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F 데스페라도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231회 주제 : 흑심
흑심
written by Esoruen
“데스페라도, 여기 금연석인 건 알지?”
“알긴 알지.”
“…….”
말을 꺼낸 제가 잘못이지. 작게 한숨 쉰 루엔은 벌써 미지근해진 맥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무법지대보다는 확실히 낫지만, 황도의 더위도 가차 없다. 오랜만에 겐트에 온 두 사람은 머물 곳도 찾을 겸 주점에 들렀다가 예상외의 시원함에 그대로 눌러앉아버리고 말았다.
파워 스테이션의 첨단 기술 덕분에 찬공기가 도는 주점 안에는 낮선 사람이 가득하다. 언제나 보던 무법자들과 다른, 번듯한 황녀의 시민들. 루엔은 제대로 준법정신을 가지고 금연 중인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혼자서 꿋꿋이 담배를 물고 있는 제 연인을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만 피우고 꺼. 아니면 흡연석으로 가던가.”
“…거 잔소리는.”
“지금 저기 주인장이 엄청 난처해하는 게 보이니까 그러지. 솔직히 너 아니었음 쫓겨났을걸.”
무법지대에서도 눈치를 보는 대단한 무법자인데, 이렇게 평화로운 황도에선 더하면 더하지 덜할 리가 있는가. ‘한 마디 걸기라도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과장이 조금 섞여있긴 하지만, 저렇게 생각하는 민간인도 분명 있을 터.
“…알았어, 그럼….”
“그럼?”
“한 대만 더 피고.”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루엔은 반쯤 탄 담배를 꺼버리고 새로 담배를 꺼내 무는 데스페라도 덕분에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몇 년을 같이 살아 익숙해 질 법도 했지만, 역시 담배 앞에서 제멋대로 굴 때는 곤란하다. 자신만 피해를 입는 건 상관없지만, 주변이 피해를 입으면 자신이 다 민망하단 말이다.
“안 돼!”
슬쩍 그의 입에서 담배를 빼낸 루엔은 제 손에 들어온 담배를 구겨버릴까 하다가 멈칫했다. 겨우 그깟 담배 한 개비에 제 연인은 화를 내진 않겠지만, 이렇게 부숴먹은 담배를 모은다면 아마 산을 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런 거에 아까워 하면 안 된다만, 역시 아깝다. 제게서 담배를 빼앗아가지 않는 데스페라도를 힐끔 본 루엔은 손 안의 담배를 슬쩍 제 입으로 가져갔다.
“피우지도 못하면서, 내놔. 안 필게.”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나 못 믿는 거냐?”
“지금은?”
하하. 장난스럽게 웃은 루엔은 데스페라도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낮선 손에 어깨를 움츠렸다. 언제 다가온 걸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 하나가 제 얼굴을 향해 라이터를 들이밀고 있었다.
“불은 안 필요하나요, 아가씨?”
아무래도 그는 데스페라도랑 루엔이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인지, 화사하게 웃으며 저렇게 물어왔다. ‘오, 이런.’ 어색한 미소를 지은 루엔이 속으로 탄식할 때, 남자의 머리를 향해 리볼버가 겨누어졌다.
“어디서 수작이야, 안 꺼져?”
“아, 이런 둘이 사귀는 사이였나요. 하도 여자한테 쌀쌀맞게 굴어서 친구인 줄 알았는데.”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네, 여기서 염장이라도 질러줘?”
“…아니 저기 진정해, 데스페라도.”
역시 아깝더라도 그냥 부수는 게 현명했다. 이제 와서야 물고 있던 담배를 내다버린 그녀는 강제로 연인의 팔을 치워버리고 옆자리의 남자를 물러나게 했다.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불러요.’ 제가 죽을 뻔 했다는 건 알고 있는 걸까. 남자의 퇴장은 해맑았다.
“그냥 불 좀 붙여주려고 한 거 가지고 죽이려고 하면 어떡해. 이 양반아.”
“넌 지금 그게 단순히 불만 붙여주려는 걸로 보였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흑심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알게 뭐야. 내가 넘어갈 생각이 없는데. 안 그래?”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두고 어디로 한눈을 팔겠어.’ 잔뜩 인상을 찌푸린 데스페라도의 볼을 쿡 찌르며 웃은 루엔은 맛없어진 맥주를 전부 제 입에 부어넣었다.