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또 무슨 일로 부르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놀랍게도 호명된 당사자가 아니었다.
위에 제출할 서류를 검토하던 슈세이는 제 스승의 부름에 벌떡 일어나 대답하는 사서를 힐끔 훑어보았다. 재빠른 몸짓, 환한 미소. 누가 봐도 찾아준 게 기쁜 얼굴이라 화가 난다면 이상한 걸까. 하아. 깊은 한숨이 종이 위를 쓸었다.
“얼른 다녀와, 사서 씨. 아무리 내가 조수라지만 혼자 일하는 건 싫거든.”
“네? 아, 걱정 마세요! 금방 올게요!”
사근사근하게 대답한 타카라는 45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사서실을 나섰다. 제 스승이, 오자키 코요가 사서를 부를 때는 주로 맛있는 것을 사와 같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만쥬나, 모나카 같은. 건강에 안 좋은 단 음식들 말이다. ‘이번에도 쿄카가 사다 준 거겠지.’ 찌푸린 채 서류를 보던 그의 얼굴이 잠깐 풀어졌다. 스승님 말씀이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단것을 사러갔을 쿄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거 참 예뻐하시네.’
제 스승은 많은 제자를 거느린 만큼 인품이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고작 사서를 이렇게 잘 챙겨주는 건 이상했다. 아. 고작 사서라는 말은 쓰면 안 되려나. 아직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젊은 나이지만 그녀는 엄연히 알케미스트. 자신들을 전생시킨 유능한 특무사서니까. 그리고 그녀가 없으면 자신들은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한다. ‘고작’이 아니라 ‘위대한’을 붙여도 아깝지 않지.
“하아….”
뭐, 그 대단한 특무사서도 결국 사람인 법. 이렇게 공적인 문서에서 한자를 틀리거나 할 때를 보면 ‘위대한’이란 수식어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질렸다는 얼굴로 한자를 수정해준 그는 바깥에서 들리는 다정한 대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참으로 사이가 좋다. 질투가 날 정도다. 전생 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그저 평화로운 일상만 바라는 자신이 되었지만, 그 평화로운 일상에도 저런 가시가 돋쳐있는 걸 생각하면 역시 전생 같은 건 하지 않은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아, 뭐라도 쓸까.’
어차피 출판은 무리겠지만, 이렇게 감정이 요동칠 때는 손을 움직이고 싶어진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좋은 글의 소재이지. 물론 그 감정들이 모두 한 사람을 향해 피어난 거라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지만….
“토쿠다 선생님.”
“응?”
드디어 왔나. 검토 다 한 서류를 한쪽에 밀어두고 무작정 빈 종이와 펜을 들었던 슈세이는 부랴부랴 펜을 치웠다. 완성도 안한 글은 보여주기도 싫고, 일단 자신은 조수이니 사서와 있을 때는 그녀의 일에 집중해야 하니까. 글은 나중이라도 좋다. 그리 생각했는데.
“선생님도 나와서 만쥬 드실래요? 오자키 선생님이 잔뜩 나눠주셨어요!”
“…잔뜩이라니, 얼마나?”
“두 상자 정도….”
“…….”
쿄카 녀석, 고생했겠는걸. 아까 전까진 고소하다 생각했는데, 이젠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슈세이는 쿄카가 혼자 만쥬 다섯 상자 쯤을 들고 돌아오는 광경을 상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잠깐 휴식은 괜찮겠지. 나도 먹을까.”
“음! 그럼 가요! 서류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덥석 제 옷소매를 잡은 그녀가 가볍게 자신을 잡아당긴다. 아아, 귀엽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자신은 바보일까.
도저히 멈출 생각을 않는 희로애락의 반복에 어색한 표정이 된 그가, 마른 손으로 가볍게 제 얼굴을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