잡아 밀어냈다. 디스티는 이런 장난을 치지 않는다. 애초에 그에게 장난과 진담의 경계라는 게 있던가. 그는 하고 싶으면 그게 뭐든 저지르는 사람이었고, 지금 그가 원하는 건 제 녹색 눈이었다.
“어쩔 수 없네. 녹색이 아니면 싫단 말이지!”
“이상한 고집 부리지 마십시오!”
“고집 없이 뭘 하겠나, 셀렌?”
아, 그건 정말이지 방심한 디스티의 실수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평소에 늘 부르던 호칭과 다른,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그녀는 거기에 더 이상 참을 가치를 못 느끼겠다는 듯 그대로 디스티의 명치를 가격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직책으로 부르는 쪽 보다 이름을 선호할지 모르지만, 셀렌은 아니다. 아니, 평소엔 맞지만 상대가 디스티라면 틀리다는 쪽이 정확하겠지.
“…후우.”
이럴 땐 제가 군인인게 다행으로만 느껴진다. 정확하게 명치에 데미지를 먹인 그녀는 기절한 디스티를 의자에 도로 앉히고 밖으로 나섰다. 제 눈을 빼앗길 뻔 했던 게 억울해서라도, 잃어버린 눈알을 찾아와야지. 무거운 걸음으로 나아가는 그녀는 아직은 멀쩡한 제 두 눈을 가볍게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